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이산?…기러기아빠가 위험하다
자발적 이산?…기러기아빠가 위험하다
  • 최신혜 기자
  • 승인 2013.08.21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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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한 식사·외로움 등 지친 심신
◆ 우울증 등 정신질환 가능성 높아

◆ 심할 경우 자살 등 극단적 선택도
◆ 사회적 관심·관련시스템 마련돼야

#연예인 김흥국(54) 씨는 결혼 23년차 가장이자 10년차 기러기아빠다. 아내와 두 자녀는 유학문제로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 중. 김 씨는 그간 수차례 방송을 통해 기러기아빠로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부실한 식사는 물론 불면증으로 하루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하면서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최근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가 인기리에 방영되며 출연진 김태원, 이성재 씨처럼 기러기아빠(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배우자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로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기러기아빠들의 생활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아 정신적·육체적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점. 특히 기러기아빠는 외로움과 스트레스로 우울증·알코올의존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치할 경우 돌연사, 자살 등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이들을 위한 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생활리듬 붕괴…보호자 없어 회복 어려워

대학교수 L(48) 씨는 “가족과 떨어져 있던 2년간 혼자 있을 때 드라마, 웹툰을 시리즈별로 감상하며 새벽까지 시간을 보냈고 제시간에 밥을 챙겨먹은 적이 없다”며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섭취하는 것보다 규칙적 생활이 안 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기러기아빠는 생활리듬의 붕괴로 대사장애 등 신체적 질환을 겪기 쉬워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 지역병원의 조사결과 기러기아빠 87명 중 52%(45명)가 소화기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우울증·알코올의존증 등 정신질환 시달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러기아빠들은 정신적 어려움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 최근 수원대 간호학과 차은정 씨의 연구 결과 기러기아빠 3명중 1명은 우울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채정호 교수는 “쓸쓸하고 외로워 사는 게 의미 없다며 병원을 찾는 기러기아빠들이 많다”며 “우울증 진단 후에도 보호자가 없다는 점, 가족과의 짧은 만남 긴 이별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치료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기러기아빠는 무분별한 음주습관으로 알코올의존증에 걸리기 쉽다. 김흥국 씨는 방송을 통해 “혼자 지내다보니 술을 자주 먹게 되는데 거의 기절할 정도의 폭음이 잦았다”고 고백했다.

실제 알코올전문병원 다사랑병원과 하이패밀리가 2007년 기러기아빠 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24명)가 주 2~3회 상습음주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과음이 계속되면 휴일심장증후군(과음자가 휴일 전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셨을 때 심장통증이 오거나 의식이 없어지는 경우) 등으로 인해 돌연사할 확률이 높아진다.

△ 돌연사·자살 가능성도 높아져

지난해 6월에는 기러기아빠였던 국립대 퇴직교수 K(69) 씨가 숨진 지 한 달 만에 이웃에게 발견돼 논란이 됐다. 경찰은 “K교수가 외로움 탓에 술을 많이 마셔 건강이 악화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돌연사뿐 아니다. 올 3월에는 대구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치과의사 A씨가 유학중인 딸과 아내문제로 고민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스웨덴 우메오대학 연구팀이 1991~2000년 68만3000여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녀·부인과 떨어져 사는 경우 자살률은 2.3배, 알코올이나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률은 4.7배로 훨씬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 사회적 관심 필요…관련시스템 마련 시급


최근 연구에 의하면 기러기생활이 길어질 경우 가족 간 거리감이 심화돼 가정해체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기러기가족은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기러기아빠 수가 급증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문제들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지난 5월 ‘기러기아빠 희망을 향해 날다’라는 주제로 열린 국회간담회에서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은 “기러기아빠로 인한 가정붕괴가 국가와 사회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워킹맘연구소 이수연 소장은 “사회적 차원에서 기러기아빠들을 대상으로 한 소통의 장을 마련해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가사일 등 어려운 점을 도울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무기력증, 우울증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보건소나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에서 정신건강서비스를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엄명용 교수는 “기러기가족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홍보를 통해 많은 가정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장의 평소 생활스타일과 성향을 고려, 외로움을 잘 타거나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경우 떨어져 살지 않는 것이 좋다”며 “기러기가족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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