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는 영원히 안고 가야 할 숙제…제 2·3의 박창진 막기 위해 최선 다할 것” 
“공황장애는 영원히 안고 가야 할 숙제…제 2·3의 박창진 막기 위해 최선 다할 것” 
  • 양미정 기자 (certain0314@k-health.com)
  • 승인 2019.03.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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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

“선한 영향력의 힘을 믿고 변화를 만들어갑시다. 용기를 조금만 더 내면 세상은 두렵지 않습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항로를 이탈하게 된다. 특히 ‘직장 내 갑질’이라는 변수를 만난 직장인에게 ‘정년퇴직까지 순항하라’는 임무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 

기자 역시 이전 직장을 다니면서 ‘내리 갑질 문화’로 인해 괴로웠던 경험이 있다. 특히 기자를 괴롭혔던 사무장 신 모(남) 씨. 그는 기자를 비롯해 자신보다 지위가 낮다고 느껴지는 모든 대상에 대해 갑질을 서슴지 않았고 어느 날은 갑자기 지나가던 한 중년의 남자 승무원을 타겟삼아 소리치기까지 했다. “저 XX 왜 인사 안 해? 본인이 연예인인 줄 아나 봐? 회사 망신시키지 말고 그만둘 것이지 욕하면서 왜 다니는 거야?”

그 중년의 남자 승무원은 기자의 입사 19년 선배이자 땅콩회항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사무장이었다. 신 씨처럼 회사에 충성하는 관리자들은 그를 예의주시하며 비난하고 질책하기 바빴다. 박 사무장이 바짝 주눅 들어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던 2년 전 샌프란시스코의 그날 그 장면을 기자는 명확히 기억한다. 

갑질문화라는 타성에 젖은, 충성심을 드러내기 위해 악폐습을 일삼는 임직원들의 태도에 신물이 났다. 그렇게 퇴사 후 기자가 돼 전쟁터에서 ‘존버’하는 박 사무장에게 첫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고 그렇게 그의 정신건강에 대해 다룬 인터뷰 기사가 작년 세상에 공개됐다. 

1년전 박창진 사무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기회가 된다면 이 경험을 책으로 녹여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피력했다.

인터뷰 기사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고 세상은 달라질 듯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뒤따랐다. 인터뷰 직후 박 사무장은 머리에 생긴 15cm가량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갑질근절 및 대한항공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위도 했다. 이후 신 사무장과 같은 팀에 속하는 등 각종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저서발간의 꿈을 이뤘다.

박창진 지음/메디치미디어/248쪽/1만4000원

그 책의 제목은 ‘FLY BACK;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이다. 노동자 개인이 대기업이라는 거대집단에 항거한 선례를 담은 이 책은 ‘직장 내 갑질’이라는 재난에서 살아남는 법을 경험담을 통해 풀어낸 지침서이자 오늘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내부고발자를 위한 위로서다. 우리나라의 갑질문화에 돌을 던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공황장애, 종양수술 등 악조건 속에서 책을 펴냈는데.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저서출간의 꿈을 본격적으로 이루기 위해 그동안 있었던 특별한 사건을 복기해나갔다. 그동안 작성했던 비행일지를 바탕으로 4~5개월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책을 쓰기 위해 공포스러운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앞으로 평탄했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면 안 되지 않는가. 내가 계획했던 삶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노력과정을 풀어낸 이 책을 통해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그는 땅콩회항사건의 후유증을 모두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명상, 독서, 작문 등을 통해 점차 회복하고 있다고 한다.

- 현재 몸상태는 어떠한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몇 가지 후유증이 남았다. 우선 앞서 언급했던 공황장애는 완치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씻은 듯이 낫기는 힘들겠지만 평생 관리하면서 조금씩 극복해나갈 것이다. 지난해 수술한 종양 역시 때때로 곪으며 존재감을 나타낸다. 다행인 건 수면장애를 많이 극복했다는 사실이다. 명상 애플리케이션, 독서, 작문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치유했고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는 날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 땅콩회항 당시 스트레스 강도가 10이라면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사건 당시 10이었다면 지금은 3~4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누군가 잡아당기거나 손짓을 할 때면 10만큼을 느낀다. 현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때때로 손님이 갑자기 옷을 잡아끌거나 툭툭 치며 부를 때 공포감을 느끼며 놀라게 된다. 땅콩회항 이후로 누군가 내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괴롭다. 큰 소리를 들을 때도 무서움을 느낀다. 

- 불규칙한 스케줄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찮다고.

육체건강은 물론 정신건강 또한 충분한 휴식이 뒷받침돼야 낫지 않나. 대한항공은 여전히 승무원의 건강에 관해 관심이 없다. 승무원은 육체를 이용해 서비스를 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인데 이러한 열악한 근무환경은 우리를 피폐하게 한다. 성수기 등 일정 기간에는 병휴(병가 대체 휴가)조차 쓸 수 없다. 건강과 인사고과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하는 상황이다.

박창진 사무장은 “제 2·3의 박창진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밝혔다.

-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조를 출범했다고. 

현재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으로 활동하며 승무원의 권익을 위해 힘쓰고 있다. 바깥세상에선 인권에 대한 기저가 점차 바뀌고 있는데도 승무원세계에는 여전히 낮은 여성권, 불이익, 차별이 남아있다. 나 자신의 이익보다는 여성 다수의 인권을 대변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 어긋난 항로를 박창진 방식대로 바로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다.

견고한 사회 벽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때때로 좌절한다. 여전히 내 기사에 악성댓글은 달리고 있으며 날 감시하는 사람들이 나의 허물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작은 파동이 번지며 울림을 주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나중에는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믿는다. 

- 정년퇴직까지의 목표를 알려달라.

나는 공포심리를 조장해 개인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회사의 구조가 잘못됐으며 개선돼야한다는 점을 인지한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닥칠 불이익이 두려워 덮어둔다면 악순환의 고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건전한 노조활동을 통해 교육·의식확대를 공고히 하고 노조원을 끝까지 독려할 것이다. 제 2·3의 박창진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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