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부르는 자긍심의 상처
공황장애 부르는 자긍심의 상처
  • 강용혁 | 한의사·분당마음자리한의원장
  • 승인 2012.08.23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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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욕망을 채우거나 줄이는 것이다. 욕망이 채워지는 과정은 행복이다. 반면 채울 수 없는 욕망이라면 그 크기를 줄여야 고통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나는 잘났다’는 자긍심이 이를 가로막는다. 

공황장애로 내원한 20대 남성.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데 속이 불편해지다 뒷목이 뻣뻣해지고 순간 다리 힘이 쭉 빠졌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급기야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검사에선 단순 위염뿐이었다. 환자는 “평소 소화력이 약한데, 그날 먹은 음식이 체해서 공황장애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없어졌다”는 환자는 이후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 몇 년 만에 멀리서 놀러오기로 한 후배의 방문약속도 취소해버렸다. 집에서 일정거리를 벗어나거나 버스만 타면 심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환자는 소화력만 좋아지면 공황장애도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보고 싶은 것뿐이다. 진정 두려워서 회피하고 싶은 불안의 본질은 무의식 깊은 곳에 감춰져있다. 그 마음을 마주 봐야 치유된다. 하지만 자신의 밑바닥 마음을 보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한없이 두렵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단순히 신체적 원인을 꼽거나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환자는 소음인이다. 소음인의 마음을 양파껍질처럼 벗기고 또 벗겨내면 최종적으로 남는 딱 한가지, 이제마는 이를 ‘긍심(矜心)’으로 봤다. 나는 잘났다는 강한 자긍심이다. 소음인에겐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하는 생명과도 같다. 그래서 자긍심에 상처받는 상황에 극도로 예민해진다.

환자의 상처는 10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형과의 경쟁심리와 관련 있다. 어려서부터 형이 모든 게 조금씩 더 나았다. 현격한 차이라면 아예 포기라도 했을 것이다. 공부도, 운동도, 대학도 아주 조금씩 모자랐다. 형과 함께 있으면 경쟁심과 열등감을 늘 함께 느꼈다. 심지어 “몸무게도 형이 5㎏ 더 나가는데, 형이 내 체격이 부실하다며 놀린다”고 말했다. 형이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가 모두 상처다. 쌍둥이였기에 비교 당하는 상처는 더더욱 컸다.

최근 공황장애도 형과 함께 있던 친구모임에서 생겼다. 취업에 성공한 형과 그렇지 못한 자신이 친구들 앞에서 은근히 비교 당하는 자리였다. 이성적으로 다가가고 싶었던 여자친구도 함께 있었다. 처음 공황장애가 왔던 것도 버스 안이었다. 단순히 좁은 공간이어서가 아니라 이 또한 심리적 상처와 연관된다. 그제야 “형은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다녔고, 나만 먼 지방대학으로 가느라 불편한 마음으로 탄 버스였다”고 회상했다.

대학재학 중엔 신기하게도 공황장애가 나타나지 않았다. 어학연수 1년 동안 늘 친구들을 리드했고 자신감에 넘쳤다. 형이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졸업 후 다시 함께 생활하면서 재발했다. 환자는 “부모님만 허락하면 따로 나가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무 이유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환자의 공황장애는 모두 자긍심의 상처와 관련된다. 미처 몰랐고 인정하기 싫어 회피하려고만 했던 마음을 돌아보자 공황장애도 빠르게 호전됐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쌍둥이형이 전부가 아니다. 친구나 이웃 등 비교대상은 얼마든지 바뀐다. 비교는 친구도 적으로 만들지만 궁극에는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다. 비교의 중심에는 한껏 늘어난 욕망을 갈구하는 ‘긍심’이 존재한다. 높아진 내면의 자화상과 현실 간의 간극만큼 불행과 고통으로 채워야 한다.

그래서 선현들은 ‘나를 죽여 참다운 나를 얻으라’고 했다.

마치 쌍둥이처럼 내 마음속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려는 불행의 씨앗인 ‘자긍심’부터 죽여야 진정 행복한 내가 살아난다.

<강용혁 | 한의사·분당마음자리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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