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일 부인암환자들과 기차여행을 합니다”
“저는 매일 부인암환자들과 기차여행을 합니다”
  • 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0.03.18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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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민형 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정민형 교수는 “길든 짧든 주치의와 환자로 인연을 맺었다면 최대한 그 기간만큼은 서로 마음을 열고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 시간 속에서 자신도 의사로서 하루하루 더 성숙해진다”고 말했다.
정민형 교수는 “길든 짧든 주치의와 환자로 인연을 맺었다면 최대한 그 기간만큼은 서로 마음을 열고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네 인생은 여러 가지에 비유된다. 그중 유독 공감이 가는 것이 기차여행이다.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한 역 한 역 지나면서 종착역으로 향하듯 우리도 한 해 한 해를 보내면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여기 누군가의 기차여행에 기꺼이 동행하려는 이가 있다. 정민형 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다. 그는 자신과 한 번 인연을 맺었다면 길든 짧든 끝까지 책임지고 여행을 이끈다. 다양한 환자들과 매일 새로운 여행을 한다는 정민형 교수를 만나 솔직한 진료철학을 들어봤다.

■서로 마음 열고 깊은 신뢰 쌓아야

정민형 교수는 산부인과 분야 중에서도 부인암이 전문이다. 부인암은 자궁, 난소 등 여성 생식기에 생기는 악성종양을 말한다. 초기증상이 뚜렷하지 않아서 조기발견이 어려운 데다 잘 치료돼도 재발률이 높아 평생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와의 인연이 오래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정민형 교수는 단순히 인연을 오래 이어간다기보다 ‘깊게’ 이어가는 것에 누구보다 공을 들인다.

“암환자 분들은 한 번 병을 진단받으면 주치의와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시간만 함께 보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죠. 저는 환자의 인생 속으로, 환자 분들은 저의 진료 세계 속으로 들어와 서로 마음을 열고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또 암은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만큼 환자의 가정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환자의 가족들과도 두루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민형 교수는 이렇게 신뢰가 쌓이면 치료방법을 논의할 때도 훨씬 대화가 잘된다고 말했다. 부인암은 대부분 수술을 하지만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등 상태에 따라 여러 치료를 병행해야 해서 환자 그리고 가족들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다 보니 환자와 가족들이 치료과정에서 어떤 점이 힘든지도 솔직하게 말해줍니다. 이는 앞으로 치료방향을 결정하는 데 매우 귀중한 정보라 저도 더 힘이 나서 설명하게 되죠.”

더 나아가 이러한 두터운 믿음은 환자의 상태가 악화돼 DNR(Do Not Resuscitate, 임종의 순간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히는 것) 같은 무거운 얘기를 해야 할 때도 도움을 준다고.

“제가 주치의로서 믿음을 주지 못했다면 환자와 보호자가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예전에는 저도 마지막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참 두렵고 힘들었는데 환자, 보호자와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어떻게 하면 서로 잘 이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평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산부인과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짚어줄 수 있는 곳이지 절대 불편한 곳이 아니다”라며 “여성이라면 결혼 유무와 관계 없이 꼭 한 번은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는 일생에 한 번은 꼭 와야 하는 곳

끝으로 정민형 교수는 자신이 아니더라도 산부인과 의사와 꼭 한 번은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성이라면 일생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간과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는 다소 이상한 시선을 받더라도 어릴 때부터 올수록 건강에 큰 이득입니다. 만일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라면 최소한 병원 두세 곳은 방문하세요. 의사마다 경험의 깊이와 생각이 다 달라서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정민형 교수는 “암환자의 경우 오랫동안 치료해야 하는 만큼 첫 단추를 잘 껴야 한다”면서 주치의 결정에 신중할 것을 재차 당부했다.

“자, 주치의를 선택해 이제 본격적인 치료를 앞둔 상황이라면 그동안 가지셨던 고정관념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무조건 옳은 것도, 나쁜 것도 없으니까요. 치료하기도 전에 고정관념을 갖고 벽을 만들어 버리면 의사도 제시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정민형 교수는 그간 환자의 인생에 동행하면서 의사로서도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했다고 말했다.

“환자마다 상태가 다 다르다 보니 저는 매일 새로운 여행을 하는 기분입니다. 여행계획을 어떻게 짤지도 매순간 고민이죠.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저도 생각이 더 유연해지고 자신감도 붙던 걸요. 앞으로도 환자와 가족 분들의 후회 없는 여행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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