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 개편, 복지부와 건보공단의 엇박자
건보료 개편, 복지부와 건보공단의 엇박자
  • 조창연 편집국장
  • 승인 2014.06.2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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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논의 중인 건강보험료 개편안을 개인 블로그에 미리 공개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두고 두 기관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발단은 건보공단 김종대 이사장이 지난 15일 ‘김종대의 건강보험 공부방’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복지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 7차 회의결과라며 ‘소득중심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 모형’을 공개하면서 비롯됐다.

조창연 헬스경향 편집국장

김 이사장은 블로그를 통해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재산이 아닌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라는 개인적 소신을 밝혔다. 게다가 정부가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중심으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기본안으로 정했다며 이에 대한 모의운영을 마쳤으며 9월에는 개선안이 확정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현재 확정도 되지 않은 사항인데다 논의 중인 내용을 블로그에 올림으로써 여론이 움직였고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후 국민은 복지부에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민원을 제기하는 등 급격한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7월 가입자마다 다르게 부과돼 공정하지 못한 건보료 산정기준을 바로잡고자 학계와 가입자대표가 참여하는 기획단을 만들었다. 이 기획단을 통해 부과체계 개편방안을 논의해 왔고 김 이사장이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개편안 모형은 기획단에서 논의된 160개의 안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개인 블로그에 올릴 내용이 아니지 않느냐”며 불쾌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부안으로 확정되지 않은 정책이 공개되면 보험가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벌써부터 여론은 소득세 기준의 부과체계 개편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고 있다. 건보료 부과체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획단에서 개편안을 확정해 정부에 건의,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의견수렴을 해야 한다. 이후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 과정을 거친다. 복지부는 기획단에서 최종안이 확정되면 올해 연말 공청회를 열 생각이었다.

김 이사장의 생각이나 주장에 대해 문제를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의 순서를 지키지 못한 것은 김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의 블로그는 개인이 운영하는 형태로 운영된다고 해도 사실상 개인의 것이 아니다. 또 정책수행기관의 책임자는 공인이다. 아직 논의 중인 주요정책이 건보공단 이사장 블로그에 올라가서도 안 되며 블로그 관리가 이사장의 주요직무도 아니다. 김 이사장이 국가 건강보험정책을 담당하는 곳의 수장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블로그는 정책의 공식채널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의견이 조율된 것도, 제도 개편이 결정된 것도 아니다. 공청회나 토론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데도 블로그를 통해 내부 사안을 공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 이는 누가 봐도 하극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 이사장은 2012년 12월 블로그를 오픈했다. 세계 최고의 건강보험제도를 알리고 홍보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꾸준히 밝혀왔다. 이번 사건은 사전에 제도 개편방향을 공개해 여론의 추이를 떠보려는 행동으로 보일 소지가 다분하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은 온 국민이 주시하고 있는 제도다. 논의가 진행 중인 사안일수록, 예민한 사안일수록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입이 무거운 리더가 많은 이에게 신뢰를 얻는 법이다.

<조창연 헬스경향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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