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탐방]대웅제약①-걸어온 길…윤영환 회장 뚝심, 제약업계 ‘큰 곰’이 되다
[기업탐방]대웅제약①-걸어온 길…윤영환 회장 뚝심, 제약업계 ‘큰 곰’이 되다
  • 손정은 기자 (jeson@k-health.com)
  • 승인 2015.09.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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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업계 최초 ‘무결점 운동’ 도입
ㆍ69년 ‘싸이클라메이트 파동’으로 믿을 수 있는 제품 인식 확산
ㆍ우루사·베아제 탄생 시키며 종합제약기업으로 우뚝 서

헬스경향은 향후 100년간 대한민국의 미래헬스산업을 이끌어갈 ‘제1차 대학(원)생 기업탐방단’을 모집했습니다. ‘대웅제약’은 대학생들이 가고 싶은 제약사로 선정된 첫 탐방기업입니다. 탐방단은 앞으로 대웅제약을 직접 방문해 실무견학, CEO대담 등 소통의 자리를 가질 예정입니다. 대웅제약 탐방기사는 3회에 걸쳐 소개됩니다. 첫번째 순서로 대웅제약의 과거를 되짚어보고 탐방단이 생각하는 대웅제약의 기업이미지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선화약국, 제약업계 ‘큰 곰’ 대웅제약으로

대웅제약의 모체는 부산 수정동 경남여고 앞에 있던 ‘선화약국’이다. 대웅제약 설립자 윤영환 명예회장은 성균관약대를 졸업하고 약학에 대한 꿈을 이루고자 선화약국을 개업했다.

약국에서 기업으로 향한 윤 명예회장의 도전이 시작된 계기는 1966년 대한비타민사 박문수 사장의 회사인수제안이었다. 이 회사를 인수한 윤 명예회장은 원료입고부터 생산과정, 판매전략 등 모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인수당시 업계 34위였던 대한비타민사는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매년 60%가 넘는 급성장을 이루면서 70년 상반기에는 12위까지 오른다.

성균관약대 졸업 후 ‘선화약국’을 운영하던 윤영환 명예회장은 1966년 대한비타민사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기업경영을 시작했다.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윤 명예회장은 ‘Zero-Defect(무결점)운동’을 업계최초로 도입했다. 당시 대다수기업은 눈앞에 닥친 생산과 판매에만 매달렸지만 윤 명예회장은 모든 결점이 해결되면 생산과 판매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인수당시 350만원에 불과했던 회사의 월 매출이 5년 후에는 월 4000만원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1969년 ‘싸이클라메이트 파동’은 대한비타민사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하는 발판이 됐다. 드링크류에 설탕 대신 들어가는 인공감미료 싸이클라메이트가 발암물질로 판명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여러 회사의 제품이 조사·검수됐는데 대한비타민사의 ‘아스파라S드링크’만이 유일하게 싸이클라메이트를 사용하지 않았음이 입증됐다. 이런 사실이 소비자들에게 알려지면서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큰 호응을 얻었고 드링크시장을 석권하게 됐다.

이후 부산이라는 입지상의 한계에 부딪힌 윤 명예회장은 1972년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4300평 대지에 1400평 규모의 공장을 착공하면서 1972년 9월 성남공장을 완공했다. 성남 진출 3년 후인 1975년에는 서울 중구 동자동에 지하1층, 지상4층의 사옥도 마련했다. 1981년 서초동 사옥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모든 주요업무는 이곳에서 싹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루사와 베아제는 연매출 200억원까지 성장하며 대웅제약이 종합제약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이 됐다.



1978년 2월 대한비타민사 창립 33주년을 맞아 대한비타민의 ‘대’자와 우루사에서 영감을 받은 ‘웅’자를 합쳐 대웅제약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회사가 탄생했다. 큰 곰은 라틴어로 ‘Ursa major(북두칠성)’인데 장수의 신, 치료의 신, 건강수호의 신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단군신화에서 나오는 곰처럼 끈질긴 자주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정신건강을 굳건히 지켜야겠다는 의미에서 대웅이란 말을 상호에 넣은 것이다.

△대웅제약의 간판, 우루사와 베아제 탄생

대웅제약은 1974년 신제품개발과 기존제품개선을 위해 부설제약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곳에서 독자적인 원료합성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고 대중약 중심이었던 제품구조를 병원약품중심으로 변경해 나갔다.

이 시기 대웅제약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웅담성분간장약 ‘우루사’가 탄생한다. 예로부터 간장질환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웅담의 약효화를 연구하던 끝에 탄생한 약이 바로 우루사다. 우루사는 웅담의 약효성분인 우루소데옥시콜린산(UDCA)이 함유돼 간에 쌓이는 피로물질을 밖으로 내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1961년 정제로 발매된 이후 1974년 세계 최초로 연질캅셀화, 1977년 연질캅셀 자동생산화 등으로 품질과 효능이 향상됐다. 1974년 1억원의 판매실적을 기록한 이 제품은 1990년에는 매출 200억원에 이르렀다. 우루사는 국내 캡슐제품시장의 70%, 간장약시장의 5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결국 우루사로 인해 대웅제약은 1980년대 중반 제약업계 10위권 진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1988년 2월에는 국내 최초로 국산배합신약 종합소화제 ‘베아제정’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베아제는 1967년부터 개발을 시작했지만 원료단독공급을 계약했던 일본 제약사와의 마찰, 약사법 개정 등으로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대웅제약은 자체적으로 제대로 된 소화제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성장을 가속화한다. 베아제 역시 연매출 200억원까지 성장하며 대웅제약이 종합제약기업으로 발돋움하는데 초석이 됐다.

<헬스경향 손정은 기자 jeson@k-heal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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