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줌마가 아니라는데… 저 방광염 맞아요?”
“옆집 아줌마가 아니라는데… 저 방광염 맞아요?”
  • 심봉석 이대목동병원비뇨기과 교수 (gatechenps@gmail.com)
  • 승인 2014.10.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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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칼럼은 비뇨기과 진료과정에서 겪는 대표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다.

심봉석 이대목동병원비뇨기과 교수

첫 번째 에피소드는 필자에게 만성골반통으로 치료받던 한 40세 남성환자 이야기다. 그는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3개월 만에 다시 방문했는데 그동안 왜 안 왔냐고 물으니 치료받기 귀찮아서였다고 한다. 그에게 만성골반통은 치료와 함께 생활습관을 교정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낸다. 인터넷에서 100만원짜리 전립선치료기기를 샀는데 괜찮은 건지 봐달라고 한다. 뭔가 했더니 이상하게 생긴 기기그림과 설명서, 완치체험기 등이 잔뜩 인쇄된 종이다.

환자 “이거 효과가 있어요?”
필자 “처음 보는 기기라서 잘 모르겠는데요.”
환자 “이걸로 혼자 치료해도 문제는 없겠죠?”
필자 “뭔지 모르지만 효과가 없을 수도 있어요.”
환자 “이거 파는 사람들은 병원치료 안 받아도 된다고 하던데, 맞아요?”
필자 “아니요. 만성골반통은 약을 먹으면서 꾸준하게 치료받아야 해요.”
환자 “약 안 먹고 병원치료도 안 받을래요. 약 안 먹어도 괜찮은 거죠?”(이러면 더 이상의 설득은 무의미하다.)
필자 “제대로 치료받으셔야죠.”
환자 “그건 싫어요. 이 기기가 효과가 있는지만 얘기해 주세요.”

이렇게까지 얘기가 진행되면 진료가 목적이 아니다. 단순히 구입한 기기에 대한 검증을 받으러 온 것이다. 문제는 진짜 궁금해서라기보다 효과가 있다는 완고한 믿음을 이미 갖고 있고 의사로부터 ‘그 기구 효과가 있다’는 확신을 받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면 ‘이 의사 돌팔이네’라는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간다.

또 이런 사례도 있었다. 40세 초반 여성이 3일 전부터 혈뇨와 배뇨통,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으로 방문했다. 소변검사 결과 염증과 균이 검출됐고 증상으로 미뤄보니 방광염으로 진단됐다.

필자 “검사결과 방광염이네요.”
환자 “방광염이 아니라던데요.”
필자 “예? 누가요?”
환자 “우리 아저씨가요. 여자들은 피곤하면 그럴 수 있다고. 옆집 경애엄마도 물이나 많이 마시면서 그냥 두면 낫는다고 하던데.”
필자 “저절로 안 나아요. 방광염은 항생제치료를 받아야 해요.”
환자 “우리 아들이 항생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필자 “필요한 경우 일시적으로 쓰는 건 괜찮아요.”
환자 “인터넷 보니까 옥수수수염 달여 먹으라고 하던데.”
필자 “방광염은 그렇게 해서 치료가 안 돼요.”
환자 “근데 왜 이렇게 된 거예요?”
필자 “세균이 요도를 통해 방광에 들어가 염증이 생긴 거예요.”
환자 “뒷집 순이엄마도 방광염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던데. 약 안 먹을래요.”
필자 “아~ 그러면 병원에는 왜 오신 거예요?”
환자 “우리 아저씨가 진짜로 방광염 아니라는 거 확인해보라고 해서요.”
필자 “허걱~”

‘설마’라거나 농담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하루 한두 번 정도는 진료실에서 겪는 실제상황이다.

<헬스경향 | 심봉석 이대목동병원비뇨기과 교수 gatechenp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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