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땅콩회항사건’ 박창진 사무장 공황장애극복기 “저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이 용기 얻기를”
[단독] ‘땅콩회항사건’ 박창진 사무장 공황장애극복기 “저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이 용기 얻기를”
  • 양미정 기자 (certain0314@k-health.com)
  • 승인 2018.02.28 16:2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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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일명 ‘땅콩회항사건’. 대표적인 갑질문화로 대변되는 땅콩회항사건은 2014년 12월 5일 뉴욕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일어났다. 

당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은 객실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제공방식을 문제 삼아 고성을 지르고 항공기를 램프리턴(Ramp Return;활주로로 이동해 출발하려던 항공기를 다시 탑승교로 돌리는 일) 시켜 박창진 담당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했다. 이후 박창진 사무장의 내부고발로 땅콩회항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조현아 씨는 대한항공 부사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가 최근 ‘항로변경’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이자 내부고발자였던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48)을 14일 만났다. 그는 이날 내부고발 이후 겪은 심적 고통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풀어냈다. 이어 현재 정신건강상태와 극복비결,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당당히 피력했다. 

박창진 사무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그는 “사실 그간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승무원 복귀 이후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소명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황장애를 심하게 앓던 박창진 사무장은 어떻게 다시 대한항공유니폼을 입을 용기를 얻었을까? 그는 당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자신의 마음을 지배했지만 가족과 담당의사의 도움 끝에 힘든 상황을 정면돌파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비록 생존을 위한 복귀였지만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업무복귀 전에는 사건관련기사에 달린 악성댓글만 눈에 들어왔지만 복귀 후 많은 승객들의 응원을 통해 상당부분 치유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사건 후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들었는데···

사건 당시에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계속 불면증이 이어지는 데다 호흡곤란까지 겪게 돼 병원에 갔다. 의사는 심각한 신경쇠약이라며 당장 입원해야한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검찰출두로 바쁜 나머지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수면제를 처방받았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결국 상태가 많이 악화됐고 결국 공황장애판정을 받았다.

- 공황장애증상은 구체적으로 어땠나?

우선 너무 우울해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 또 코끝까지 물이 가득 찬 느낌이 들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심장은 폭발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태. 정신적인 고통이 한계치까지 왔을 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느꼈다.

박창진 사무장은 “사건 당시에는 검찰조사 때문에 공황장애가 생긴 것도 몰랐다”며 “심장은 폭발할 것 같았고 마음이 너무 우울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항우울제와 수면제 등 각종 정신질환약물을 처방받았다. 또 공황상태에서 벌어지는 무호흡증상에 대처할 수 있는 호흡법을 1년 동안 배웠다. 

- 그중 가장 도움을 준 치료법이 있다면?

약물이다. 정신과 상담도 받고 마음치료센터도 방문해봤지만 약물효과가 가장 뛰어났다. 물론 약물은 중독성이나 의존성이 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들 만큼 아파 보니 중독이 문제가 아니라 낫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지금도 스트레스로 감정선이 흐트러지면 항우울제와 수면유도제를 복용한다.

- 지금은 완치된 상태인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힘들 때가 있다. 병이 씻은 듯이 나은 것 같다가도 힘든 일이 생기면 감당할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지는 기분이 든다. 지금도 가끔 비행 중 숨을 못 쉬는 등 완치되지 않아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 승무원이라는 직업으로 인한 어려움은?

직업이 승무원이다 보니 불규칙한 리듬과 타지생활에서 오는 고립감을 극복하기 힘들다. 시차와 스케줄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불규칙하게 살 수밖에 없어 약을 시간에 맞춰 먹기도 힘들다. 또 친구나 가족을 만나면 괜찮다가도 비행이 시작되면 다시 외로워진다. 업무특성상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감정에너지가 고갈된다. 아직도 때때로 공허와 환란 속에서 방황을 겪고 있어 완전히 약을 끊기 힘들다. 

- 서지현 검사 사건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는데···.

이번 서지현 검사 사건을 보면서 2014년의 내 모습이 떠올라 많이 공감했다. 서 검사가 내부비난을 감수하고 용기를 냈다는 점에서 응원을 보낸다. 나 역시 처음에는 자책하면서 스스로를 꾸짖기도 했는데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 어떻게 회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나?

복귀하기 전 비행을 쉬면서 당연히 다른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담당의사가 “이 상태에서 무작정 쉬는 것은 좋지 않다”며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으니 많이 힘들더라도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조언했다. 항공사에서 일할 수 있을 만큼 해보고 후회가 남지 않을 때 비로소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 많이 고민했을 텐데 힘든 상황과 정면으로 마주했더니 효과가 있었나?

그렇다. 사실 당시에는 막연함 두려움과 공포감이 마음을 지배했다. 하지만 주변지인이나 가족에게 용기를 얻었다. 비록 생존을 위한 복귀였지만 옳은 선택이었다. 복귀 전에는 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악성댓글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후 많은 승객이 ‘박창진은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준 덕분에 자존감이 회복됐다. 또 그분들의 응원을 통해 다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겼다.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고통이 상당부분 치유됐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 사건 이후 응원과 격려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유럽행 비행기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박창진 사무장! 당신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이야”라며 “평범한 사람들이 항상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를 잘못됐다고 말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네”라고 등을 두들겨주셨다. 이어 "70살 넘은 내가 처음으로 하는 말이니 믿으시게”라고 격려해주시더라. 정말 감동이었다. 땅콩회항사건은 평범하게 살던 내게 닥친 너무도 큰 시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누군가에게 울림을 준 것 같아 뿌듯했다. 

박창진 사무장은 현재 그간의 어려움을 차근차근 극복하면서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례를 통해 부디 더 많은 사람이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는 말을 끝으로 장시간의 인터뷰를 마쳤다. 

- 용기를 내기 바란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스스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계속 승무원생활을 하면서 공황장애를 극복해낼 것이다. 내가 살아남아야 평범한 노동자들이 희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누군가는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분명히 사건 이후 회사가 바뀐 점도 많다. 소명감과 자신감을 갖고 승무원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 

그는 끝으로 “내 사례를 통해 일반회사원들도 부조리한 상황에서 자신 있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만일 기회가 된다면 이 경험을 책으로 녹여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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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2018-05-26 13:30:20
저두 공황장애 판정받고
박창진사무장님 이겨내시는거보고 열심히 마주하려고 합니다.
힘내세요!

레드북 2018-05-10 11:08:41
이젠 조씨일가에게 개인적 악감정이 없다는 박창진님의 발언을 믿습니다. 어찌보면 그들을 통해 평범함 아닌 범상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계기가 된건지도 모르죠.

그 순간으로 돌아가 끔찍한 절망과 고통을 한번더 경험할지라도 박창진님은 선택은 인간에 대한 존엄을 버릴분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빛이 되는 사명감 잃지 않으시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