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국민행복시대’ 노인복지 이대로 좋은가
[긴급진단]‘국민행복시대’ 노인복지 이대로 좋은가
  • 김치중 기자
  • 승인 2013.04.23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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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2060년, ‘늙음’이 고통인 시대 오나

새벽까지 잠을 들지 못하다가 간신히 잠들었는데 초인종이 계속 울린다. “누가 새벽부터 남의 집에 찾아온 거야?” 옷가지를 챙겨 입고 문을 여니 동갑내기 박 씨다. “새벽부터 찾아와서 미안한데 나 좀 도와줘. 우리 집사람이 자살을 해서….”

1주일 전 연금도 없이 전전긍긍하며 살던 윤 씨가 85세 자기 생일날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는데 이번에는 박 씨네 집이다. 그나마 부부가 함께 산다고 동네노인들이 부러워했는데 최근 치매가 악화돼 박 씨가 많이 힘들어했다. 정신이 돌아오자 자살을 선택한 것 같다.
 
그래도 88세까지 함께 살았으니 복 받은 셈이다. 나는 집사람을 먼저 보낸 지 15년이 넘었다. 집사람은 동네 노인정에서 왕따를 당하다 정신이 이상해져 요양원에 들어갔는데 낙후된 요양원에서 고생하다가 세상을 등졌다. | 관련기사 2면

박 씨와 함께 집에 들어서니 박 씨 부인은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있었다. 그 흔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나라에서 독거노인이 사망하면 화장비를 지원해주고는 있지만 번듯한 화장시설조차 이용할 수 없다. 돈 많은 노인들이 죽어도 1주일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개인이 불법으로 운영하고 있는 민간화장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노인이 전체 인구의 40%가 넘으니 나라에서도 대책을 못 세운다. 2060년 내 나이 88세, 이제 나도 삶을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다.

이는 남의 일이 아니다. 가상으로 꾸며보긴 했지만 2060년이면 지금의 40대가 모두 겪게 될 현실이다. 노인문제, 특히 노인복지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조만간 국가적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불행시대’를 준비해야 할 판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보건복지정책 개관’에 따르면 2060년 우리나라 노인인구비율은 40.1%로 세계 최고수준에 이르게 된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589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1.8%를 차지하고 있다. 복지부는 2026년부터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15년까지 고령사회 대응체계를 확립해 2030년까지 고령사회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적 시각은 싸늘하다. 세계 최고수준의 저출산, 2%대의 저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가 고령화대응체계를 구축해 안정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보장할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령화문제를 다루고 있는 전문가들은 심각한 노인복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령화인구에 대한 양적 접근에서 탈피, 길어진 노후에 대한 질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노년학회 이성국 회장(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은 ‘고령화사회 대응 노인정책의 방향’을 통해 “노인의 다양한 특성, 즉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심리적 건강, 생활의 편리·안전 등 노인의 실질적 건강과 생활적 측면에 주목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 정경희 센터장은 “고령화는 더 이상 저소득노인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노년기를 경험하고 있는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과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으로 전환돼야한다”며 “지금부터라도 급격한 고령층의 특성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서비스인프라 구축, 에이지캠페인, 연령차별 모니터링 등 장기적인 정책수행과 예산투입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노인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83.7%가 노인의 연령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응답했고 노후(여생)향유방법에 대해‘건강유지를 하면서 보내고 싶다’는 응답이 52.3%, ‘건강이 허락하는 한 소득창출을 위한 일을 하면서 보내고 싶다’가 19.6%를 차지했다. 생산과 소비의 한 축으로 자리하고자 하는 노인들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만 65세 이상 노인빈곤율(45.1%)이 가장 높고 전체 노인의 29.2%가 우울증상을 갖고 있는 나라. 노인들이 건강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나라.

‘노인이 되면 기력이 약해진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늙는 것은 아니다’라는 롱펠로의 말보다 ‘노인은 죽음의 벽만 보는 인간’이라고 정의한 보들레르의 말이 피부에 더 와 닿는 현실에서 당신은 지금 노후와 관련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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