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꽉 막힌 국내 ‘유전체정책’에 대한 속 시원한 제언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꽉 막힌 국내 ‘유전체정책’에 대한 속 시원한 제언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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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전 세계적으로 유전체검사가 확대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제는 병원이 아닌 개인이 주체가 되는 의료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춰 ‘소비자 직접 유전자검사(DTC)’라는 새로운 형태의 유전자검사가 기존의 헬스케어산업에 큰 도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유전체정책은 낙후적이다. 정부나 의료계, 산업계, 법조계 등은 이 낯선 트렌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제 목소리만 높이는 통에 새로운 정책이 시도조차 못 되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는 의료계, 산업계 그리고 학계에 있음과 동시에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현장에 있다. 그 경험에 비춰 몇 가지 이슈들에 관해 정책적인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헬스케어의 범위는 이제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유전기법의 발전으로 인해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즉 아직 질병이 일어나지 않는 단계에서 질병의 유전적 감수성을 알려주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헬스케어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위험인자를 미리 예측해 금연이나 운동 등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해석의 오도나 왜곡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논란거리다.

대체적으로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질병 예측서비스는 의료기관을 통해 제공하거나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예방의학산업 발전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질병이 아닌 웰니스 항목이나 개인의 특성과 관련된 항목의 해석까지 병원에 가서 들어야하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이 던져진다. 이는 소비자의 알 권리, 자기 결정권과 맞물려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전 세계적인 추세는 웰니스 분야와 조상계통 분석 같은 질병 외 특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DTC 서비스를 허용하는 추세다.

둘째, DTC 유전자검사 서비스 산업의 발전은 ‘개인 데이터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기존에 질병의 진단과 치료과정에서 나오는 데이터는 그 전문성에 비춰 대체적으로 의료기관이 일정 기간 소유를 하고 개인이 데이터를 얻고자 할 때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 데이터를 획득했다.

하지만 개인의 유전적 데이터는 그 종류에 따라 용량이 의료기관에 저장하기에는 지나치게 커서 현실적으로 보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소유의 주체가 의료기관이 아닌 개인이라는 점에 더 당위성을 가진다. 따라서 환자가 능동적으로 의료인에게 개인 데이터를 공유해 의학적인 결정에 참여하는 ‘참여의료(Participatory medicine)’의 개념도 등장한 것이다.

나아가 유전체 데이터, 임상 데이터뿐 아니라 개인이 영위하는 생활환경에서 생성되는 사소한 데이터들도 개인의 건강을 관리하는 데 소중한 자료이며 또 기업에게도 자산가치가 있는 자료들이기 때문에 개인의 데이터를 거래하는 형태의 새로운 산업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데이터 보관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블록체인 등의 기술 발전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

셋째, 플랫폼의 발전으로 인해 한 번에 많은 양의 유전자검사가 가능해지면서 이에 따른 데이터의 보관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수십~수백 개의 마커를 분석하는 방식의 플랫폼과 50~80만개 마커를 한 번에 생산하는 마이크로어레 방식의 플랫폼이 가격 면에서나 정확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기에 최근 전 세계 DTC 유전자검사는 후자의 방법으로 분석하는 추세다.

문제는 소비자에게 허용된 항목의 유전자 정보들 외에 훨씬 많은 데이터베이스에 대해서는 폐기 또는 보존에 대한 법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는 나머지 데이터가 폐기돼야하지만 데이터의 자기 결정권 또는 불필요한 추가 채혈 없이 반복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데이터를 보관해야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산업도 점차 이런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넷째, DTC 유전자검사서비스 산업의 발전은 국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의 근본적인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생명윤리법 50조 3항에 따르면 의료기관이 아닌 유전자검사기관에서는 ‘의료기관의 의뢰를 받은 경우’와 ‘질병의 예방과 관련된 유전자검사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질병의 예방·진단·치료와 관련한 유전자검사를 할 수 없다.

문제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경우를 포지티브방식(허용항목과 금지항목을 모두 열거하는 것)으로 고시해 시행하도록 하기 때문에 2016년 1차 확대, 그리고 지금의 2차 확대과정에서 의료계, 산업계, 학계 등의 이해 당사자가 DTC 검사항목을 정하는 데 매번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질병이 아닌 개인의 특성이나 웰니스 항목까지 국가가 법 또는 장관 고시로 유전자 마커를 정해주다 보니 실효성 없는 검사항목들이 정해져서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수백~수천 개의 유전자 마커를 활용해 딥러닝, 인공지능 등의 기술로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을 예측하거나 개인의 특성을 설명하는 추세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에 정부의 현재 규정에 맞춰 일일이 유전자 마커를 등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과거 몇 년 동안 놀랍도록 발전한 유전체 관련 연구와 새로운 산업을 현행 생명윤리법이 규정하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모순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지나친 상업주의로부터의 소비자 보호, 개인정보가 안전하게 지켜지는 측면에서의 규제, 소비자의 알 권리, 데이터의 자기 결정권 관점에서 개선돼야 할 측면이 모두 공존하는 현 시점에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법과 규제의 개선이 필수라고 생각된다.

현재 DTC 유전자검사 제도개선에 대한 안건이 국가생명 윤리심의위원회에 상정돼있으며 DTC 유전자검사를 시행하는 회사에 대한 관리 및 규제를 강화해 현행 신고제에서 인증제로 전환하는 것은 무분별한 검사를 막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단 생명윤리법50조 3항의 내용 때문에 앞으로의 DTC 확대 항목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일이 허용 항목을 나열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유지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전 세계 어디에도 웰니스 및 개인 특성에 대해 정부가 포지티브 방식으로 심사하고 항목을 결정하는 경우는 없다.

소비자의 알 권리가 확대되고 글로벌 시장에서 DTC 유전자검사가 확대되는 현 상황에서 지나친 규제에 가로막혀 시대 흐름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위해성과 오도 가능성이 있는 질병을 제외한 웰니스 및 개인 특성에 대해서는 네거티브 방식(금지항목만 열거하는 것)으로의 규제 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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