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임신 준비 중이면 탈모약 복용 중단해야 할까
[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임신 준비 중이면 탈모약 복용 중단해야 할까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6.2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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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배 약사, 혹시 임신 준비 중에 ‘아보다트’ 끊어야 해요”?

남성형탈모로 고민 중인 지인이 물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는 약간 얼버무리듯 말하고 말았습니다. ‘가임기여성이 만지기만 해도 문제가 되는데 당연히 중단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는 소위 뇌피셜이 작동했던 것이죠.

“아이, 이거 중단하면 머리 많이 빠지는데 큰일 났네. 그래도 2세가 더 중요하니까 역시 끊어야겠죠?”

“그렇겠지요……”

지인과 연락한 뒤 저는 다시 정확한 기전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약물 기전만을 생각하면 복용해선 안 될 것 같았지만 임상적으로 진짜 문제가 되는지 정확한 근거가 필요했어요.

탈모에 사용하는 의약품은 3가지입니다.

1. 외용제로 혈압약 부작용을 이용해 개발된 미녹시딜(마이녹실, 로게인 등).

2. 남성호르몬에 작용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약물(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로 피나스테리드(프로페시아 등)와 두타스테리드(아보다트 등).

3. 맥주 효모와 아미노산이 케라틴, 시스틴과 비타민이 함유된 영양공급제로 판토가, 판시딜 등

이 중 남성형탈모로 미 FDA 사용 승인을 받은 것은 미녹시딜과 5-알파 환원효소억제제입니다. 특히 5-알파 환원효소억제제는 가장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어 많은 탈모환자가 먹고 있는 약이기도 합니다(탈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헬스경향 2020년 9월 11일 기사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 탈모약이 원인?]을 참고해 주세요).

남성형(안드로겐성)탈모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원인은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이하 DHT) 작용 때문입니다. 성호르몬은 모발과도 연관이 많은데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모발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는 반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모발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임신한 여성이 머리가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에스트로겐이 다량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머리카락이 제거돼야 새 머리카락이 날 수 있으니 성호르몬은 모발주기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테스토스테론 자체가 모발과 관계 있는 것은 아닙니다. 테스토스테론이 5-알파 환원효소 작용을 받아 DHT로 바뀌면 이때 모근에 작용하는 것이죠. 재밌는 건 두피별로 이 효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위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주로 이마나 정수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옆과 뒷머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성형(안드로겐성)탈모가 주로 M자나 정수리 부위에서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죠.

탈모에 작용하는 약들은 선택적으로 5-알파 환원효소의 활성을 저해해 DHT의 농도를 낮춤으로써 탈모를 막아줍니다. 간혹 먹는 탈모약(이하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이 남성호르몬을 줄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이런 오해는 남성호르몬 대사를 살펴보면 금방 해소될 수 있습니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정소에서 분비됩니다. 테스토스테론은 생식기능조절, 2차 성징, 골격근 발달과 뼈 성장 촉진(남성화), 정자 형성, 피지 분비 촉진 등의 기능을 수행하죠. 테스토스테론은 각 해당 조직에서 5-알파 환원효소에 의해 DHT로 대사되며 DHT는 외성기발달과 남성형 발모, 탈모기능이 있어요. 즉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로 DHT 생성을 저해한다고 해서 특별히 남성호르몬 자체가 억제되는 건 아니랍니다.

미즈메디병원 비뇨의학과 김종현 과장은 2회 정기 웨비나 ‘Alopecia Digest’에서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는 남성 성기능에 중요한 테스테스토론은 유지하면서 DHT 생성을 억제하는 기전으로 유용한 약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요.

그 외 많은 비뇨의학과 전문의들도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가 성욕·성기능 감퇴와 관계없다고 언급했습니다. 경희의대 심우영 교수는 데일리메디 인터뷰에서 성욕 감퇴는 “일종의 노시보 효과”라며 “임상시험에서도 2% 미만의 환자에게 성기능 이상반응이 보고됐는데 가짜 약을 먹은 환자들에게도 비슷한 수의 이상반응이 발견됐다. 약물 기전보다 심리적 영향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임신을 준비 중이거나 가임기여성은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를 매우 주의해야 한다는 말은 어째서 나온 것일까요? 바로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가 남성 태아의 성기 발달을 저해하기 때문입니다. 성별이 여성이라면 문제 없지만 남성인 경우 치명적일 수 있어요.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를 복용하는 남성은 6개월간 헌혈도 할 수 없습니다. 헌혈자 혈장에 약 성분이 포함돼 있다면 수혈을 받은 임신부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가임기여성의 경우 해당 성분이 피부로 흡수될 수 있어 조각난 약을 만지면 안 됩니다. 코팅 처리된 약물은 상관없어요. 만일 절단된 약물을 손으로 만졌거나 가루가 코나 입으로 흡입됐다면 한 달 정도는 임신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를 계속 복용 중인 남성이라면 어떨까요? 부끄럽지만 저는 정액으로 해당 약물이 이동할 수 있고 이것이 여성에게 전달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가 정액으로 이동하는 건 맞지만 그 양이 너무 소량이어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프로페시아의 5배 용량이 들어 있는 프로스카(피나스테리드 5mg) 사용설명서 내용입니다.

[임상시험에서 이 약 5 mg/day를 6∼24주 동안 복용한 피험자의 정액에서 소량의 피나스테리드가 회수됐다. 임신한 여성에게 이 약으로 치료받은 환자의 정액으로 노출되는 피나스테리드 농도는 rhesus 원숭이 동물실험에서 보고된 태아의 발육기형에 대한 no-effect level에 해당하는 피나스테리드의 농도보다 50∼100배 낮은 용량이다(출처 약학정보원)]

남성이 탈모치료제를 복용 중이더라도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간혹 비용을 절감하고자 전립선비대증 약을 1/4~1/5로 나눠 복용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이때 가루가 날리거나 묻으면 가임기여성에게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피나스테리드1mg PTP포장으로 나온 제품을 용도에 맞게 복용하세요.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가 정액을 감소시킨다는 건 익히 알려진 부작용입니다. 하지만 이때도 정자의 활동성과는 크게 관계없다고 합니다. 물론 약물 복용 후 정액량이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거나 성욕이 현저하게 감퇴했다면 임신 자체가 잘 안 될 수 있는 만큼 상황에 따라 약물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비뇨의학과 전문의와 상의 후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지인에게 다시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해당 내용을 알려드렸죠. 지인이 계속 약을 복용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이제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탈모약을 꾸준히 복용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는 지속될 거예요. 한 가지 확실한 건 5-알파 환원효소저해제를 중단하면 다시 탈모가 일어난다는 것이죠. 더불어 약물 복용시기를 놓치면 발모효과가 많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도 기억해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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