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없고 절차 복잡…있는 의욕도 꺾인다
예산 없고 절차 복잡…있는 의욕도 꺾인다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1.03.2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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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有名無實) 의료정책] ③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2000년 영국에서 한 소녀의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와 의회는 ‘클림비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아이를 12번이나 구할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소관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후 영국은 아동법을 제정해 부실했던 아동학대대응체계를 개선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양천 아동학대사건’이 발생하자 그제야 아동학대대응과를 설립하는 등 주먹구구식 대응에 그쳤습니다. 이 때문에 피해아동들은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이 있는데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편집자 주>

정부는 2017년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위해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을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관련조항이 강제성을 띠지 않는 등 여러 이유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양천 아동학대사건’ ‘구미 여아 3세 사망사건’ 등 최근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사건이 큰 사회적 충격을 일으켰다. 문제는 국내 아동학대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학대피해아동 보호건수는 2017년 2만2367건, 2018년 2만4604건, 2019년 3만45건으로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대응과 등 여러 정책을 통해 이를 예방하려 하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무도 찾지 않은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정부는 2017년 아동학대 피해자들을 위해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을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실용화가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은 아동복지법 제29조 7항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에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조항이 강제성을 띠지 않은 탓에 실제로 지정된 곳은 거의 없다. 결국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설치지역은 전국에서 포항과 임실, 단 2곳에 불과하다. 더욱이 보건복지부 지정 전담의료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선우 의원은(더불어민주당)은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지정을 의무화하고 관련정보를 아동통합정보시스템에 등록해 아동학대사건 대응의 전 과정에서 전담의료기관을 활용하는 ‘아동복지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강선우 의원은 “현재 보건복지부와 업무협약(MOU)를 맺은 200여 의료기관이 있지만 법적 의무가 없다 보니 한계가 있다”며 “근본적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미 없는 정부논의, 과연 실효성은?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프라구축이 최우선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2018년 기준 전국 아동학대상담건수는 3만3532건인데 비해 아동보호기관은 63곳으로 1곳당 약 532건을 다루고 있었다. 결국 복지부 ‘2019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나타난 2018~2019년 사망아동은 무려 70명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온 적 있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아동학대조사 및 학대피해아동의 보호조치, 응급조치, 피해아동보호계획 수립부터 사례관리, 종결까지 전 과정에 개입해 업무를 수행한다.

청원인은 “아동학대 피해조사는 주로 6시 이후에 시작되며 응급조치라도 하는 날이면 새벽 2, 3시 퇴근도 허다하다”며 “아동이 신체학대를 당했다면 의료기관으로 보내야하는데 학대피해아동에 관한 의료비는 단 1원도 예산에 편성되지 않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행정안전부와 아동권리보장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국 229개 지자체 가운데 복지부의 배치기준을 충족하는 곳은 56곳(24%)에 그쳤다. 단 한 명도 배치하지 않은 곳이 무려 102곳(45%)에 달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류정희 아동복지연구센터장은 “생애주기별 학대경험의 상호관계성 연구에 따르면 가정폭력 가해경험 응답자의 52.8%는 어렸을 때 동일한 학대피해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국내 중앙부처의 아동·청소년 관련업무는 복지부, 시·도 아동복지과, 민간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만큼 중앙기구를 통합해 전담인력을 배치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복잡한 절차에 전담병원 의욕 하락

다행히 지난해 10월 양천 아동학대사건을 기점으로 국회는 ‘아동학대현장 공공화’를 시행, 전담의료기관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올 1월 의료계 177개 단체와 공동으로 아동학대 피해대응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의료기관 아동학대 자동신고 및 익명신고시스템 구축 ▲신고 후 사후처리진행사항 등 피드백 ▲지역별 전담의료지원체계 구축 ▲아동학대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회복프로그램과 심리지원프로그램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계는 전담의료기관 활성화를 위해서는 절차간소화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전담의료기관 지정을 원하는 의료기관은 법인정관, 민간의료기관 증명서류, 복지부 검사 등을 거쳐야한다. 또 전담의료기관으로 지정되면 보호전문기관, 복지시설, 경찰서, 법원 등의 요청이 있는 경우 소명, 진술, 서류작성 및 제출 등 모든 과정에 대한 부담을 담당의사가 져야한다.

게다가 전담의료기관이 돼도 국립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은 득 될 것이 없다. 아동정책예산은 대부분 복권기금으로 활용돼 국비를 요청해도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곽영호 교수는 “해외에서는 학대진단코드를 만드는 등 절차를 간소화하고 진단서 한 장으로 학대여부를 판단, 의료인을 보호하고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끔 제도가 뒷받침돼 있다”며 “정부가 아동학대 전문의료진 및 아동보호전문기관을 병원마다 배정해 보다 효율적으로 학대아동을 치료할 수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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