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춘추]구취, 마음의 피로가 숨은 원인
[한방 춘추]구취, 마음의 피로가 숨은 원인
  • 경향신문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 승인 2012.11.16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은 곧잘 산을 쌓는 것에 비유된다. 공자는 “한 삼태기를 더 쌓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도 내가 그만두는 것이며, 마지막 한 번까지 이루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문은 남을 위한 것도, 남이 대신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님을 강조했다. 

심한 입냄새로 학교생활이 어렵다는 대학생. 치과와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다. 환자는 “속이 답답해지면 아무리 양치를 하고 껌을 씹어도 소용이 없다”고 호소한다. 또 “토론 수업이 많은데 친구들이 얼굴을 찌푸릴 정도라 어쩔 수 없이 휴학했다”고 말했다.

한의학에서 구취(口臭)는 구강질환이 없다면 ‘식적(食積)’과 ‘심지로(心之勞)’에서 원인을 찾는다. 식적이란 음식이 정상적으로 소화되어 내려가지 못하고 위장에서 오래 정체되는 현상이다. 어정쩡하게 소화된 음식의 냄새가 역류해 심한 구취가 생긴다. 주로 소화력이 약한 소음인에게서 많다.

그런데 환자는 소화력이 좋은 소양인이다. 그렇다면 ‘심지로’ 즉, 마음의 피로에 원인이 있다. 소양인의 스트레스는 크게 두 가지다. 좁은 공간에서 재미없는 일을 반복할 때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의 결과가 임박해 올 때 나타난다.

환자는 학업 부담이 숨겨진 원인이었다. 명문대생인 그는 교수인 아버지를 보며 어릴 적부터 교수 외에 다른 꿈은 생각해보질 않았다. 전공도 아버지와 같다. 그러나 막상 대학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자신보다 잘난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여기에 실망스러운 전공성적에다 해외유학과 교수라는 청사진이 점점 희미해질 무렵 구취도 심해졌다.

환자의 심리상태는 소양인의 ‘구심(懼心)’이다. 막상 어떤 일을 ‘해야지, 해야지’라고 생각만 하면서 행동은 엄두를 못내는 상태다. 어느 정도의 노력이 더 필요한지 현실파악이 누구보다 빠르다. 그러나 위기에 봉착한 소양인은 혼자 무언가를 고생스럽게 파고들기보다 가급적 책임이나 과제를 회피할 방법부터 찾는다. 그래서 ‘오늘 당장 시작하자’가 아니라 ‘딱 오늘 하루만 더 쉬자’라고 마음을 낸다.

‘오늘 당장 조금 더 서두른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며 계속 미룬다. 시간이 흘러가도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다. 대신 부담스러운 결과나 마감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고 안절부절 못한다.

그렇다고 현재 상황을 그냥 인정하며 뒤로 물러설 수도 없다. 늘 1등만 해온 자존심과 주변 시선들이 퇴로마저 틀어막고 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간다면 땅으로 꺼지든지, 하늘로 솟든지 둘 중 하나다. 이런 결과가 혹자는 공황장애, 혹자는 우울증 등으로 나타난다.

병명은 전혀 다르지만 때론 그 본질이 같다. 병명 이면에 가려진 본질을 찾아야 근본적으로 치유된다. 환자는 구취와 몇몇 신체증상을 학업중단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딜레마에 빠진 마음이 먼저이고, 신체적 이상은 후속방편이다.

착각에 빠진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 시선에서 돌아보게 했다. 아울러 해외유학과 교수의 꿈보다 당장 다음 학기 성적을 올리기 위한 단기계획부터 세우도록 권했다. 얼마 뒤 환자는 “내내 공부 걱정만 하면서도 정작 책은 손에 잡히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말했다. 차츰 입냄새도, 가슴 답답함도 사라졌다.

멀리 있는 달콤한 목표를 떠올려보는 것은 때론 약이고, 때론 독이다. 그 차이는 오늘 하루의 실행에 있다. 꿈만 바라보며 ‘내일은 해야지’하는 마음은 결심이 아니라 번뇌다.

내일은 없다. 언제나 오늘이 있을 뿐이기에 천리길도 오늘 한걸음부터다. 학문도, 인생 목표도 오늘 다가가지 못한 것이 내일이라고 가까이 와 있을 리는 없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