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숙변의 실체는 무엇일까?
[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숙변의 실체는 무엇일까?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유대형 기자 (ubig23@k-health.com)
  • 승인 2018.11.2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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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인터넷에 보면 숙변(宿便)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숙변이 만병의 근원이고 숙변을 제거한다는 것을 강조한 건강식품도 많다. 하지만 숙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많다. 그렇다면 숙변이란 단어는 어디서 시작됐으며 실체는 무엇일까.

숙변이란 단어는 일본의 니시 가츠초라는 자연의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소위 말하는 니시의학의 창시자로 알려졌는데 그가 만든 숙변이라는 개념이 오래전 일본에서 유행하다가 해방 이후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숙변이란 단어를 한의학용어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한의서에는 숙변이란 단어가 없다. 그리고 한의사들도 숙변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숙변을 치료하는 방법도 없다. 따라서 필자도 숙변의 실체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숙변을 단지 대변의 일부로 여긴다면 이해하기 쉽다. 변비가 심한 경우 대변은 오랫동안 대장 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숙변에 대해서 가장 흔한 오해는 바로 항문을 통해서 나온다는 ‘검은색 고형물’이다.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바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할 때다. 숙변이 존재한다면 대장내시경을 하기 위해 관장약을 먹은 경우 일부에서라도 검은색 숙변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정상대변의 색이다.

단단한 정도, 양, 색은 다를 수 있지만 끈적이는 검은색 대변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의사입장에서도 관장 이후 대장내시경을 했을 때 대장 내의 숙변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서 관장한 이후 단식했을 때 항문을 통해 빠져 나오는 검은색 고형물질을 대변처럼 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더라도 대변처럼 보이는 고형물이 나올 수 있다. 일부는 대변이 포함됐을 것이고 중요한 것은 소화관 점막의 탈락세포와 함께 장내미생물의 사체가 위액과 담즙산 등의 소화액과 섞여 뭉친 덩어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검은색 고형물은 사실 대변이 아닐 수 있다.

소화관 장점막의 상피세포들은 24시간에서 96시간에 걸쳐 거의 모든 점막의 상피세포가 완전히 새롭게 바뀐다. 생리적 염증반응에 의한 결과다. 마치 피부의 표피 세포들이 28일 주기로 교체되는 것과 같다. 탈락된 각질세포를 때라고 부른다. 수분과 결합되면 반죽처럼 끈적인다.

만약 단식 도중 심한 속쓰림이나 복통이 생기면서 검은 색 대변을 봤다면 이것은 숙변이 아니라 장출혈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평소 소화성궤양이 있다면 빈속에 분비된 위산에 의해 자극이 심해지면서 미세한 출혈이 일어날 수 있다.

소장과 대장을 거쳐 빠져 나오는 도중에 혈액 속 적혈구에 포함된 철분이 산화돼 검어지는 것이다. 이때 대변색은 아주 검은색을 띠고 마치 짜장색 같다. 만약 출혈량이 많다면 끈적이는 검은색 타르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소 이러한 증상이 있다면 소화성궤양이나 위암을 의심할 수 있다.

건강하더라도 철분제를 복용하거나 적포도주를 마신 다음 날에도 검은색 대변을 보는 경우가 있다. 이 역시 철분이 산화된 결과이고 적포도주에 포함된 흡수되지 못한 안토시아닌이 농축되면서 검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해독요법을 한다고 식용 숯가루를 먹어도 대변이 검어질 것이다. 검은 대변이라고 모두 숙변은 아니다.

숙변은 의학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숙변이란 단어를 퇴출시킬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단지 이름 그대로 심한 변비에 의한 오래된 대변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일부 건강식품 판매업자들이 숙변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과장하는 것은 상술일 수 있다. 숙변은 단지 오래된 대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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