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춘추]겉보기와 진짜 체질은 반대일 수도
[한방 춘추]겉보기와 진짜 체질은 반대일 수도
  • 경향신문 강용혁|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 승인 2012.11.09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 사람도 사물도 항상 겉과 속이 일치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면을 관찰하려는 노력에는 늘 심신의 고단함이 뒤따른다. 결국, 본질보다 겉만 보고 속단하기 쉽다.

보약을 짓기 위해 내원한 모녀. 엄마는 대뜸 “나는 몸이 냉하고, 딸은 열이 많은 체질이니 이에 맞게 처방해달라”고 요구한다. 엄마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지면 수족냉증이 심해지고, 딸은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뜨끈뜨끈 열이 난다는 것이다. 물 한잔도 엄마는 따뜻한 것을, 딸은 찬물만 찾는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인삼이나 홍삼을 달고 살았고, 딸은 삼계탕도 못 먹게 했다.

한의학에서 한열(寒熱) 진단은 매우 중요하다. 한증과 열증에 각각 뜨겁고 차가운 성질의 약으로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엄마의 진단은 옳았을까. 흔히 손발이 차면 속이 냉하고, 몸이 뜨끈뜨끈하면 속에 열이 많다고 여긴다.

그러나 한증과 열증은 손발의 온도나 겉으로 느껴지는 현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서양의학의 체온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당장 열이 나더라도 이것이 진짜 열, 즉 실열(實熱)인지, 가짜 열인 허열(虛熱)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한증 역시 마찬가지다.

딸은 소음인이었다. 사상의학에선 ‘배 속에 큰 얼음 하나가 들어 있다’고 비유할 정도다. 그런데 딸은 소음인인데 왜 손발이 차지 않고 오히려 뜨끈뜨끈할까. 이런 현상이 바로 허열이다. 겉으로만 열이 나고 본질은 차갑다. 한겨울에 냉수마찰을 하면 온몸에선 후끈후끈 열이 난다. 몸에 진짜 열이 많아서 뜨거워진 게 아니라, 낮은 외부 온도에 적응하기 위해 인체가 온열기능을 과항진시키기 때문이다.

딸의 몸에 열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다. 체력이 저하되자 인체가 자기방어에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다. 이는 일시적이고 표면적 현상이다. 이를 몸에 진짜 열이 많다고 착각한 것이다.

선현들은 오래된 과실수가 어느 해 갑자기 많은 열매를 맺으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평소 오른쪽에만 무거운 가방을 메면 오른쪽 어깨가 더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보상작용에서 비롯된 표면적 현상일 뿐이다.

정작 인삼이나 홍삼은 딸이 먹었어야 한다. 따뜻한 기운이 보강되면 애써 보상작용은 일으키지 않아도 돼 오히려 허열은 덜해진다. 소음인에겐 이른바 ‘이열치열’이 성립한다. 반면, 진짜 열이 많은 소양인에게 인삼은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 된다. 딸에게는 평소 물 한잔도 따뜻하게 먹게 하고 커피 대신 생강차를 추천했다. 또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하의실종’ 패션도 삼가도록 했다.

반면, 엄마는 태음인이다. 수족냉증의 발병원리도 다르다. 온돌방이 추울 때 아궁이에 나무장작이 부족한 게 소음인이라면, 장작은 충분한데 너무 빽빽해 제대로 타지 않는 경우가 태음인이다. 체열은 충분하지만 순환이 안돼서 차갑다. 여기에 계속 장작만 넣으면 연기만 나고 방바닥은 더 차가워진다. 오히려 장작을 조금 덜어내면 더 잘 타고 방도 이내 따뜻해진다.

태음인이 인삼과 홍삼을 먹으면 식욕과 체중이 증가한다. 살이 찌면 심장에서 손발로 향하는 혈관에 압박이 더 가해진다. 이는 마치 따뜻한 물이 지나가는 호스를 발로 밟아 잘 흐르지 못하는 격이다. 당연히 수족냉증이 심해진다. 엄마에게 “인삼이나 홍삼은 딸을 주라”고 말했다. 대신, 엄마에게는 체중을 줄이라 하고 혈액순환을 돕는 한약을 처방했다. 얼마 뒤 몸도 가벼워졌고, 10년 넘게 바늘로 찌르듯이 아플 정도의 수족냉증도 없어졌다

겉만 보며 속히 하려고 하면, 본질과 멀어져 결국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유와 마찬가지로 본질을 보려는 지혜 역시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