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중독예방관리법, 정말 ‘악법’일까?
[시시비비] 중독예방관리법, 정말 ‘악법’일까?
  • 김치중 기자
  • 승인 2013.11.26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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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영국을 강타한 자전거 열풍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산업이 바로 '모자 산업‘이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자를 즐겨 썼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다 바람에 모자가 벗겨지는 일이 잦아지자 아예 모자를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탔다. 모자산업계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모자산업계는 모자산업이 무너지면 영국경제가 타격을 입는다는 논리를 내세워 영국 의회를 설득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법이 바로 ‘모자법’. 이 법에 따라 자전거를 사는 사람들은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모자를 세 개씩 구입해야 했다.

지난달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4대 중독’ 예방관리에 관한 공청회가 끝난 후 게임업계를 주축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이 대표 발의한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하 중독예방관리법)’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게임업체 등은 이 법을 ‘게임중독법’이라며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국가 미래성장 동력인 게임산업을 규제하는 선봉에 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임업체들은 “물질중독이 아닌 행위중독으로 볼 수 있는 게임을 마약, 도박, 알코올과 함께 중독으로 몰고 간 악법”이라며 “게임 개발자들이 마약 제조상과 같다는 것인가”라고 반발하고 있다. 또 중독예방관리법을 대표 발의한 신의진 의원이 국회의원 전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한 점을 들어 “정신과 의사들의 밥줄을 보장하는 법”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법 제정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규제법이 아닌 기본법으로 중독의 통합적 관리와 예방치유시스템의 구축이 골자이고 현실에 존재하는 중독자들과 가족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 마련된 법안을 산업을 죽이는 법안으로 둔갑시키고 있다”며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스티글러는 ‘포획이론’을 통해 이익집단이 공익을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고도의 전문성을 띈 산업에서 정부가 이익집단의 포장된 주장과 설득에 넘어가 이익집단의 의도대로 정책이 흘러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익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로비뿐 아니라 논리와 정책수단도 강구한다. 감성적이고 정교한 논리를 전개해 이해당사자가 아닌 이가 들으면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다수의 피해자들은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상실하게 된다. 결국 어느 쪽이 더 정치가와 관료들을 포획했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중독예방관리법을 대표 발의한 신의진 의원, 아니면 “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규제보다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토론하며 결정하는 자율적인 규제가 답”이라고 강변한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장인 남경필 의원이 이익단체들에게 포획을 당한 것일까.

중독예방관리법이 모자법과 같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악법이 될지, 아니면 이들 중 누가 이익단체에 포획 당했는지 지켜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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