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는 혼자가 아니다
정자는 혼자가 아니다
  • 심봉석 이대목동병원비뇨기과 교수 (gatechenps@gmail.com)
  • 승인 2014.08.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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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한 개만 배란되는 난자에 비해 한번 사정으로 배출되는 정자는 1억마리 이상이다. 일반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가장 강하며 우수하고 빠른 단 한 마리의 정자만이 난자와 결합해 수태에 성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하고 우수한 정자가 난자와 수태하는 것은 맞지만 ‘치열한 경쟁’에 의한 것은 아니고 나머지 정자들의 협조와 희생에 의해 ‘무사히’ 난자와 결합하는 것이 맞다.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올챙이 비슷한 모양으로 이동하기 위해 끊임없이 꼬리를 움직여 생긴 오해일 뿐이다.

임신을 위해 정액이 일차적으로 배출되는 여성의 질에는 정자들에게 위협적인 요소들이 많다. 물론 여성의 질도 일부러 정자를 배척하기 위해 이런 유해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종족번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궁을 보호하고 한 달에 한 번밖에 배출되지 않는 난자를 안전하게 보존해 건강하게 수태하기 위한 기본적인 환경일 뿐이다.
 

여성의 해부학적 특성상 질과 자궁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항문 주위에 존재하는 대장균이나 포도상구균 등 장내세균들이다. 여성의 몸에는 이러한 유해균 침입을 막기 위해 젖산간균(lactobacillus)이 존재하고 또 질의 산도를 약산성(pH 4.5)으로 유지한다.

여성의 질에서 약간 시큼한 냄새와 맛이 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과도한 질 세정제나 비데사용, 잦은 성관계로 인해 산도균형이 깨지면 질염이 발생한다. 이런 질의 안전유지환경이 정자도 외부위해물질로 판단해 똑같이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정자들끼리 협력하고 동료정자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한 번에 사정하는 정액의 양은 1.5~5㎖이며 사정의 빈도가 높을수록 양이 적어진다. 정자는 남자의 요도를 통해 여성의 질에 전달돼야 하는데 정액이 완전한 액체상태로 분사된다면 정자가 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흘러나갈 수 있다. 정자손실을 최소화하고 한꺼번에 질 내에 사정하기 위해 정액은 일단 끈적끈적한 상태로 분출된다. 사정 후 30분 이내에 정액이 액화되면 정자가 움직일 수 있게 돼 자궁을 향한 운동이 시작된다.

정자를 실어 나르는 정액은 정낭에서 60%, 전립선 30%, 나머지는 구도에 있는 요도분비선에서 만들어진다. 이중 전립선분비액에 의해 정액산도가 pH 7.2~8.0 정도의 약알칼리성이 되는데 이는 여성 질의 약산성을 중화시키기 위해서다.

음경에서 분출돼 질에 떨어진 정자는 1분에 1~4mm의 속도로 나팔관 입구까지 20cm를 이동하는데 30~60분 정도 걸린다. 페르시아 100만 대군과 대적한 스파르타의 300전사처럼 나팔관 입구에 도착해 난자와의 결합을 시도하는 정자는 300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질 내에 뿌려진 수억 마리의 정자들 대부분은 질의 산성을 중화하기 위해 산화하거나 유해환경을 방어함으로써 다른 정자들을 보호한다. 결국 남은 300마리들끼리 가장 건강하다고 판정된 단 한마리가 난자와 결합하게 만들고 나머지 299마리는 수태되는 순간까지 이 한 마리를 보호하는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연임신을 원하면 여성의 배란기에 맞춰 이틀 간격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이 좋다. 정자가 정관에 오래 머물수록 해로운 활성산소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져 손상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사정을 자주 하면 정자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 이때 숫자는 줄어들 수 있지만 수태능력은 향상돼 임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건강한 임신을 위해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100일 전부터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음주, 흡연, 스트레스, 과로 등은 이 과정에 나쁜 영향을 준다. 헐렁한 트렁크팬티를 입어 음낭을 시원하게 하자. 스트레스 해소, 규칙적인 운동, 신선한 채소나 과일, 순수단백질인 닭가슴살 등이 정자생성에 도움이 된다.

<심봉석 | 이대목동병원비뇨기과 교수 gatechenp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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