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분담제 5년 재평가, 암으로 묵직하게 응어리진 ‘생존본능’을 자극하다
위험분담제 5년 재평가, 암으로 묵직하게 응어리진 ‘생존본능’을 자극하다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2.06.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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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범승훈 세브란스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범승훈 교수는 “위험분담제로 암환자들의 신약접근성과 치료효율이 월등히 올라갔다”며 “하지만 효과가 입증된 약물이 위험분담제 5년 재평가를 통해 탈락한다면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비용부담으로 인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발생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범승훈 교수는 “위험분담제로 암환자들의 신약접근성과 치료효율이 월등히 올라갔다”며 “하지만 효과가 입증된 약물이 위험분담제 5년 재평가를 통해 탈락한다면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비용부담으로 인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이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으로 진료를 받아도 본인부담액이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암’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암환자 100만명 시대. 이제 주변에서 암환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큰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암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이다. 게다가 치료에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경제적인 문제는 어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신약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환자 부담금이 크게 증가했다.

한국 암 치료 보장성 확대 협력단(KKCCA)이 2016년 암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암환자들이 치료와 관련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에 관한 인식과 현황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조사결과 암환자들을 가장 힘들게 만든 것은 ‘경제적 이유’였다. 조사에 따르면 4기 암환자의 평균 암치료비용은 연간 2877만원에 달했으며 그중 71%인 2061만원은 비급여 항암제로 드러났다.

이에 정부는 2014년 고가항암제와 희귀질환치료제의 신속한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위험분담제’를 도입했다. 위험분담제 도입으로 신약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처음 사용되는 데 97일이 소요됐다면 제도 도입 후 2017년에는 28일로 두 달 이상 단축됐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위험분담제에 등재된 신약의 경우 5년마다 재평가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위험분담제 등재 약제가 재평가를 통해 급여정지된 적은 없다. 하지만 전이성 대장암치료제 세툭시맙(제품명 : 얼비툭스)을 시작으로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선암치료제 엔잘루타마이드(제품명 : 엔스탄디) ▲다발성골수종치료제 카르필조맙(제품명 : 키프롤리스) ▲진행성·전이성 위 또는 위식도접합부선암치료제 라무시루맙(제품명 : 사이람자) ▲다발성골수종치료제 다라투무맙(제품명 : 다잘렉스) ▲척수성근위축증치료제 뉴시너센(제품명 : 스핀라자) ▲중증아토피피부염치료제 두필루맙(제품명 : 듀피젠트) 등 7개의 약제가 재평가를 앞두고 있다.

만일 재평가 결과에 따라 협상이 결렬될 경우 급여정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자들과 의료진은 이 기간이 다가오면 가슴을 졸인다. 게다가 위험분담제 대상 약제는 대체 불가능한 약제로 급여정지 시 환자들의 치료중지 사유가 된다. 범승훈 세브란스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와 위험분담제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 최근 신약들의 급여 등재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14년에서 2016년 위험분담제로 등재된 약제를 사용하는 국내 환자수는 1만6575명으로 추산되며 환자의 본인부담금 절감액은 2872억원에 달한다. 이는 급여에 등재되면 비용 걱정 없이 약물치료효과 및 부작용 등만을 고려해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위험분담제를 통해 등재된 약제의 경우 교과서, 학회 치료지침을 통해 권고되고 있는 만큼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약제란 사실을 기억하자.

- 급여 등재는 의료진은 물론 환자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맞다. 주로 대장암 진료를 보는 만큼 이번 재계약 약물인 ‘세툭시맙(얼비툭스)’을 예로 들겠다. 현재까지 위험분담제 재개약이 지속되면서 많은 환자가 비용 걱정 없이 세툭시맙으로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고 있다.

전이성 직결장암 표적항암제인 세툭시맙은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억제를 통해 암세포 증식을 저해한다. 실제로 대규모 3상 임상연구를 통해 효과 및 안정성이 인정돼 2004년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14년 급여등재 전까지는 한 달에 수백만원의 추가 치료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극히 일부 환자에서만 투약이 가능했다.

세툭시맙은 직결장암의 유전자 변이 중 RAS 돌연변이가 없는 50% 정도의 환자에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급여 등재를 통해 적응증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환자에서 투약이 가능하게 됐다. 이를 통해 기존 약제에 비해 반응률이 20%가량 증가했고 암진행의 위험성 또한 30~40% 더 감소했다.

하지만 세툭시맙은 1차 치료요법에서만 급여적용이 된다. 타 약제 내성으로 인해 2·3차 치료에 있어서도 세툭시맙 치료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한 달에 약 400만원 이상의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종종 있다.

- 대장암은 조기검진 시 5년 생존율이 매우 높다.

맞다. 하지만 소득이 낮을수록 암 발생 및 사망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피력하고 싶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치명률이 낮은 암일수록 소득격차에 따른 사망위험률의 변화가 크다. 예컨대 대장암은 조기검진 시 5년 생존율을 90%까지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의 경우 32.8%만이 대장암 검진을 받으며 낮은 참여율을 보인다. 사망위험 역시 소득에 따라 다른데 높은 소득군 대비 낮은 소득군의 대장암 사망위험이 2.37배에 달한다. 하루하루가 힘든데 건강을 챙길 여력이 있겠는가. 결국 통증을 참다가 병원을 방문한다는 뜻이다. 만일 위험분담제 협상 결렬로 약가가 인상된다면 저소득층의 치료 길이 막힌다. 

- 급여는 환자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다.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는지.

모든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인상 깊은 기억에 남는 환자가 한 명 있다. 2018년에 방문한 60세 남성이다. 그는 4기 대장암으로 타 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실제로 간과 복막에 전이가 매우 심했다. 특히 복부팽만, 통증, 전신허약감 등 암전이로 일상생활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세툭시맙과 세포독성 항암제 병용요법을 통해 암수치가 1000분의 1로 떨어지는 등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치료효과가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4기 대장암이라 하더라도 표적 항암치료를 통해 치료효과를 극대화해 암절제 수술까지 이어지는 환자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 의료진이 생각하는 위험분담제의 핵심은.

중요한 질문이다. 위험분담제의 핵심은 환자 치료옵션 확대와 보장이다. 국내에서 위험분담제로 등재된 신약들은 의약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 중 평균적으로 5개 국가에 이미 등재된 신약이다. 즉 효과가 입증된 약제다. 또 위험분담제에 등록된 신약은 정부와 제약사 간의 빠른 협의를 통해 신속하게 신약을 등재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치료시기를 놓치면 무용지물이다. 즉 위험분담제는 환자들에게 제때 신약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최후의 보루다.

- 위험분담제에 관한 의견이 분분한데 향후 어떤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는가.

위험분담제로 등재된 약제의 경우 5년마다 재평가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혁신 신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위험분담제를 비롯한 다른 모든 약가 제도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가재정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후속평가제도를 통한 사용현황 확인 및 급여 적정성 평가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재평가 과정에서 오랜 기간을 통해 임상적·과학적 근거가 입증된 치료제가 결국에 탈락, 환자가 비용부담으로 인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불필요한 불안은 환자의 치료효율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이해 관계자들 간 원만한 협의로 위험분담제의 취지에 맞게 치료옵션이 보장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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