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한의 화장품 파헤치기] 누구에게나 때(垢)가 있는 법, ‘때비누’의 진실은?
[닥터 한의 화장품 파헤치기] 누구에게나 때(垢)가 있는 법, ‘때비누’의 진실은?
  • 한정선 향장학 박사(아시아의료미용교육협회 부회장) (fk0824@k-health.com)
  • 승인 2020.09.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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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 향장학 박사(
한정선 향장학 박사(아시아의료미용교육협회 부회장)

대중목욕탕은 늘 활기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에서 즐기는 수다도, 사이좋게 서로 등을 미는 모습도 훈훈하기만 하다. 더욱이 역동적인 세신사의 모습은 이 비루한 몸을 맡겨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일으킨다. 어느새 그녀의 힘찬 손길을 느끼며 때밀이침대에 누워 묵은 때를 벗기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때(dead skin)는 피부각질과 피지, 땀 등이 먼지와 혼합된 형태로 몸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건강한 피부의 경우 통상 28일주기로 죽은 각질이 탈락되고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노화과정을 거치면서 각질탈락주기가 불규칙해진다.

생명력을 다한 피부세포가 여러 가지 이유로 탈락되지 못하고 피부에 달라붙어 있을 때 희거나 검은색의 때가 된다. 때는 정기적으로 ‘밀어내야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때수건’과 ‘때밀이’라는 독특한 우리만의 목욕문화가 완성됐다. 더구나 가벼운 비누칠만으로도 굵은 때가 밀리는 ‘때비누’까지 등장했으니 청결강박증에 걸린 이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상피부의 각질탈락주기가 28일인데 때비누를 살짝 칠하기만 해도 얼마 전 밀어낸 때가 계속 나온다. 순간 ‘내 피부의 재생능력이 너무 탁월해 새 피부가 벌써 생성됐나?’라고 착각하지만 비밀은 바로 때비누의 화학성분에 있다.

때비누는 일반비누처럼 세정기능을 하는 계면활성제와 보습성분, 기타 화학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때비누를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때는 ‘셀룰로오스’와 여러 폴리머(화장품점증제 및 피막형성역할), ‘세트리모늄클로라이드’ 등 때비누에 함유된 화학성분의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 성분은 때비누뿐 아니라 각질을 제거하는 필링화장품에도 자주 배합되는 성분이다.

셀룰로오스는 식물섬유에서 얻어지는 다당류로 화장품은 물론 식품에까지 널리 활용되는 성분이다. EU화장품규정에서 식품첨가물FAO/WHO합동전문가위원회는 ‘체중 1kg 당 0~25mg을 일일섭취허용량’으로 규정했으며 화장품성분으로 안전하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화장품원료판매업체에서는 셀룰로오스를 ‘필링파우더’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심지어 ‘때처럼 밀리는 필링 젤 만드는 레시피’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다양한 폴리머도 비슷한 역할을 하며 세정성분이 강한 세트리모늄클로라이드의 경우 물의 계면장력을 변화시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화학성분이다.

결론적으로 때비누는 친수성을 가진 셀룰로오스가 물과 접촉했을 때 물분자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부풀려 진짜 때처럼 눈속임을 했던 것에 불과하다. 결국 여러 종류의 폴리머와 세트리모늄클로라이드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일종의 화합물질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호두나 밤껍질 등 곡물을 첨가해 천연유래성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저자극성이라고 내세우지만 결국 스크럽(문질러 씻는 행위)을 통한 피부자극일 뿐이다. 여기에 때수건까지 가세하면 피부장벽이 얼마나 손상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때는 보기엔 불편하지만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한다. 왜냐하면 때는 피부세포를 보호하는 한편 수분증발을 막아 보습을 유지하고 세포신호전달기능과 세포증식조절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때는 무조건 밀어내 없애는 것이 아니라 피부건강을 위해 유지해야하는 ‘내 몸의 일부’다. 물론 오래 씻지 않아 너무 더러울 경우 진드기에게 좋은 먹잇감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현대인에겐 극히 드문 일일 테니 무시해도 좋을 듯싶다.

노트북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필자의 피부에서는 자연스러운 각질탈락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때(垢)가 있는 법. 때비누에 대한 환상과 기대는 버리고 ‘청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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