인간의 다양한 감정 ‘죄책감과 수치심’
인간의 다양한 감정 ‘죄책감과 수치심’
  • 장은영 한양대 구리병원 교수
  • 승인 2014.05.23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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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부끄러운 줄도 모르냐? 한심하다, 한심해.’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나 감정이 드는가? 문장 중에도 포함돼 있듯 ‘부끄러움’이라 할 수 있겠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수치심’이라는 정서용어로 표현한다. 이런 질책을 들고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는 언제일까? 아마도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을 받으며 혼쭐이 났던 상황일 것이다.

 

아이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라며 혼을 내는 부모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훈육하는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도록 좋은 행동, 옳은 행동을 하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수치심이라는 정서는 이런 바람과는 다르게 작동하는 것이 문제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수치심은 행동을 교정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잘못이나 죄를 인식한 인간이 경험하는 정서는 죄책감과 수치심, 두 가지라고 한다. 물론 병리적인 성격을 지닌 이들은 이와 같은 정서를 거의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후회하고 자책한다. 이 같은 감정은 꽤나 고통스럽다. 기억해보라. 자신이 했던 어리석거나 잘못된 행동을 떠올리며 회한과 자책으로 밤새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했던 경험들을.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일시적으로 당사자를 힘들게는 할지언정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다시는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고 조심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도덕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

죄책감이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비해 수치심은 다르게 작동한다. 여러 연구결과들을 봤을 때 잘못하고 나서 죄책감을 느끼면 보다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반면 수치심은 우리 기대와는 달리 도덕적인 행동을 그다지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수치심은 잘못을 인정하는 경향을 낮추고 부도덕한 행동을 할 가능성을 더 높였다. 필자가 최근 얻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느낀 죄책감은 공격성을 낮췄지만 수치심은 오히려 공격성을 높였다.

왜 그럴까? 언뜻 생각해보면 자신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러워한 사람이 향후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텐데 말이다. 이유는 수치심이 작동하는 원리에 있다. 부끄러운 줄 알라고 강하게 질책 받으면 행동에 대해서만 수치심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치심은 행동을 넘어 존재 자체에 대한 광범위한 경험으로 연결된다. 즉 혼내는 사람은 ‘네 행동을 부끄러워하라’고 지적하지만 혼나는 사람은 ‘네 존재를 부끄러워하라’라고 받아들이는 셈이다.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것과 존재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존재에 대해 수치스러워하게 되면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가 되며 ‘자기’라는 그릇에 여러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내용들이 담기게 된다. 게다가 인간은 자기에 대해 내린 평가와 일관되는 행동을 하는 습성이 있다. 자신을 쓸모없고 악한 존재라고 평가하고 인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식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즉 ‘그래 난 쓸모없어, 한심한 존재야’라고 생각하면 자신의 도덕이나 양심 혹은 사회규범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슴없이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들 가운데 수치심을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정서’라고도 한다. 그만큼 수치심은 단순히 행동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수치스럽게 느끼도록 만들어 버린다. 물론 간혹 경험하는 수치심이 존재 자체를 평가절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복해서 경험한 수치심, 사소한 잘못에도 존재 자체를 부정 받는 경험은 당사자로 하여금 오롯이 자신의 존재를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존재에 대해 질책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나의 훈육이나 질책이 행동을 향하고 있는지, 존재 자체를 비난하고 있는지 곰곰이 살피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훈육하고자 혹은 행동을 지적하고자 시작한 말이지만 말을 하다보면 감정이 격앙되고 행동이 아닌 상대방 자체를 비난하는 표현이 나오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상대를 비난하기 시작할 때가 바로 비난을 멈추어야하는 적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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