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가을 ‘밤’ 건강하게 즐기려면 찐 밤보단 ‘생(生)밤’으로!
[한동하의 식의보감] 가을 ‘밤’ 건강하게 즐기려면 찐 밤보단 ‘생(生)밤’으로!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9.0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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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가을이 되면서 콩만한 밤송이가 제법 크게 영글어가고 있다.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가시 밤송이로 무장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갈색으로 잘 익은 채 떨어질 것이다. 밤은 맛도 좋지만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심지어 밤껍질도 버릴 게 못 된다.

밤나무는 한자어로 율(栗)이라고 한다. <설문해자>에는 밤꽃과 밤송이가 늘어진 상태를 형상화해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했다. 율(栗)자는 초목의 열매가 늘어져 주렁주렁한 모양을 본뜬 한자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밤나무에는 엄청나게 많은 밤꽃이 피면서 밤송이도 밤꽃 수만큼 생기니 밤나무를 율(栗)이라 한 것이다.

밤의 가장 대표적인 효능은 다음과 같다. <동의보감>에는 ‘밤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짜며 독은 없다. 기를 길러주고 장위를 든든하게 하며 신기(腎氣)를 보하고 배가 고프지 않게 한다’고 했다. 이를 보면 밤은 과거부터 선조들의 건강을 돕고 동시에 구황식품으로도 다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생밤을 씹어 먹으면 달다고 느낀다. 그런데 과거 문헌 기록들은 밤의 맛을 달면서도[甘] 특히 ‘짜다[鹹]’고 표현하고 있다. 밤의 맛이 짜다는 표현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옛날 사람들의 미각력이 더 섬세했을 것이다. 실제로 짠맛은 오행적으로 콩팥과 관련돼 있어서 밤의 짠맛은 밤이 콩팥의 기운을 돕는 이유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밤은 생으로 먹는 것이 좋을까, 익혀 먹는 것이 좋을까.

밤은 말려서 생밤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식료본초>에는 ‘생것으로 먹으면 허리와 다리를 치료한다. 찌거나 구워 먹으면 기를 막히게 한다. (중략) 햇빛에 말린 밤이 가장 좋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생으로 먹는 것이 좋은데 바람에 말려 먹는 것이 햇볕에 말려 먹는 것보다 좋고 익혀 먹거나 구워 먹는 것이 쪄 먹는 것보다 좋다’고 했다. 이 내용을 보면 밤은 생으로 말려서 먹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밤을 약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건율(乾栗)이나 황율(黃栗)이라고 해서 말린 밤을 넣는다.

<동의보감>에는 절반 정도만 익을 정도로 불에 구워서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밤은 뜨거운 잿불에 묻어 진이 나게 구워 먹어야 좋다. 그러나 속까지 익히지 말아야 한다. 속까지 익히면 기가 막히게 된다. 생으로 먹어도 기를 발동하게 하므로 잿불에 묻어 약간 구워 그 목기(木氣)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익혀 먹으려면 구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밤을 쪄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찐 밤은 소화가 잘 안 된다. 소화력이 약한 노인들은 찐밤을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평소 소화력이 약하다면 밤을 삶아서 그 물만 마셔도 좋다. 특히 체기가 있는 경우 찐 밤을 피해야 한다.

찐 밤은 영유아들이 이유식으로도 많이 먹는다. 엄마들은 찐 밤을 먹이면 아이들의 살을 찌운다는 말들도 많이 하지만 <본초강목>에는 ‘소아에게 다식(多食)해서는 안된다. 생것은 소화되지 않고, 익은 것은 기운을 체하게 한다. 음식을 멀리하게 하면서 충(蟲)이 생기게 하며 흔히 발병하게 된다’고 했다. 어쨌든 밤이 소화가 안 되는 식품이라고 돼 있다.

밤은 쪄서 먹기보다 말려서 생으로 먹는 것이 좋다. 너무 딱딱한 생밤은 하루 전날 물에 불려놓으면 한결 먹기 편해진다. 올가을에는 생밤으로 더욱 건강하게 밤을 즐겨보자(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일반적인 밤의 효능인 ‘익기건비(益氣健脾; 기운을 나게 하면서 췌장을 튼튼하게 함)’ 효능은 평소 소화가 잘되는 경우에 한해 적용되는 효능이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되고 만성적인 체기가 있거나 명치부위가 답답한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밤을 함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생밤도 그렇지만 찐 밤은 더더욱 피해야 한다.

따라서 무작정 밤을 이유식으로 먹이는 것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밤을 먹인 이후로 다른 음식을 잘 먹지 않으려고 한다면 밤이 체기를 유발한 것일 수 있다. 특히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장기간에 걸쳐서 먹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에게 밤을 꼭 먹이고 싶다면 말린 밤을 가루 내 미음 등에 소량씩 섞여 먹일 것을 권한다.

밤은 노인들의 허리와 다리도 튼튼하게 한다. <본초강목>에 밤은 수과(水果)라고 했다. ‘수(水)는 콩팥과 관련된 오행의 기운으로 따라서 밤은 신과(腎果)이면서 신병(腎病; 비뇨생식기 질환, 허리 질환)에는 밤을 먹는 것이 좋다’고 했다. 옛날에 허리와 다리가 약한 사람이 있었는데 밤나무 아래에서 밤을 몇 되 정도 먹고 난 후에 곧바로 일어서서 걷게 됐다는 재밌는 일화도 있다.

<본초강목>에는 ‘밤을 생식하면 허리가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또 ‘근육과 뼈가 부서져서 붓고 통증과 함께 어혈이 있는 경우 생밤을 씹어서 먹는 것이 효과가 있다’라고 했다. 옛날에는 3~4세가 돼도 잘 걷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생밤을 먹게 했다. 만일 말린 생밤이 딱딱해서 먹기 힘든 경우는 하루 전날 물에 불렸다가 씹어 먹게 하면 좋다. 치아가 약한 노인들에게도 좋은 섭취방법이다.

밤을 까다 보면 밤톨이 3개가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때 가운데 끼어 있는 것을 율설(栗楔)이라고 한다. 설(楔)자는 문설주나 쐐기를 의미한다. <본초강목>에는 가운데 끼인 율설은 ‘근육과 관절통에도 좋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직접 밤송이를 까서 율설을 발견한다면 욕심내볼 만하다.

밤껍질도 버려선 안 된다. 안쪽에 붙어 있는 자잘한 솜 같은 털을 율부(栗荴)라고 불렀는데 이것들을 긁어모아 가루 낸 후에 꿀과 함께 섞어서 얼굴에 바르면 광채가 나고 아주 신속하게 추문(皺文; 주름)이 없어진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밤껍질 성분을 포함한 화장품이 개발돼 있다. 또 밤껍질을 통째로 다려서 먹으면 ‘반위(反胃; 위장병의 일종)와 소갈(消渴; 당뇨에 의한 갈증)을 멎게 하고 그치지 않는 코피를 멈추게 한다’고 했다. 과연 밤은 아낌없이 주는 과실이다.

우리는 특정 식품들을 늘 먹어왔던 방법대로 먹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먹는 방법이 존재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먹는 습관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익혀 먹는다고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특히 밤은 익혀 먹는 것보다 말린 생밤이 건강에 좋다. 이 가을 건강해지려거든 밤 따러 가세~ 생밤 주우러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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