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약물치료 전문가 허대석 교수 “표준진료지침 필요”
항암 치료는 ‘고통의 터널’이다. 암을 초기에 발견해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만으로 완치가 되는 경우 외에는 항암 약물치료를 받는다. 학계는 암환자의 3분의 2 정도가 항암 치료를 받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항암 약물치료는 수술 후 암세포가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거나 남은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하는, 필수적인 치료다. 암세포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수술 전에 시행하기도 한다. 먹는 약도 있지만 대체로 주사제를 사용한다.
국가 암등록 통계를 보면 2010년 1년 동안 발생한 암환자는 20만명을 넘는다. 이들에게 현재의 항암 약물치료 및 시스템은 여러 가지 부족하다는 지적이 크다. 우선 병실이 부족해 필요한 날짜에 주사를 맞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암환자가 몰리는 의료기관일수록 이런 일이 많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다. 약물의 부작용도 상당하다.
의학적으로 필수적이지만 괴롭고 힘든 항암 약물치료를 보다 쉽게 하는 방안은 없는지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58·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사진)로부터 들어봤다. 허 교수는 항암 약물치료의 권위자다.
- 항암 약물치료는 왜 해야 하나.
“암이 전이되거나 재발된 경우, 백혈병이나 악성림프종 등 전신질환 상태인 경우 등은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수술 후 재발 위험을 줄이기 위한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 수술 후 재발 위험이 높은 경우는 3기 유방암, 3기 대장암, 3기 위암 등이다. 후두암과 같은 두경부암 등에서 방사선 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항암제를 병용하는 경우도 있다.”
- 항암제 치료가 너무 괴롭다고들 한다.
“대부분의 항암제는 암세포가 정상 세포보다 빨리 자란다는 특성에 착안해 개발됐다. 따라서 정상 세포 중에서도 빠르게 세포분열하는 골수세포, 모근세포, 구강점막세포 등도 (항암제의) 공격을 받는다. 이 때문에 항암제 치료를 받으면 백혈구 수가 감소하거나 탈모가 발생하거나 입안이 헐게 된다. 항암치료는 이중적인 치료다. 항암효과가 있어 생명이 연장될 수 있으나 부작용으로 불필요한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겪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항암치료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는 항암치료를 함으로써 기대되는 이득과 손실에 대한 설명을 담당의사로부터 듣는 것이 필요하다. 최종 결정은 득실을 따져 이루어져야 한다.”
- 환자가 약물을 견디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치료 후 몸상태가 좋아졌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물 효과가 없다면 계속할 이유가 없다. 효과는 있는데 부작용이 심하다면, 약 용량을 조절하거나 동일 계열의 다른 약을 사용해 볼 수 있다. 항암제는 약제마다 부작용이 다양하고 환자에 따라 약에 반응하는 양상이 다르므로 부작용이 적으면서 가장 효과적인 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암환자가 몰리는 일부 병원에서는 제때 입원을 못해 항암치료가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항암제 치료를 부득이 연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 1주일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 병실 부족이 문제라면, 입원하지 않고 항암제를 투여받을 수 있는 방식(낮병동제도 등)으로의 전환에 대해 담당의사와 상담할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항암제는 반드시 입원해서 투약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항암 약물치료를 위해 환자와 가족이 주의해야 할 부분은.
“일반적인 항암제는 첫 1주일에는 구토 등 부작용이 흔히 발생하고, 투약 후 10일 전후에는 백혈구 수가 감소하면서 세균감염으로 고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세균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항암치료 중에는 날음식보다 음식을 익혀서 섭취하는 것이 권장된다.”
- 주치의가 효과가 없을 거라고 하는 다른 보조요법을 하는 것은.
“항암제는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근거자료가 명확한 경우 허가를 받아 종양전문의들이 처방하게 된다. 아직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인정되지 않은 치료법을 여기에 추가로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시도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부작용으로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생명을 구하는 항암 약물치료도 상업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고가 항암제가 많이 개발되어 이용되고 있는데, 가격이 비싸다고 더 좋은 약은 아니다. 암도 환자마다 특성이 다르므로, 해당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항암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제도적인 문제점과 개선책은.
“동일한 암인데도 어떤 병원, 어떤 의사를 찾아가는가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항암제도 마찬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어떤 항암치료법이 환자 입장에서 최선인지에 대해 근거 중심의 평가를 거쳐 공적인 ‘표준진료지침’이 정해지고 그 정보가 일반 국민에게도 널리 홍보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항암제 중 한 달 약가만 1000만원을 넘는 약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약은 보험급여대상이 되고, 다른 약은 본인부담으로 정해져 있다. 효과가 명확하지 않은 약인데도 보험혜택을 받고 있고, 우수한 약인데도 개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따라서 보험급여대상을 결정하는 정책의 일관성을 제고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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