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건강이야기] 행복이 배가 되고 평화로운 다묘가정을 이루려면?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행복이 배가 되고 평화로운 다묘가정을 이루려면?
  • 유현진 닥터캣 고양이병원(고양이동물병원) 원장|정리·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19.10.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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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진 고양이전문병원 닥터캣(고양이친화병원 인증) 원장
유현진 고양이전문병원 닥터캣(고양이친화병원 인증) 원장

“나만 없어 고양이” 꽤 익숙한 말이자 약 두 달 전에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각기 다른 여러 상황의 사람들이 고양이와 함께하며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는 영화다. 실제로 고양이는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법의 동물인 것 같다. 한번 묘연을 맺고 그 매력에 빠지게 되면 어느새 두 마리, 세 마리를 반려하게 되는 일도 잦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배변 교육을 받지 않아도 알아서 모래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보고 목욕을 자주 시키지 않아도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그래서 공동주택에 많이 살고 바쁜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유일한 단점은 털이 많이 빠진다는 것인데, 이는 규칙적인 빗질과 좋은 영양제 급여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기에 고양이의 매력을 생각할 때 알레르기만 없다면 대다수의 사람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필자도 실제로 다묘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평소 진료실에서 만나는 보호자들도 외동묘를 반려하는 경우보다 두 마리 이상의 고양이를 반려하는 경우가 더 많다. 고양이가 두 마리가 되면 행복이 두 배 혹은 세 배가 될 때도 많지만 고양이들 사이에 평화로운 합사가 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문제를 빨리 파악하고 해결해 주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전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다묘가정이라면 우리 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모두 행복한지 점검해 보고 앞으로 다묘가정을 계획 중이라면 미리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양이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 절대 아니다. 영역동물이고 독립적인 사냥을 즐기는 육식동물인 것은 맞지만, 사회적인 동물이고 따로 또 같이 공존을 즐긴다. 우리 집 고양이들이 서로의 머리를 그루밍해주고, 서로의 옆을 지나갈 때 몸을 쓱 스치며 문지르고, 같은 곳에서 몸을 맞대고 잠을 잔다면 그들은 진짜 편안한 한 가족이다. 평소 사냥놀이, 레슬링, 우다다를 함께 하고 투닥투닥해도 진짜 한 가족이다.

그런데 모든 동거묘들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가족으로 인정하지는 않되 평화롭게 어느 정도 거리와 자원을 유지하며 동거하는 고양이들도 있다. 이런 고양이들은 서로 그루밍을 해주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안전 공간에 다른 동거묘가 들어오면 하악질도 하고 경계도 하며 가끔 싸우기도 한다. 같은 침대나 소파에서 함께 자기도 하지만 항상 떨어져 있다. 보호자를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떨어져 있거나 머리, 발 쪽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보호자와 생활 공간은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적당히 평화로운 하우스메이트 관계를 선택하는 고양이들이다. 이런 경우 집 안의 모든 자원(보호자의 애정 포함)은 넉넉하고 풍족해야 경쟁과 다툼,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동거묘들이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집을 매일 전쟁터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쉽게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제적 관계를 가진 고양이들을 격리하고 다시 처음 만나는 사이로 단계를 밟아 합사를 시도해야한다.

사이가 좋든 나쁘든 실내 생활하는 고양이들은 충분한 공동 구역과 안전하게 은신처로 사용할 수 있는 개별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피는 고양이의 특성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도록 수직 공간도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캣타워, 캣폴, 캣워크 등의 수직 공간에서도 막다른 길에서 다른 고양이들과 긴장도가 높아지지 않고 피할 수 있게 퇴로가 충분히 확보돼 있어야 한다. 화장실도 여러 장소에 여러 개가 구비돼 있어야 한다. 같은 곳에 여러 개의 화장실을 나란히 배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과 식기 등도 여러 장소에 분산 배치하는 것이 여유 있고 평화롭게 식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 물, 음식, 화장실, 보호자 등의 자원을 점유하려는 고양이가 있다. 꼭 몸으로 막고 있지 않더라도 다른 고양이가 화장실 등을 사용할 때마다 지켜보고 있다가 위협을 할 때도 있으니 보호자의 관찰력이 요구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다묘가정의 또 다른 문제는 아픈 고양이가 있어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식사량, 운동량, 배변·배뇨량의 변화는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아무래도 여러 마리를 반려하다 보면 누가 밥을 덜 먹은 건지, 누가 배뇨를 덜 한 것인지, 누가 설사를 한 것인지 알아차리는데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양이 마릿수가 늘어날수록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더욱 필요하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는 건강 상태뿐 아니라 집안의 환경이나 고양이들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도 같이 상담받을 수 있고, 다묘가정이 접하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고양이를 데려오게 된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 반려하고 있는 고양이와 반드시 격리 기간을 둬야 원치 않는 위험한 전염성 질병이 모든 동거묘에게 감염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격리 기간이 끝나면 냄새 교환을 시작으로 서서히 단계를 밟아 합사를 시도해야 한다. 합성 고양이 페로몬, 펠리웨이 스프레이나 훈증기 등을 사용해서 스트레스 수위를 낮춰주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행동이 늘어난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고양이가 생긴다면 빨리 수의사와 상담하고 초기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낫다.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챙기면 행복한 다묘가정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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