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감기 걸린 우리 아이, 시럽제 먹인 다음 칫솔질해야 한다고요?
[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감기 걸린 우리 아이, 시럽제 먹인 다음 칫솔질해야 한다고요?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11.2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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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약사님, 요즘 광고에 나온 감기약인데. 차(茶)처럼 마시는 거 있어요?”

“아, 테라플루 말씀하시는 거예요?”

“맞아요! ‘데이’로 하나 주세요.”

“혹시 지금 콧물이 심하진 않으세요?”

“어, 콧물도 심한데요? 왜요?”

“그럼 ‘나이트’를 드셔야 해요. ‘데이’는 콧물에 효과가 좀 떨어져요.”

“나이트는 밤에 먹는 거 아녀요? 전 낮에 먹으려고 하는데…….”

“콧물, 재채기에 효과가 있는 항히스타민제가 들어 있는 게 ‘나이트’인데 그게 좀 졸려서 그렇게 이름이 붙어졌어요.”

“아, 그럼 그걸로 주세요.”

“약을 드실 때는 미지근한 물에 녹여서 빨리 드세요. 입안에 오래 머물고 있으면 안 돼요.”

“광고에선 천천히 먹으라고 하던데요? 차 마시듯 천천히 먹는 거 아닌가요?”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겨울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저도 서둘러 패딩을 꺼내 입었네요. 무엇보다 히터를 틀기 시작하면서 실내 습도가 낮아지고 일교차도 커지면서 호흡기질환 환자들이 많아졌습니다. 호흡기질환에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요. 특히 올겨울에는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목감기, 기침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소아과 환자들도 늘어났죠.

요즘에는 한결 복용하기 편리한 시럽이나 액상, 차 형태의 감기약이 많이 나왔습니다. 성인 대상 감기약으로는 ‘테라플루(GSK)’나 ‘콜대원 시럽(대원제약)’ ‘판피린(동아제약)’ ‘판콜(동화약품)’ 등이 대표적입니다.

편하긴 해도 이들 감기약을 복용할 때 꼭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치아 손상입니다. 감기약 때문에 치아가 손상된다고 하니 좀 의아하시죠? 이제부터 그 이유를 차근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치아에는 법랑질이라는 코팅 부분이 있습니다. 치아 중에서 가장 단단함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산성물질에는 매우 약하답니다. 이 때문에 산성물질이 법랑질에 닿으면 치아가 부식되고 충치가 쉽게 생깁니다.

산성물질 하면 탄산음료 정도만 생각하기 쉽지만 이온음료, 박카스, 비타500 등 새콤하고 맛 좋은 드링크 약물이나 판피린, 판콜 같은 액상감기약도 모두 산성을 띱니다. 알칼리성을 띠면 매우 떫은맛이 나 먹기 어렵다고 하네요. 

아이들이 주로 복용하는 시럽제도 당류, 감미제, 보존제, 안정제 등 각종 첨가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안정성 유지, 풍미 향상 등을 위해 산이 흔히 사용된다고 합니다. 테라플루처럼 가루 형태를 물에 녹여 먹는 제제 역시 산성 약물이에요. 따라서 산성물질이 치아에 닿는 면적과 접촉시간이 늘어날수록 치아가 부식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액상 형태나 뜨거운 물에 녹여 먹는 건조시럽 형태의 감기약은 산성물질을 함유해 치아를 부식시킬 수 있다. 특히 유치는 산성물질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부모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2019년에 발표된 [일부 시판 건조 감기시럽이 치아표면에 미치는 영향] 논문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연구팀은 시판된 건조시럽 4종류(테라플루 데이타임, 테라플루 나이트타임, 모드플루, 모드플루 나이트)를 80도 물을 이용해 녹여 60도 시럽으로 만들고 각각 20ml씩 동일한 용기에 나눠 넣었습니다. 이후 소의 아래 영구치를 1분, 5분, 10분 동안 담가 놓고 30초간 세척한 뒤 상태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10분 정도 경과했을 때 치아 표면의 미세경도가 유의한 정도로 낮아졌으며 담근 지 1분 뒤에는 식염수에 담근 대조군과 아주 큰 차이는 없었으나 5분 정도 지났을 때는 미세경도 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이는 평균 pH 2.85~2.91에 이르는 건조시럽의 낮은 산도가 치아 법랑질을 부식시켰기 때문입니다.

건조시럽은 끓인 물로 녹여 복용하는 만큼 접촉시간이 길어져 치아 손상위험이 더욱 높아질 수 있습니다. 입 안에 침이 부족하면 산성물질에 더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노인이나 항콜린 약물을 복용 중인 사람은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주로 사용하는 시럽은 어떨까요?

2015년에 발표된 [일부 어린이 해열, 진통제가 유치의 표면 및 경도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나온 실험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이들이 즐겨 복용하는 해열진통제 3종류(어린이 타이레놀 현탁액, 부루펜 시럽, 어린이용 타이레놀정)를 깨끗한 유전치와 유구치에 접촉시켰을 때 치아 경도의 변화를 살펴보았는데요. 각각의 제제는 1일 4회 6시간 간격으로, 1회당 20분간 치아에 접촉시켰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미세경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주사현미경으로 관찰하니 법랑질 표면 역시 시간이 경과할수록 매우 거칠어졌습니다. 통상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3~7일 정도 시럽제와 가루약을 먹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약물이 치아에 접촉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입니다. 당류가 함유된 약물에 접촉한 유치는 치아 손상은 물론, 충치도 쉽게 생길 수 있습니다.

시럽제의 치아 손상 작용은 해열제뿐 아니라 다양한 시판 시럽에서도 나타났는데요. 2010년 발표된 [어린이용 시럽제의 우식유발능에 대한 생체외 연구]에 따르면 흔히 복용하는 종합감기약(콜디시럽), 소화정장제(백초시럽), 항히스타민제(시노카베베, 액티피드시럽) 등 8종류의 시럽을 유치에 1일 3회 20분간 접촉시켰더니 유치 미세경도가 평균 15.8% 낮아졌습니다. 

이처럼 쉽게 복용할 수 있는 시럽 형태 또는 츄어블 정제는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치아 법랑질을 부식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경도가 약한 유치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나 침 분비가 적은 고령층은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뜨거운 물에 타 먹는 건조시럽 형태의 감기약은 약간의 뜨거운 물로 시럽을 녹이고 나면 찬물을 섞어 어느 정도 온도를 낮춘 후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천천히 복용하기보다는 신속하게 복용한 뒤 여러 차례 입을 헹구거나 칫솔로 치아에 남아 있는 약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은 비타500이나 판피린 같은 액상 약물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특히 어린 영유아는 보호자가 약을 먹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시럽이 한가득 들어가면서 치아에 많이 묻게 되는데요. 유치가 난 아이들은 약물 복용 뒤 반드시 칫솔로 치아에 묻은 약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시럽 특성상 점조도가 높아 칫솔로 제거하지 않으면 약물이 치아에 오랫동안 붙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뿐 아니라 아이들이 복용하는 보충제는 복용하기 편하도록 대부분 젤리, 구미, 시럽, 츄어블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이런 제제를 복용하고 난 뒤에도 반드시 칫솔질을 해줘야 치아 손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맛이 좋아 쉽게 생각했던 시럽제들. 복용 후 소홀한 관리로 예상치 못한 치아 손상과 충치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 꼭 기억하세요. 아이가 알약을 복용할 수 있다면 치아 건강을 생각해 차라리 시럽제보단 알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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