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중 얼마를 파트너에게 줄 것인가
1만원 중 얼마를 파트너에게 줄 것인가
  • 장은영 한양대 구리병원 교수 (jangmean@hanmail.net)
  • 승인 2014.06.05 1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뢰를 다룬 심리학실험이 있었다.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되는데 실험자는 한 사람에게만 1만원을 준다. 1만원을 받은 사람은 그 금액 가운데 일부나 전부를 자신의 파트너에게 줄 수 있다. 그것이 얼마이든 그 금액의 세 배를 실험자가 그 파트너에게 최종지불하게 된다. 당신이 이 실험에 참여해 1만원 가운데 5000원을 파트너에게 줬다면 파트너는 그 세 배인 1만5000원을 받게 된다. 따라서 당신과 파트너는 총 2만원을 보유하게 되고 각자 1만원씩 가져갈 수 있다. 다만 최종보유금액을 나눌 권한은 파트너에게 있다.

 

당신이 이 실험에 참여했다면 파트너에게 얼마를 줄 것인가? 두 사람의 최종보유금액이 가장 크려면 당신이 가진 1만원을 전부 파트너에게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 둘의 총액이 3만원이 돼 1만5000원씩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안전하게 내 몫부터 챙기려면 상대방에게 1원도 주지 않고 온전히 가져가야 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지만 1만원 가운데 상대방에게 할당한 금액이 당신이 지닌 신뢰의 총량이라고 계량화되곤 한다. 금액으로 환산된 당신의 신뢰는 어느 정도인가?

문득 이 실험을 떠올리게 한 것은 한 배우가 ‘의리’를 외치는 텔레비전 광고 때문이었다. 이 광고가 흥미로웠던 사람은 비단 필자만은 아닌었나 보다. 특히 그 배우는 의리를 수 년 간 외쳐 왔지만 근래 들어 큰 반향이 일어나고 있어 이 현상에 대한 여러 해석들도 나오고 있다. 기자나 평론가들의 해석은 대체로 ‘의리나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 대한 갈증이 한 원인이라는 것인데 필자도 이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다만 전공이 전공인지라 의리라는 표현 대신 필자의 머릿속에는 ‘신뢰’라는 말이 떠올랐다. 물론 의리와 신뢰는 동일한 개념도 아니며 우리가 사용하는 ‘의리’를 완벽하게 의미하고 표현할 수 있는 심리학용어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오히려 의리는 그 단어 그대로 우리의 문화심리학적 측면에서 연구돼야 하리라. 혹은 이미 이에 대해 연구 중인 한국문화심리학자가 있지만 필자의 얕은 지식으로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신뢰와 의리가 통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신뢰란 내가 기대하거나 예상한 행동을 상대방이 하리라는 믿음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내게 거짓말하거나 배신하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내가 헌신한 만큼 상대방도 헌신하리라고 예상하고 믿고 싶어 한다. 따라서 의리라는 표현에는 상대방을 포함한 세상에 대한 신뢰가 내재돼 있다.

앞서 소개한 실험에 친한 친구와 자신이 함께 참여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친구가 1만원 가운데 단돈 1원도 내게 할당하지 않거나 내가 할당한 1만원으로 3만원을 획득한 친구가 이를 공평하게 배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날 못 믿어?’ 도는 ‘너 의리 없어!’라 할 것이다. 상대방이 나의 신뢰에 보답해주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유독 요즘 의리를 외치며 신뢰를 담보하고자 할까? 이는 이미 여러 분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신뢰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일관성이 없으며 모순투성이라고 생각될 때 신뢰는 흔들린다.

위의 실험도 상당히 예측하기 어려우면서 모호한 상황을 유도한 후 상대방이 자신과 수익을 나누리라는 믿음을 얼마나 확고히 가졌는지를 알아보는 방식이다. 요즘 우리의 일상이 그렇지 아니한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지금껏 지켜온 가치가 옳은 것인지, 나의 헌신이 보람 있을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래도 신뢰는 회복돼야 한다. 적어도 심리학이나 정신건강의 관점에서 신뢰감은 자존감과 행복감을 높이며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게 하는 순기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뢰를 높일 수 있을까? 모순되는 것들을 해결하고 원칙과 일관성을 되찾아야 한다. 세상이 공정하리라는 최소한의 믿음을 지켜줄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단 이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 이 때문에 신뢰를 연구해온 심리학자들의 값진 조언을 소개하고 싶다.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조급함이라고 한다. 천천히 확립되고 축적된 신뢰일수록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모순을 해결하고 원칙을 세우는 작업은 단시간에 이룰 수 없다. 20세기에 들어선 이후 우리 사회가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룩하다 보니 혼란과 모순의 시기에 우리를 지탱해 줄 ‘공공의 신뢰’라는 기반이 약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가 아닐까?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