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옥시, 정말 미안해서 사과하는 건가요?
고개 숙인 옥시, 정말 미안해서 사과하는 건가요?
  • 신민우 기자 (smw@k-health.com)
  • 승인 2016.04.22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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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되는 거야”라는 구고신 소장의 말은 몇 년 전부터 지속되 온 가습기살균파동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숨길 수 있었던 옥시는 이를 소비자로부터 은폐한 것입니다. (사진= JTBC 드라마 ‘송곳’)

지난해 우리나라 노동문제에 경종을 울린 드라마 ‘송곳’. 작품 속에서 외국계대형마트 부당해고에 노동활동으로 맞서는 이수인 과장이 “우리 회사는 프랑스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냐”고 질문하자 구고신 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을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 데 어느 성인군자가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면서 손해를 보겠어.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야.”

최근 ‘그러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한 회사’가 국민적인 분노를 모으고 있습니다. 가습기살균체파동을 일으킨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이야기입니다.

세척이 어려운 가습기는 세균번식이 쉽습니다. 세균과 물이 공중으로 함께 분무되면 사람의 호흡기에 침투할 수 있어 자녀를 둔 부모는 걱정이 많죠. 가습용물에 첨가하는 가습기살균제는 2000년대 옥시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출시한 이후 많은 아류작이 출시됐습니다.

2011년 5월 원인을 모르는 폐질환을 호소하는 6명이 병원을 찾았습니다. 폐가 뻣뻣하게 굳는 섬유화현상이 나타났죠. 의사들이 확인한 결과 전국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고 정부조사결과 가습기살균제 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최근 이뤄진 검찰조사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221명 가운데 177명이 옥시제품을 사용했고 사망 역시 95건 중 70건이 이 제품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원인을 모르는 폐질환환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정부가 조사를 실시했고 가습기살균제 내 두 성분이 폐섬유를 유발한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이에 옥시는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였습니다. 한국건설생활 환경시험연구원이 가습기살균제 위해성조사를 실시했을 때 폐손상과 연관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옥시가 이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거죠. 국내연구기관 4~5곳에서 실시한 유해성조사에서 옥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시험결과는 제출하지 않았고 이 중 서울대, 호서대에는 수천만원의 금액을 전달하며 실험조건설정에 관여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또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와 폐질환 간 인과관계를 밝혔을 때 옥시가 이를 반박하기 위해 서울대에 실험을 의뢰했습니다. 이 때 임신한 쥐 15마리를 가습기살균제에 노출시킨 결과 새끼 13마리가 뱃속에서 죽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2014년 검찰에 의견서를 제출할 때도 이를 배제했죠.

가습기살균제 파동이 커지던 2011년 옥시는 기존 법인을 고의로 청산한 뒤 주주, 사원, 재산, 상호가 그대로인 유한회사를 새롭게 설립했습니다. 아직 정확한 사유는 조사 중이지만 일각에서는 “기존법인이 해산되면 처벌을 받을 대상이 사라지는 만큼 옥시의 유한회사 설립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새 법인은 이전에 존재했던 법인의 책임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원판례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국민이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뒤늦은 사과’ 때문일 것입니다. 옥시는 지금껏 피해자들이 항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습니다. 심지어 홈페이지 내 관련 항의 게시물를 삭제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죠. 최근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한 검찰조사가 이뤄지자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사과성명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면피성이 다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옥시에 분노하는 이유는 ‘뒤늦은 사과’때문입니다. 지금껏 묵묵부답을 일관해오던 옥시는 검찰조사가 시작될 즈음에서야 사과성명을 발표했고 “면피성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사진= 환경보건시민단체)

성명에는 “법원절차에 성실하게 임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드렸다” “오랫동안 안전수칙을 준수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통해 “옥시의 사과는 받지 않겠다”며 “그동안 361회에 달하는 일인시위로 사과와 대책을 요구했지만 옥시는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고 문전박대했다”고 비판했죠.

옥시는 2013년 국정감사에서 50억원을 출연하며 ‘인도적 차원’을 언급했습니다. 피해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한 명목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쉽게 말해 “제품과 폐질환이 상관관계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 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금을 전달한다”는 말입니다. 이번에도 50억원을 출연했지만 “아직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100억원이 무슨 소용일까요?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형식적인 사과나 ‘위로를 위한 기금’이 아니라 진정성있는 사과일 것입니다. 국민적인 분노와 피해자들의 눈물을 멈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지 하루빨리 자각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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