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소아원형탈모, 가발 지원 절실한 이유
[특별기고] 소아원형탈모, 가발 지원 절실한 이유
  • 허창훈 대한모발학회 국제관계이사(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0.12.2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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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의 유형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원형탈모는 아이들에게도 흔히 발생합니다. 하지만 성인보다 임상시험이 미진해 치료제 승인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더욱이 가발은 현재 의료보장구로 인정받지 못해 급여권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여러 치료에도 발모효과를 못 본 원형탈모환아들은 그야말로 경제적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헬스경향은 대한모발학회 소속 의료진의 기고글을 통해 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소아원형탈모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마지막 주제는 ‘소아원형탈모, 가발 지원 절실한 이유’입니다. <편집자 주> 

허창훈 대한모발학회 국제관계이사(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
허창훈 대한모발학회 국제관계이사(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20년 전에 나왔던 ‘굿윌헌팅’이라는 영화에서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라는 심리학자가 윌 헌팅(맥 데이먼)의 꽁꽁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줬던 말이다. 원형탈모환아들의 보호자, 특히 어머니들은 아이와 함께 진료실을 방문할 때마다 대부분 죄지은 사람처럼 한쪽 구석에서 전전긍긍하고 계신다.

“내가 혹시 우리 애를 임신했을 때 뭔가 잘못해서 이런 게 아닌가요?” 진료실에서 흔히 듣는 이 질문에 필자가 항상 하는 대답은 “엄마 잘못도 아니고 아이 잘못도 아닙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이 병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는 일은 없게 하세요.”

머리 한 올도 보이지 않는 원형탈모환아들이 병원에 처음 방문할 때 항상 물어보는 것이 교우관계다. 친구들이 심하게 놀리지는 않는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잘 이해해주는 친한 친구가 있는지 말이다.

원형탈모는 첫 발병연령이 어릴수록 재발이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주 어려서는 대인관계가 거의 없으니 심리적으로 문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가 되면서 대인관계로 인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치료됐다가 재발한 경우라면 실망감이 더욱 클 수 있다.

이때마다 의사로서 내 지식이 부족한 건 아닌지 반성도 하면서 얼른 모든 환아를 빨리 치료해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아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하지만 원형탈모는 쉽게 치료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또 소아는 성인과 달리 성장에 대한 장기 부작용도 감안해야하고 통증에 훨씬 더 민감해서 성인에서 효과적이었던 여러 치료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나마 탈모가 심하게 진행된 환아들에게 면역치료라고 하는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는데 아직 정식으로 허가받고 제약회사에서 출시되는 약제가 없어서 실제 치료에 적용하고 있는 병원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쉽게 탈모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가발’이다.

원형탈모는 속눈썹의 소실로 인한 안구 염증, 코털의 소실로 인한 먼지유입의 증가 외에 뚜렷하게 보이는 건강상의 위협은 없다. 하지만 대머리라고 불리는 안드로겐 탈모와는 달리 자가면역질환 가운데 하나로 발생하기 때문에 원형탈모, 특히 전두탈모(전신탈모)에 대해서는 의료보험혜택을 충분히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가발이 약은 아니지만 환아의 아픔을 달래주는 측면에선 약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의료보험의 혜택을 줄 수 있다면 훨씬 더 가치 있을 것이다. 이미 미국, 영국,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소아는 물론 성인의 경우에도 원형탈모증을 앓고 있다면 가발구입비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도상의 문제로 인해 전혀 지원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각국의 상황을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미네소타주와 뉴햄프셔주에서는 원형탈모로 인해 가발이 필요한 경우 최대 350달러(약 38만원)를 보조해주고 있고 영국의 의료보험인 NHS도 16세이하 소아나 16~18세의 학생에게는 원형탈모뿐 아니라 항암치료로 인한 탈모에도 최대 287.2파운드(약 42만원)를 지원하고 있다.

호주의 중앙정부에서는 1000호주달러(약 81만원)의 세금감면과 더불어 각 주정부에서도 추가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빅토리아주의 경우 성인은 240호주달러(약 20만원)를 지원하지만 16세이하의 소아에게는 600호주달러(약 49만원)를 지원하는 등 소아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뉴질랜드도 소아의 경우 1226.66 뉴질랜드달러(약 94만원)의 보조금을 정부에서 지급하고 있다(상단 표 참고). 

또 대부분의 나라에서 원형탈모환아들이 사용하는 가발을 단순가발과 달리 의료용가발(medical wig) 또는 두피보장구(scalp prosthesis)라는 단어로 구분하고 있다. ‘보장구’라는 단어는 장애인의 활동을 도와주는 기구를 뜻한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면 이 가운데 장애인 보장구로 지정된 품목의 경우 요양급여를 실시할 수 있어서 의지, 보조기, 교정용 신발류 등은 이미 보험급여를 받고 있다.

대한모발학회와 원형탈모환우회에서는 소아만이라도 원형탈모환자들이 사용하는 가발을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행 법규상으로는 보장구의 경우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용하는 환자가 장애인으로 등록돼야한다. 두 번째로 가발이 장애인 보장구로 등록이 된 품목이어야한다. 이 중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장애인 등록이다. 장애인으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장애등급에 대한 기준을 충족하고 등급결정 심사를 통과해야하는데 소아원형탈모가 적용될 만한 기준은 ‘안면장애’로 이 경우에도 호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다.

원형탈모는 흉터로 인한 탈모와는 달리 언젠가는 치료될 가능성이 있어 장애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두피가 안면에 포함되는지 여부 역시 항상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중증의 원형탈모증은 외모로 인한 제한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수 있고 특히 성장기의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성인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감안해 법규를 개정해서라도 원형탈모로 고통받는 환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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