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유전자검사로 나한테 ’딱‘ 맞는 와인을! 신기한 ’미각유전자‘의 세계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유전자검사로 나한테 ’딱‘ 맞는 와인을! 신기한 ’미각유전자‘의 세계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5.1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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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해도 가족들의 입맛이 다 제각각인지라 밥 차리는 주부는 골치 아플 때가 많을 것이다. 아빠는 국이 싱겁다고 잔소리하고 아들은 김밥에서 오이를 일일이 골라서 빼고 먹고 딸은 단것만 찾는다.

누구는 쓴 아메리카노를 잘 마시는 반면 누구는 달달한 카페라떼만 주문한다. 사람마다 이런 미각의 차이는 식습관이 다른 것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개개인의 유전자 차이 때문이다.

쉬운 예를 들면 태국음식으로 유명한 똠양꿍에 든 고수를 먹으면 바로 뱉는 사람이 있다. 전 인구의 4~15%에서 냄새수용체인 OR6A2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데 이 경우 고수향은 비누와 같은 맛을 내서 고수를 멀리하게 한다.

사람의 미각, 즉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그리고 매운맛 등은 기본적으로 혀에 존재하는 감각 수용체에 의해 인지되고 감별되는데 이 감각 수용체 유전자가 사람마다 다르기에 맛을 다르게 느끼는 것이다.

또 뇌 시상하부에 있는 감각 수용체들도 사람마다 달라서 미각의 강도 차이를 나타낸다. 앞서 말한 오이 같은 채소는 일반적으로 쓴맛을 내는데 염색체 7번에 존재하는 TAS2R38 유전자의 변이에 따라 쓴맛에 더 민감한 사람과 덜 민감한 사람으로 나뉜다.

단 것을 유독 좋아하는 단 혀(sweet tongue)을 가진 사람은 SLC2A2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유전자는 단순히 입맛의 유별남에 그치지 않는다.

짠맛을 덜 느끼는 사람의 경우 자기도 모르게 짠 음식을 많이 먹게 돼 고혈압에 걸리기 쉽고 단 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유전자는 당뇨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 쓴맛을 싫어하는 유전자를 가진 경우 채소를 덜 먹게 만들어 대장암 발생위험이 높아진다.

국립암센터의 김정선 교수팀은 2017년 ‘식욕’(Appetite)‘ 이라는 국제 학술지에 한국인 182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단맛·감칠맛 수용체 유전자(TAS1R3)의 변이가 있는 경우 과음군에 속할 위험이 1.5배 높아 소주를 많이 마셨고 TAS2R4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 경우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이 1.5배, 1.6배 많았다.

이처럼 개인마다 다른 미각 유전자는 비즈니스에도 쏠쏠히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전체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와인을 골라주는 서비스다.

와인 맛을 결정하는 요소로는 달기(sweetness), 신맛(acidity), 씁쓸한 맛(tannin), 포도향기 (aroma) 그리고 알코올 농도에 따른 바디(body) 등이다. 이런 요소를 결정하는 일차적인 요소는 포도를 재배하는 지역의 햇볕량, 토양, 숙성의 기간 등이지만 개인의 미각 차, 맛의 선호 차이, 즉 주요 감각 수용기의 유전자 차이에 기인하기도 한다. 또 알코올의 분해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 알코올분해효소(ALDH)의 변이에 따라 숙취를 심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처럼 와인 맛을 다르게 느끼는 유전자에 따라 개인 맞춤 와인 서비스를 하는 대표적인 미국 회사 상품이 헬릭스에서 판매하는 비놈(vinome)이다. 59달러에 개인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와인을 추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개인소비자 직접 검사(DTC)가 활성화되지 않았으나 2차 DTC 시범사업이 끝나는 올 연말 정도면 소비자들도 병원을 거치지 않고 와인 추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다양한 종류의 미각 유전자들도 DTC 서비스에 포함될 듯하다.

와인뿐 아니라 미각 유전자에 따른 맞춤형 상품 서비스가 앞으로는 더 다양하게 시행될 것이다. 단순히 맛의 차이뿐 아니라 음식의 편향적 섭취에 따른 질병의 발생 및 예방과 연계되는 상품도 나올 수 있다.

미래의 식탁에는 가족들이 각자 유전자에 따라 알아서 먹을 수 있는 알약형태의 음식이나 맞춤형 셰이크가 나온다면 우리 주부들이 한결 수고를 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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