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태움문화 ‘심각’···“갑질환자보다 선임 더 무서워”
간호사 태움문화 ‘심각’···“갑질환자보다 선임 더 무서워”
  • 장인선 기자·양미정 인턴기자
  • 승인 2018.03.05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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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위 우리나라 `빅5병원`에 속하는 한 대형병원의 신임간호사가 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면서 간호사사회에 만연한 ‘태움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태움은 우리나라 간호사사회의 고질적 병폐다. 힘든 업무환경은 물론 나아지지 않는 태움문화로 인해 그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선임간호사가 신임간호사를 재가 될 때까지 불태우듯 괴롭히는 간호사들의 태움문화. 지난달 15일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움을 당한 신규간호사가 결국 한 줌의 재로 변해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간호사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태움문화에 대한 비난이 거센 실정이다.

태움은 우리나라 간호사사회의 고질적 병폐다. 이를 심각하게 인식한 정부와 대한간호협회는 2년 전 ‘괴롭힘문화금지’를 실천과제로 선포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지금도 선임간호사들이 교육이라는 명목 아래 폭행, 폭언, 따돌림을 서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규(신임간호사) 안 시키면 수쌤(수간호사)한테 말해서 네가 일 다 하게 만들 거야.”

충청도의 한 종합병원 3년 차 간호사인 이은혜 씨(가명·28)는 태움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그는 “신임간호사를 태우지 않는 간호사는 그날부터 오히려 태움의 대상이 된다”며 한숨지었다. 좋은 뜻으로 신임간호사를 도왔다가 도리어 태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태움방관자’가 되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2년 차 간호사 송예은 씨(가명·26)는 “대부분 업무를 내게 떠넘긴 한 선임간호사는 업무가 서툰 나를 도와주는 선배를 오히려 혼냈다”며 “그러다 보니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숨 쉬며 말했다. “업무적응을 위한 훈계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인격을 모독하는 태움은 빨리 없어져야 할 악폐”라고 역설했다.

“단톡방(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을 만들어 시간에 상관없이 태워요···.”

또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임간호사 박정아 씨(가명·27)는 “퇴근 후에도 수시로 전화하는 선임간호사 때문에 심각하게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며 “새벽 5시에 사무용 스카치테이프를 갈아놓지 않았다고 연락해 화내는 것은 일상다반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2015년 대한간호협회 조사결과 1년을 못 채우고 이직하는 간호사의 비율이 33.9%였다. 4년 내내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꿈 하나만 바라보며 힘든 실습과 공부를 마친 간호사들. 힘든 업무환경은 물론 잘못된 조직문화로 인해 그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선임간호사의 태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 퇴직을 선택한 김은정 간호사(30)는 “간호사가 되면 환자를 간호하려다가 오히려 환자가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간호사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고 울분을 토했다. 

선후배 간호사 간 신뢰·협조문화정립 필요

간호대학생들은 본격적인 병원실습에 들어가기 전 ‘나이팅게일선서’를 한다. 손에 촛불을 든 채 간호사복을 입고 거행하는 선서식에서 간호학도들은 윤리와 간호원칙을 담은 내용을 맹세한다. 촛불처럼 주변을 비추는 봉사와 희생정신, 즉 간호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것이다. 

나이팅게일선서식에서 간호학도들은 촛불을 들고 윤리와 간호원칙을 담은 내용을 맹세한다. 촛불처럼 주변을 비추는 간호정신에 대해 되새기는 것이다. 

다음은 나이팅게일 선서 전문이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타 보건의료인과의 협조를 통해 성심을 다해 환자를 돌보겠다고 선서한 간호사들. 

다른 보건의료인과의 협조도 좋지만 이에 앞서 같은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선후배 간호사들 간의 신뢰와 협조문화 정립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간호사사회에 팽배한 태움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그저 형식적이 아니라 더욱 현실적인 제도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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