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늘어난 기대수명 속 주목해야 할 ‘만성림프구성백혈병’
[특별기고] 늘어난 기대수명 속 주목해야 할 ‘만성림프구성백혈병’
  • 신호진 부산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2.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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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진 부산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신호진 부산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본격적인 ‘고령사회(65세 이상의 고령층이 전체 인구의 14%)’로 진입한 한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지난해 83.3세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대비 3.1세 증가한 것으로 OECD 국가의 평균 기대수명인 80.7세보다 2년이나 긴 수준이다. 이에 비춰보면 한국의 기대수명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관심은 오래 사는 것에서 ‘기대수명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 옮겨갔다. 건강하지 못한 채 여명만 늘어나는 것은 원치 않는 생명 연장인 셈이다.

하지만 연령이 증가하면 필연적으로 여러 질병에 대한 발병위험이 커진다. 어떤 질병은 고령환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도 한다. 질병이 생기고 악화되는 속도 등은 제각각이지만 생각지 못한 질병이 고령에 생겨 잘 관리되지 않는 것은 여러 부담을 증가시키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을 들 수 있다. 국내에서는 연간 신규 환자가 200여명 내외일 정도로 매우 적어 생소한 혈액암으로 꼽힌다. 하지만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대부분 고령에서 발병해 환자들의 평균연령이 72세에 달한다. 질환도 생소하고 걸리는 사람도 적은 데다 고령에 발생하기 때문에 환자가 희망을 갖고 진단·치료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병이기도 하다.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은 이미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고령환자에서 재발이 매우 잦은 병이다. 암 치료에서 재발이 잦다는 것은 치료를 거듭할수록 항암제 독성으로 인해 전신 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이 높고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치료효과가 점차 감소해 결국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들이 지레 희망을 접고 상심하는 큰 이유다.

이런 질병에 변화가 생긴 것은 최근이다. 다행히 활발한 신약 개발과 허가가 이뤄지는 추세에 따라 기존 만성림프구성백혈병 치료의 한계점을 보완할 수 있는 치료제가 국내에도 도입됐다. 그간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게 한 재발성·불응성 만성림프구성백혈병 치료에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이다.

신약은 지속적으로 복용하면서 여명을 이어가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정 기간 치료 후 더 이상 항암치료 없이 삶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현재 국내에서 2차 치료 옵션으로 허가받은 신약 병용요법의 경우 치료효과는 유지하면서 다른 화학요법 없이 2년의 고정기간만 치료하면 되기 때문에 이후 무치료 기간(Off-Treatment) 동안 독성 발현을 최소화해 환자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

치료효과도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게 개선됐다. 2년간 고정치료만으로 표준치료와 비교해 질병의 진행위험은 81% 감소하고 전체 생존율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완전 관해보다 완치에 더 가까운 단계를 측정하는 미세잔존질환(MRD-Minimal Residual Disease)-음성 도달률 역시 표준치료의 13.3%보다 4배 이상 높은 62.4%를 보이며 만성 림프구성백혈병의 완치 가능성을 높인 치료제로 평가되고 있다.

또 최근 미국혈액암학회에서 발표된 자료에서는 2년 고정 치료 후 3년 이상 치료를 중단한 상황에서 질병이 진행하지 않고 생존하는 기간의 중앙값이 53.6개월로 기존 치료의 17개월 대비해 그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럼 그동안 마땅한 치료방안이 없던 고령의 환자들이 완치를 기대하며 치료받고 있을까?

2년 고정 치료기간으로 치료하는 병용요법이 지난 3월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보험급여 적용이 되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절박함은 현재 진행형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허가 이후 급여 절차는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시간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재발성·불응성 만성림프구성백혈병환자들은 신체적·심리적 부담에 더해 경제적 부담까지 안고 치료를 받거나 경제 활동에서 은퇴한 고령환자의 특성상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에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한정적인 재원과 시급성을 고려할 때 치료가 시급한 고령의 절박한 환자들의 상황과 더불어 2년 고정치료로 치료 기간을 단축시켜 비용은 줄이고 완치 가능성은 높인 만성림프구성백혈병 신약에 대한 급여 논의는 우선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고령환자들은 그동안 사회 구성원으로 최선을 다했고 이제 100세 시대를 누릴 권리가 있다. 희귀질환인 데다 코로나19로 상황까지 더해 소외돼 있는 고령의 만성림프구성백혈병환자들도 건강하게 자신의 수명을 온전히 살 수 있도록 정부의 세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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