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훈 교수의 피부의료기기 이야기] 피부암환자의 수술, 최소+정확한 절개에 획기적 도우미
[허창훈 교수의 피부의료기기 이야기] 피부암환자의 수술, 최소+정확한 절개에 획기적 도우미
  •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2.04.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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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맞춤형 의료기기 ‘피부암가이드’
3D프린터로 제작…환자맞춤치료 가능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

대학생 때의 일이다. 프린트는커녕 컴퓨터조차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컴퓨터를 배워보겠다고 전산실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SPSS라는 통계프로그램을 배우고 코딩해 돌린 후 결과물을 “징~드르륵” 하는 도트프린트로 인쇄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프린트를 위해 사용했던 양 옆에 구멍이 뚫린 종이는 어느덧 A4용지로 바뀌었고 도트프린터도 잉크젯프린터, 레이저프린터를 거쳐 이제는 3D프린트로까지 진화됐다.

의학을 공부하면서 항상 힘들었던 과목은 바로 해부학처럼 구조를 공부하는 학문이었다. 글을 보고 외우면 되는 다른 과목과는 달리 글과 그림으로 머리 속에 입체적인 구조를 만들어 이해해야 하는 해부학은 아직도 어렵다. 친구들이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았다는 두개골 모형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임상의학을 공부할 때도 CT나 MRI 같은 평면사진을 보면서 입체적인 모습을 상상해야 하는 과정은 항상 쉽지 않다. 당시 ‘이러한 입체구조물이 실재하거나 홀로그램으로 보인다면 얼마나 편할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격세지감이라. 상상 속의 결과물들이 이제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평면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3D프린트로 실물모형을 만들어 이리저리 돌려보고 직접 만져볼 수도 있게 됐다. 이뿐 아니라 이제 시뮬레이션모형단계를 넘어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직접 도움을 주는 의료기기까지 개발됐다.

CT를 활용해 컴퓨터로 렌더링된 주사점형의 피부암가이드와 실제 수술에 적용된 모습

암수술 시 사진이나 CT에서 보이는 부위가 실제로 인체의 어느 부위인지 확인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고도 어렵다. 특히 특징적인 구조물 없이 평평한 곳에 위치한 암의 경우 더더욱 어려워진다. 위치가 어디인지, 척도가 어떻게 되는지, 보이지 않는 피부 속에는 어느 넓이까지 암이 있는지 항상 고민하게 되는데 이를 해결해주는 3D프린트 결과물이 의료기기로 허가됐다. 바로 ‘피부암가이드(A64050.01)’라고 하는 1등급 의료기기다.

피부암가이드는 피부암수술 시 귀 또는 코를 기준으로 종양절개범위를 표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의료용 가이드이다. CT 등 환자의 영상정보를 이용해 융합증착모델링(Fused deposition modeling, 고체에 열을 가해 녹인 뒤 노즐로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 방식의 3D프린터로 제작되며 해당 환자에만 적용 가능한 환자맞춤형 의료기기다. 만들어진 틀을 얼굴에 부착한 후 어디까지 절제할 것인지 표시하는 방법으로 사용되며 소독된 펜으로 틀을 따라 그리는 절개선형과 틀에 주사기를 거치해 표시하는 주사점형 두 가지가 있다.

피부암수술 시 최대 딜레마는 바로 재발을 줄이려면 가급적 많은 조직을 제거해야 하고 흉터를 줄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적은 조직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 암조직은 모두 포함하면서 최소한의 조직제거를 위한 절제선 결정과정이 피부암수술에서 가장 중요하다.

결국 CT와 MRI검사에서 확인된 침범을 정교한 신체모형을 이용해 병변의 외연뿐 아니라 깊이까지 고려해 정확한 절제범위를 설정할 경우 정상피부의 지나친 절제나 부정확한 절제를 최소화할 수 있어 수술시간을 줄이고 수술안전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상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피부암에는 피부암가이드 적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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