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염, 뜻 밖의 감염 ①주사기 재활용의 문제점
간염, 뜻 밖의 감염 ①주사기 재활용의 문제점
  • 신민우 기자 (smw@k-health.com)
  • 승인 2016.01.2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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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우 기자의 ‘불타는 금요일 뜨거운 보건이슈’] 군복무 시절 저는 ‘라뽀(Rapport)’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친밀한 사이를 의미하지만 보통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 유대관계를 말하죠.

제가 만난 의사들은 모두 환자가 의료진을 믿어야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라뽀를 통해 난치병환자가 완치되는 기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원칙과 정직이라는 절대가치가 필요합니다. 어느 환자가 자신을 속이거나 편법을 쓰는 의사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의료진과 환자 간에는 ‘라뽀’라고 불리는 신뢰·유대관계가 존재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원칙과 정직이라는 절대명제가 필요하죠.

지난해 의사에 대한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불타는 금요일 뜨거운 보건이슈’에서는 ‘다나의원 C형간염 집단발병사건’을 두 차례에 걸쳐 다루고자 합니다.

2015년 11월 서울시 양천구보건소로 익명의 제보가 들어옵니다. 신정동 다나의원에서 C형간염환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내용이었죠. 보고를 받은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시작한 뒤 “다나의원에서 C형간염환자 18명이 발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원장부인과 간호조무사 2명도 포함됐죠.

초기의 사회적 반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습니다. “아니, 무엇 때문에 C형간염환자가 18명씩이나 나와?” 정도의 수준이었죠. 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감염자 모두가 여러 약제를 섞은 이른바 ‘칵테일정맥주사’를 맞았는데 이때 사용된 1회용주사기가 몇번이나 재활용된 제품이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1회용주사기를 몇 번이나 다시 쓰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죠. 질병관리본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사용한 주사기를 폐기해야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다나의원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몇번이나 다시 사용한 거죠. 이 과정에서 주사기가 C형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재사용과정에서 일파만파 번진 것입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하는 의료기관에서 도리어 병을 양산한 꼴입니다.

C형간염은 간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면역체계가 공격해 간세포가 파괴되면서 염증이 생기는 증상입니다. 주로 피어싱, 소독하지 않은 침, 오래된 주사기를 통해 감염되죠. 구토, 근육통 등이 생기고 간암으로 발전되거나 사망에까지 이릅니다. A·B형간염보다 인지도가 낮지만 이번 사건으로 C형간염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이 커졌습니다.

다나의원이 환자들에게 주사제를 처방한 경우는 무려 98%에 이릅니다. 거의 환자 전원이 재사용주사기의 희생양이 된 셈입니다.

다나의원 수액주사처방률은 98%. 환자 100명 중 98명이 이 주사를 맞은 셈입니다. 현재 2008년 이후 다나의원을 방문한 2200여명 가운데 절반정도를 추적조사한 결과 100여명이 C형간염에 감염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발매되고 있는 C형간염 치료신약은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약값만 4000만원에 이릅니다. 치료금액규모는 총 20억원에 달하지만 정부는 현행법상 지원이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다나의원은 합의금으로 개인당 200만원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과연 누가 이를 수긍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현재 집단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이 사고로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의사면허관리시스템에까지 불똥이 튀었습니다. 다나의원 원장은 2012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뇌병변 3급, 언어장애를 겪는 등 정상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도 의료행위를 지속했죠. 지금은 한 번 의료면허를 취득하면 취소되지 않는 한 평생 유지됩니다. 3년에 1번씩 일정기준에 미달한 의사에 대해 면허를 취소시키는 선진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이 평가는 의료지식뿐 아니라 정신적, 신체적 진료가능여부도 포함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년마다 각 의료인이 취업상태 등을 신고하고 있습니다. 이때 8시간 보수교육을 받아야하는데 이 두 가지를 수행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면허가 정지됩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보수교육에 다나의원 원장이 아닌 부인이 참석했다는 점입니다. 관리감독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죠.

 

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의사협회는 매해 보수교육을 실시하고 자동출결관리시스템을 갖춰 등록대장 자필서명을 의무화하기로 했습니다.(잠깐만요, 그러면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자필서명을 하지 않아도 됐다는 말이잖아요?) 여기에 비도덕적 진료행위가 발견되면 의료인단체 내에 윤리위원회를 조직해 자체조사를 실시, 복지부 처분을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는 의사면허관리에 있어 근본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복지부는 의료인면허신고제개선협의체를 조직해 오는 2월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이 사건으로 인해 의료인에 대한 국민신뢰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주사처방을 받은 환자가 의사에게 “주사기 재활용하는 것은 아니죠?”라고 물으며 의심 섞인 눈초리로 바라본다는 말을 듣고 쓴 웃음만 나오더군요.

복지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새삼스럽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보건당국은 언제나 재발방지를 약속하죠. 하지만 유사사고는 쳇바퀴 돌 듯 반복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이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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