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속은 비어도 건강엔 알찬 ‘대파’
[한동하의 식의보감] 속은 비어도 건강엔 알찬 ‘대파’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10.04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파는 흔히 먹는 식재료다. 맵지만 독특한 향미와 식감이 있어 요리에 자주 이용된다. 날이 추워지면 더더욱 찾게 되는데 실제로 파는 추운 날일수록 건강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파’ 하면 보통 대파를 말한다. 원산지는 중국 서부로 알려졌다. 대파의 식용역사가 길어 서양에서 들어온 파는 ‘양(洋)파’라고 불렀다. 서양에도 대파와 비슷한 파(Allium ampeloprasum L.)가 있는데 동양의 대파(Allium fistulosum)와는 종이 다르다. 서양 대파는 보통 리크(leek)라고 부르며 지중해와 서남아시아가 원산지다. 서로 구별하기 위해 서양 대파, 동양 대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페인의 유명한 대파구이 칼솟타다도 서양 대파구이다. 우리나라에도 대파구이가 있다. 예로부터 진도 사람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겨울에 대파를 수확할 때 모닥불을 피워놓았는데 거기에 생대파를 올려 간식처럼 구워 먹었다고 한다. 필자도 먹어본 적이 있는데 맵지 않고 단맛이 나 간식으로 즐기기에 충분했다. 대파구이는 원래 스페인만의 전통요리가 아니었다.

대파는 한자어로 총(葱) 또는 총(蔥)이라고 부른다. 총(葱)이란 이름은 ‘줄기는 곧고 속이 비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따라서 파를 규(芤)라고도 부른다. 한의학에서도 속이 비어있는 듯한 맥을 규맥(芤脈)이라고 부른다.

파 중에서도 겨울파는 동총(凍蔥)이라고 했다. 동총은 겨울이 지나도 죽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그만큼 추위에 강하다는 의미다. 동총은 식품으로 먹거나 약으로 쓰기 가장 좋다고 했다. 

파는 부위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가장 먼저 싹이 나온 것을 총침(葱針)이라고 하고 푸른 잎을 총청(葱靑) 또는 총엽(葱葉), 곁 껍질은 총포(葱袍), 줄기는 총백(葱白) 등으로 부른다. 열매는 총실(葱實)이다. 이 중 가장 흔하게 약용하는 부위는 바로 총백이다.

<본초강목>을 중심으로 효능을 살펴보면 총백은 ‘맛이 맵고 기운은 평하고 독은 없다’고 했다. 푸른색 잎인 총엽은 기운이 뜨겁고 흰 줄기 총백은 서늘하다고 했다.

대파는 감기약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감기로 열이 나거나 두통이 있을 때는 흰 부위인 총백만 사용해야 한다. 실제로 기록에 따르면 ‘총백을 다려서 섭취하면 감기로 인한 오한·발열, 얼굴과 눈의 부종을 치료하고, 곧잘 땀이 나게 한다’고 했다. 특히 감기로 인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두통에 특효다. 처방으로는 잔뿌리가 붙은 총백 반근(300그램)과 생강 2냥(75그램)을 다려 복용한다. 이 용량의 1/3 정도만 해도 효과가 있다.

총백은 식품 중에서도 대표적인 발한 해열제에 속한다. 단 대파를 감기약으로 섭취할 때는 너무 오래 끓이지 말아야 한다. 특유의 매운맛은 황화아릴성분 때문인데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 땀이 나면서 해열도 된다. 너무 오래 끓이면 감기약으로 효과가 없다.

총백은 임신부의 감기에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대파는 태동(胎動)이 심한 경우 안태(安胎) 작용을 해 임신 초기에 섭취하면 좋다. 단 임신 후기에 너무 자주 섭취하면 태열(胎熱)을 조장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총백은 대소변을 통리(通利)한다. 배변과 소변을 잘 나오게 하는 것이다. 특히 갑자기 소변이 나오지 않을 때 찜질법으로 활용됐다. 이때는 총백 3근(18kg)을 볶아 두 개로 나눈 뒤 번갈아 아랫배에 찜질하면 기가 통하면서 바로 소변이 나온다고 했다. 실제로 대파찜질법은 전립선비대증이나 전립선염과 관련된 배뇨곤란에 도움이 된다.

또 과거 소변이 갑자기 나오지 않을 때 가는 파줄기를 배뇨관으로 사용했다. 이것을 총관도수법(葱管導水法)이라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소변불통과 방광이 불러오는 위급한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당나라 손사막의 <비급천금요방>에 처음 기록된 응급처치법으로 <본초강목>에도 기록돼 있다. 참 흥미로운 기록이다.

대파는 감기 완화에 효과가 있는 등 날이 추워질수록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채소다. 단 대파 부위별로 효능이 달라 관련 정보를 정확히 알아두고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좋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발이 심하게 부었을 때도 대파족욕을 하면 좋다. 콩팥질환을 포함, 수액대사장애로 인해 발의 부종이 발생했을 때 대파를 다린 물에 하루 3~5차례 정도 발을 담그면 묘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대파족욕 덕분에 혈액순환과 수액대사가 좋아진 결과일 것이다. 대파 다린 물로 타박상 부위를 찜질해도 효과가 좋다.

대파의 씨도 약용한다. 대파 씨는 총실(葱實)이라고 하는데 ‘맛이 맵고 기운은 매우 따뜻하며 독은 없다’고 했다. 효능으로는 ‘눈을 밝게 하고 중기(中氣)가 부족한 것을 보한다. 또한 속을 따뜻하게 하고 정(精)을 더해준다’고 했다. 단 여기서의 안구증상은 단순히 나이 들어 침침해진 눈을 의미한다.

눈이 침침할 때는 대파 씨를 가루 낸 다음 한 번 끓여낸다. 이후 거품과 찌꺼기를 제거한 뒤 쌀을 넣어 죽을 쒀 먹으라고 했다. 또 가루 낸 것을 오동나무씨 크기(약 5mm)로 환을 빚어 식후 한번에 20알씩 하루 3회 복용하라고 했다. 단 안구충혈이나 결막염 등의 안질환에는 금기시된다.

또 대파를 다식(多食)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머리카락이 손상된다고 했다. 대파는 기운을 발산시켜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을 허하게 하고 뼈마디를 벌어지게 하며 땀을 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대파의 매운맛은 그 자체로 약이 되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생강차는 있어도 파차는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일까.

대파와 함께 먹으면 안 되는 식품으로는 대표적으로 꿀이 있다. 생대파와 꿀을 함께 먹으면 설사를 일으키고 구운 대파와 꿀을 함께 먹으면 기운을 막아 죽게 한다고 했다. <의종금감>에도 ‘마늘과 파는 꿀과 함께 먹으면 설사를 낸다’고 했다. 아마 대파는 기운을 흩트리고자 하는데 꿀은 기운을 모이게 하니 기운이 서로 상반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파는 피부가려움증이나 안질환에는 섭취하지 않는다. 대파, 마늘, 양파, 부추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식품에는 모두 황화아릴성분이 있어 기운이 뜨겁고 맵다. 따라서 피부질환자나 안질환자의 증상을 악화시킨다.

대파의 매운맛은 너무 기운을 발산시키는 것만 오로지 주의하면 위아래로 기를 통하게 한다. 으레 어머니들은 탕을 모두 끓인 다음 마지막에 대파를 넣는다. 약성을 잃을까 걱정한 것일까. 오래 익히면 단맛이 난다는 것도 안다. 대파의 매운맛과 익혔을 때의 단맛은 제대로 활용하면 약으로도 식품으로도 가치가 뛰어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