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토코이타와 같은 국정원

2013-07-12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기생충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기후대는 어디일까? 아프리카가 속한 열대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사실 기생충은 온대 지방에 더 많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기생충도 살기 좋기 때문이다.

 

회충을 예로 들어보자. 회충알이 땅속에서 잘 발육돼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려면 어느 정도의 습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상인이 사하라사막에 변을 보면서 수 만개의 회충알을 뿌려놓는다고 해보라. 그 회충알 중 제대로 살아남을 놈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아프리카에는 모기가 전파하는 기생충이나 물을 통해 옮겨지는 기생충들이 우글우글하다.

 

다음 문제. 그렇다면 기생충이 가장 없는 기후대는? 흔히 추운 지방을 떠올릴 텐데 이번엔 그게 정답이다. 추운 곳에서는 회충알은 물론이고 간디스토마처럼 달팽이를 중간숙주로 하는 살아남지 못한다.

 

날도 덥고 하니 추운 나라 얘기를 해보자. 북극 가까운 곳에 그린란드라는 나라가 있다. 지구본의 맨 위쪽에 있다보니 별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하고 여러 나라의 식민지를 거쳐 현재도 덴마크의 속국이란 처량한 지위지만 면적으로 따지면 세계 12위에 해당하는 큰 나라다. 국토의 85% 가량이 얼음으로 덮여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자, 이 나라에는 어떤 기생충이 있을까? 북극곰과 바다표범에 선모충이라는 근육에 사는 기생충이 있다. 땅에서 발육하는 게 아니라 동물들 간의 잡아먹힘을 통해 전파가 이루어지니 추운 나라라고 해도 기생충이 있을 수는 있겠다. 실제로 1940년대와 1950년대 이 기생충으로 인한 환자발생이 제법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그린란드의 기생충은 선모충이 아니라 상어에 기생하는 기생충이었다. 그린란드 상어는 3-5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크기에 400킬로가 넘는 당당한 체구를 자랑한다.

 

웬만한 동물은 통째로 삼키는 포악한 녀석인데 몇 년 전에 잡힌 그린란드 상어의 위에서는 순록과 북극곰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 보이던 이 그린란드 상어도 무서워하는 게 있으니 바로 상어의 눈에 기생하는 오마토코이타 엘롱가타 (Ommatokoita elongata)였다.

 

이 기생충은 갈고리처럼 생긴 한쪽 끝을 상어의 눈에 박아놓고서 상의의 눈 조직을 야금야금 먹으면서 사는데 이러다보니 상어가 시력을 잃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상어는 원래 후각이나 촉각으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라 큰 불편함은 없다고 하겠지만 북극곰도 삼키는 무서운 상어의 눈에 들어가 실명까지 시키는 기생충이라니 놀랍기 그지없다.

 

정리를 해보자. 사람은 북극곰을 만나면 끝장이다. 그 북극곰은 상어한테 한입에 먹힌다. 그 상어는 눈에 기생하는 오마토코이타에게 꼼짝을 못하며 실명까지 한다. 정리를 해놓고 보니 왠지 최종 승자가 비열하기 짝이 없는 오마토코이타인 것 같다.

 

이런 알 수 없는 먹이사슬은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조직적인 댓글 공작을 벌인 게 드러났다. 북극곰이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파괴한 국정원을 성토했다. 그린란드 상어처럼.

 

하지만 그로 인해 위기에 몰린 국정원은 뜬금없이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화록을 흘림으로써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다 오마토코이타이다. 이 공작은 어느 정도 적중해 일베충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려 했다고 성토하고 있다.

 

시력을 잃어버린 상어가 다시금 먹이사냥에 나설 수 있었던 건 후각과 촉각 덕분이었다. 국정원의 공작에 현혹되지 않고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려면 우리에게도 후각과 촉각이 필요하다. 지각 있는 시민의 존재와 그들이 들고 있는 촛불이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후각과 촉각이 아닐까?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