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희귀한데도 희귀질환 지정 어려운 전두·전신탈모, 어떻게 하나?
[특별기고] 희귀한데도 희귀질환 지정 어려운 전두·전신탈모, 어떻게 하나?
  • 이상훈 대한모발학회 기획이사(순천향대부천병원 피부과 교수)│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1.12.0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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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모발학회 기획이사 이상훈(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피부과)
이상훈 대한모발학회 기획이사(순천향대부천병원 피부과 교수)

전두·전신탈모는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희귀·난치성질환이다. 원형탈모환자 중 1~5% 정도는 중증으로 두피 전체의 모발이 모두 빠지는 전두탈모, 전신의 모든 모발이 빠지는 전신탈모로 진행된다. 전두·전신탈모가 발생하면 수년간 탈모가 지속되며 약 10% 정도만 모발이 재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모질환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머리이면 좀 어때?”라며 쉽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탈모에 대한 편견은 심각하다. 성인은 물론 청소년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사춘기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성장시기에 수년에 걸쳐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면서 정상적인 학업과 사회활동에 큰 지장을 가져온다.

전신탈모환자는 눈썹 또는 코털까지 빠져 땀이 눈으로 들어가 운동조차 쉽지 않다. 또 각종 미세먼지와 알레르기유발물질에 쉽게 노출돼 외출도 쉽지 않다. 이러한 전신·전두탈모환자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쉽게 내뱉은 편견의 말 한마디는 환자의 마음에 더욱 큰 상처를 안겨준다.

대한모발학회는 2017년부터 전두·전신탈모환자의 의료비 경감 및 사회적 지원을 위해 ‘전두·전신탈모질환의 희귀질환 지정’을 질병관리청에 신청했지만 2018년 ‘정확한 국내유병률이 밝혀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이에 대한모발학회는 국내 전두·전신탈모환자의 유병률연구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전국에 약 5000명 미만(인구 1만명 당 1건 이하)으로 나타나 희귀질환의 근거를 마련했다(우리나라 희귀질환 기준: 유병인구 2만명 이하). 이를 바탕으로 2021년 두 번째 희귀질환 지정을 신청했지만 이번에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낮다’는 이유로 또다시 탈락했다.

여기서 사회경제적 비용의 기준은 병원에 지출하는 의료비에 국한된다. 전두·전신탈모환자가 사회적응을 위해 지출하는 회당 수백만원이 넘는 비싼 가발비나(청소년의 경우 성장에 따라 수차례 구입해야 함) 학교 및 사회적응의 어려움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부수적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두·전신탈모환자
전두·전신탈모환자

전두·전신탈모는 아직까지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없는 난치성질환이기 때문에 의사가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도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의료비용 측면에서 고가의 치료제가 있는 다른 질환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 수밖에 없다.

현재 희망적인 상황은 JAK(Janus kinase, 야누스 키나아제)억제제가 원형탈모치료에 효과적이며 전 세계에서 3상임상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단 향후 이 약제가 승인돼도 질환 특성상 최소 1년 이상의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데 월 수십만원이 넘는 약제비 때문에 환자는 또 한 번 절망에 빠질 확률이 높다. 희귀질환 지정을 통한 선제적 대응이 아쉬운 측면이다.

이번에 희귀질환 지정을 위한 자료 준비와 환자 및 질병관리청과의 접촉을 통해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현 제도상 희귀질환자라도 치료제가 없어 의료비가 많이 안 들면 희귀질환으로 지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희귀질환 지정은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좋은 의료지원제도다. 하지만 전두·전신탈모처럼 치료제가 없는 희귀질환은 환자 및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매우 크지만 의료비가 낮다는 이유로 희귀질환 지정을 받을 수 없어 희귀질환자인데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전두·전신탈모의 희귀질환 지정은 올해 탈락했기 때문에 앞으로 2년이 지나야만 재신청이 가능하다. 앞으로 2년 동안 전두·전신탈모환자 치료과정에서 꼭 필요한 고가의 가발이 필수보조기기로 인정받고 신약이 승인돼 환자의 경제적 부담도 늘어나면 다음 세 번째 재신청에서는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희귀·난치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또 다시 2년 넘게 환자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아프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희귀질환자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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