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정기 받은 ‘고양이 인간’
고양이의 정기 받은 ‘고양이 인간’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6.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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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강원도 횡성에 사는 남자 두 명이 복통을 호소하면서 병원에 왔다.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속이 영 더부룩하고 이따금씩 배가 아픈 일이 계속 반복됐다. 각각 24세와 21세의 한창 나이였으니 위암 같은 건 생각할 수가 없었는데 그 시절은 우리나라 기생충 감염률이 50%를 넘던 때였으니 대변검사나 한번 해보자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주 희한한 기생충의 알이 대변에서 관찰됐기 때문이다. 기생충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알이었지만 ‘희한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만손열두조충의 춘란이기 때문이었다.
 
만손열두조충은 뱀과 개구리를 먹고 감염되는 스파르가눔이라는 유명한 기생충의 성충이다. 종숙주인 개나 고양이에서는 소장 내에서 1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성충이 되지만 사람은 종숙주가 아닌지라 스파르가눔이 들어가도 성충이 되지 못한 채 여기저기를 떠돌며 병을 일으킨다. 

두 남자는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뱀을 잡아서 날로 먹은 적이 있어 그때 몸속으로 뱀에 있던 스파르가눔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만손열두조충의 알이 대변으로 나올까? 반신반의했던 기생충학 교수님은 환자에게 촌충약을 먹인 뒤 설사약을 추가로 줘 환자의 몸 안에 있는 촌충을 꺼냈다.
 
알을 보고 내린 진단은 정확했다. 환자의 대변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는 만손열두조충 성충이었다. 24세 남자에서는 72센티, 21세 남자에선 50센티, 빼낸 벌레의 모양도 개나 고양이에서 나온 만손열두조충과 같았다. 스파르가눔이 들어가서 이 남자들의 장에서 어른으로 자란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 남자들이 고양이 인간인 걸까. 나쁜 자들의 음모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주인공이 고양이들의 정기를 받아 고양이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복수를 한다는 ‘캣우먼’이 나온 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4년이라 기생충학 선생님들은 이 희한한 사건을 그 당시엔 논문으로 쓸 수가 없었다. 이 증례가 논문으로 나간 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84년이었다. 논문을 쓰면서 찾아보니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1921년 죽은 남자를 부검하던 중국의 기생충학자들이 만손열두조충을 발견했고 일본에서는 6세 아이로부터 이 기생충을 꺼냈다. 그 이후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가 네 번이나 더 나왔는데, 마지막으로 나온 게 1982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두 예를 합치면 모두 8건의 만손열두조충이 사람으로부터 검출된 셈이었다.
 
보통 사람에게 스파르가눔이 감염되면 30분도 안돼서 장을 뚫고 복강으로 나가며 그 뒤엔 벌레가 원하는 대로 머리나 눈, 피부, 음낭 등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들 사람에선 스파르가눔이 장을 뚫지 않고 얌전히 장에서 머물렀다. 이유가 뭘까? 게다가 이런 증례가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그것도 1960-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생긴 건 참으로 신기하다. 논문은 이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떤 이유로든 장의 환경이 보통 사람과 달라져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니겠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모른다는 소리인데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죽은 사람 한 명을 뺀 나머지 7명은 복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스파르가눔은 뇌로 가서 뇌수술을 하게 만들 수도 있고 고환으로 가서 멀쩡한 남자를 짝고환으로 만들 수도 있는 무서운 질환인데 장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으면 증상도 비교적 덜하고 디스토마 약으로 쉽게 치료되니 말이다.
 
그 이후엔 이런 고양이 인간이 출현한 적은 없다. 혹시 1970년대가 고양이 인간을 필요로 해서 그랬던 것일까? 하지만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 사회가 고양이 인간을 간절히 원했던 시기가 있었음에도 이런 환자가 더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저 환자들은 시대의 부름을 받아 나온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고양이의 정기를 받은 사람들인 모양이다. 믿거나 말거나.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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