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불면증엔 ‘대추’의 과육, ‘멧대추’의 씨가 약이다
[한동하의 식의보감] 불면증엔 ‘대추’의 과육, ‘멧대추’의 씨가 약이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2.02.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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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대추는 흔히 사용하는 과실이다. 약으로도 사용하고 요리에도 이용된다. 보통 대추는 씨를 빼고 주로 과육만을 이용한다. 그런데 과육 대신에 씨만을 약으로 사용하는 대추가 있다. 바로 산조(酸棗)다. 산조는 산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대추나무라고 해서 ‘멧대추’라고도 한다.

필자는 간혹 멧대추를 한자로 ‘山棗’라고 떠올리기도 한다. 산(山)의 우리말 뜻은 ‘뫼’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산조는 멧대추라고도 하고 묏대추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한자로는 ‘酸棗’가 맞다. 이유는 맛이 시기 때문이다. 본 칼럼에서는 멧대추나무로 칭하겠다.

멧대추나무는 과거 시골에 보면 산기슭 양지바른 곳이나 마을 입구에 자생하는 경우가 흔했다. 멧대추는 갈매나무과로 대추나무와 비슷하나 가시가 나고 열매가 둥글다. 일반 대추나무도 갈매나무과다. 일반 대추가 맛이 달아 식품이나 약과로 흔히 이용됐다면 멧대추는 맛이 시기 때문에 주로 약용됐다.

<본경소증>에는 대추와 멧대추의 차이가 자세히 나와 있다. 약간 풀어 쓰면 ‘대추는 키가 높이 자라서 기(氣)가 진하고 멧대추는 키가 작아 아래로 빽빽하게 모여서 생기면 기가 약해진다. 그래서 대추는 기가 진해서 맛이 달고 멧대추는 기가 약해서 맛이 시다’라고 했다. 나무 모양과 맛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 ‘단맛은 양에 속하고 신맛은 음에 속한다. 맛이 진하고 기가 강하면 소통하면서 열을 발생하고 기가 약하면 내보내서 배설한다’고 했다. 따라서 ‘대추는 기운이 없고 진액이 없으며 부족한 신체를 보한다. 그리고 멧대추는 피부의 위기(衛氣)를 돌아오지 못하게 하여 양(陽)에서만 움직이게 하고 음(陰)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역시 효능에도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보통 대추는 과육을 이용하고 멧대추는 씨만 약용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대추, 멧대추의 과육과 씨의 기운 차이 때문이다. <본경소증>에는 ‘대추육은 보하지만 대추씨는 기운을 배설하고 멧대추육은 배설하지만 멧대추씨는 보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명의별목>에도 ‘묵은 대추의 씨는 맛이 쓰다. 이것을 태워서 복통과 사기를 치료한다. (멧대추는 신맛이 나지만) 멧대추의 씨는 맛이 달아서 대추씨보다 널리 쓰인다’고 했다.

항간에 대추의 씨에는 독이 있어 대추씨는 버리고 과육만 사용해야 한다는 말들이 있다. 하지만 대추씨에는 독이 없다. 어느 한의서에도 대추씨에 독이 있다는 내용은 없다. 같은 갈매나무과인 멧대추의 경우 씨만을 약용하는 것을 봐도 대추씨는 독성 때문에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맛이 쓰기 때문에 덜 사용됐을 뿐이다.

멧대추의 씨를 볶아서 먹으면 밤에 나는 식은땀과 불면증 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한의서에서는 멧대추의 씨를 산조인(酸棗仁)이라고 불렀다. 신맛이 나는 대추[酸棗]의 씨[仁]라는 의미다. 산조인의 가장 흔한 효능은 바로 수면장애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생으로 사용하면 각성작용이 있어서 잠을 깨우고 볶아서 사용하면 진정작용이 있어서 잠들게 한다고 했다. 생으로 먹으면 각성작용이 있다는 내용은 많은 의가(醫家)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지만 볶아서 먹으면 불면증을 치료한다는 내용은 이론(異論)이 없다.

볶은 산조인은 불면증을 치료한다. <경악전서>에는 ‘불면의 경우 산조인을 볶아서 사용한다. 심지(心志)를 편안하게 하고 식은땀은 그치며 갈증을 풀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제거한다’고 했다. 이처럼 산조인의 가장 흔한 주치증은 바로 허번불면(虛煩不眠)이다.

“허번(虛煩)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려운 표현이다. 하지만 백지영 씨의 노래 가사를 보면 대략 느낌이 온다.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 구멍 난 가슴에....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 줘....’ 이런 상황에 불면증이 생겼다면 볶은 산조인이 약이다.

<동의보감>에는 ‘혈(血)이 비장(脾, 당시에는 췌장)에 잘 돌아오지 못해 잠을 편안히 자지 못할 때는 볶은 산조인을 써서 심장과 췌장을 크게 보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혈이 비장에 잘 돌아오게 되고 오장이 편안해져서 잠도 잘 잘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한의학에는 사려상비(思慮傷脾)라는 문구가 있는데 생각을 많이 하면 췌장이 상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근심과 걱정이 많으면 부교감신경의 기능을 억제해 소화기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의미다. 사려상비는 불면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동의보감의 내용과 연결 짓는다면 볶은 산조인은 근심, 걱정이 많고 가슴이 허번하면서 나타나는 불면증에 복용하면 속(장)도 편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볶은 산조인은 수면 중 식은땀에도 좋다. <급유방>에는 ‘땀을 그치게 하고 번열을 없앤다’고 했고 <동의보감>에는 ‘땀을 그치게 한다. 특히 수면 중에 나는 땀을 치료한다’고 했다. 식은땀의 경우 낮에 나는 땀을 자한(自汗), 밤에 나는 땀을 도한(盜汗)으로 구분하는데 볶은 산조인은 밤에 나는 도한에 좋다. 도한(盜汗)은 잠자는 사이에 마치 도둑처럼 왔다 사라지는 땀이다.

만일 불면증이 있으면서 식은땀이 난다면 볶은 산조인을 복용해보자. 가루로 내서 취침 전 한번에 한두 수저를 물로 먹어도 좋고 깨뜨린 상태에서 한 번에 20그램 정도까지 물에 넣고 끓여 마셔도 좋다. 또 산조인을 끓인물로 멥쌀죽을 쒀 먹어도 좋다. 이때 최고의 궁합식품은 바로 대추육이다.

볶은 산조인을 끓여서 차로 마시고자 하면 말린 대추의 씨를 제거해 넣으면 금상첨화다. 보통 대추육만을 끓여서 먹는 분들이 많은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경우라면 볶은 산조인과 함께 복용하면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볶은 산조인 20그램에 말린 대추 10개면 충분하다.

항간에 대추육은 불면증이란 스릴러에 오랫동안 주연 노릇을 해 왔다. 하지만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대추육을 조연으로 바꾸고 멧대추씨를 주연으로 해보자. ‘총맞은 것처럼’ 허번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볶은 산조인은 마치 ‘내 귀에 캔디’처럼 달콤한 꿀잠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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