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수당 본격 시행…미봉(彌縫)책으로 근로소득 보장 어려워
상병수당 본격 시행…미봉(彌縫)책으로 근로소득 보장 어려워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2.07.05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시범사업 후 2025년 전국적 도입 목표
보장기간, 국제기준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
대다수 해외 국가 50~66.7% 근로소득 보장
정부는 아픈 근로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상병수당 제도’를 오늘(4일)부터 전국 6개 지역에서 시범운영한다. 문제는 하루에 대략 4만원을 지급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소득보장이 어렵다는 것이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정부는 아픈 근로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상병수당 제도’를 4일부터 본격 시행했다. 문제는 하루에 대략 4만원을 지급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소득보장이 어렵다는 것이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리나라는 그간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전 국민에게 저부담·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치료 중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득보장제도’는 부재했다. 이는 정부의 건강보장정책이 소득보장보다는 의료비보장에 초점이 맞춰져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재보험’은 업무상 사고 및 질병에 관한 소득지원 제도이며 ‘고용보험’은 실업을 대비한 소득보장제도다. 즉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없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린 경우 소득을 보전하는 상병수당제도는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정부는 아픈 근로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상병수당 제도’를 4일부터 전국 6개 지역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성급했던 탓일까. 시범사업이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몇 가지 발견되며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도 해당

상병수당 제도는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이 없는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렸어도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 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병수당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미국, 스위스, 이스라엘뿐이다.

정부는 시범사업 지역에 대기기간과 최대보장 기간이 각기 다른 3개 모형을 적용해 정책효과를 비교 분석, 우리나라에 맞는 제도를 설계해 2025년부터 전국적으로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시범사업은 상병수당을 지원하는 상병 범위·요건에 따라 3개의 모형으로 구분된다. ▲근로활동불가 모형Ⅰ: 경기 부천시, 경국 포항시 ▲근로활동불가 모형Ⅱ 서울 종로구, 충남 천안시 ▲의료이용일수 모형 전남 순천시, 경남 창원시에서 각각 시행된다.

모형Ⅰ은 질병·부상으로 일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지급하며 대기기간은 7일, 보장기간은 최대 90일이다. 모형Ⅱ는 질병·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지급하며 대기기간 14일, 보장기간은 최대 120일이다. 의료이용일수 모형의 경우 입원에만 국한되고 입원 및 관련 외래 진료일수만큼 지급한다. 대기기간은 3일, 보장기간은 최대 90일이다. 이때 대기기간 다음 날부터 상병수당 지급이 가능하다.

급여지급기간의 경우 모형Ⅰ·Ⅱ에서는 근로활동이 어려운 전체 기간이 포함된다. 단 ‘의료이용일수 모형’의 경우 의료이용일수에서 대기기간 일수를 제외한 기간만큼 급여가 지급된다. 지급금액은 일 4만3960원으로 2022년도 기준 최저임금의 60%에 해당한다. 이때 시범사업 대상은 사업 지역에 거주하는 만15세~65세의 취업자다.

이때 직장인뿐 아니라 자영업자 또는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 등도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다. 단 공무원이나 고용보험 ▲출산전·후 휴가급여 ▲육아휴직급여 ▲실업급여 ▲산재보험 휴업급여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등을 받는 사람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미용 목적의 성형 등 필수적이지 않은 진료, 출산 관련 진료로 합병증 등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최종균 건강보험정책국장은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아픈 근로자가 소득 걱정 없이 휴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며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관심과 사업장의 협조,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프면 쉴 권리…과연 편히 쉴 수 있을까

상병수당은 질병으로 인한 빈곤 예방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손실도 예방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도 상병수당의 필요성을 인식했으나 그동안 제도 도입에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국회에는 관련 법안들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이뤄지지 않은 것.

이런 까닭에 지금까지 근로자들들은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의 51.9%가 10년 내 일하기 어려울 정도의 질병과 부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10년 이내 아팠던 노동자의 35.8%가 평균 반 년간 소득 감소를 경험했으며 아픈 노동자들의 약 30%는 제때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한 이유로는 직장 분위기, 소득 상실 우려, 실직·폐업 우려 등을 꼽았다. 

본래 상병수당의 법적 근거는 존재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부가급여의 하나로 상병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이미 고시된 것. 또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상병수당의 의무화를 통한 건강보험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그간 우리에게 맞는 구체적 제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이 상태에서 서둘러 이번 시범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위해 예산 109억9000만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또 입원 여부 모형을 제외하고는 대기기간이 7일, 14일로 지나치게 길다는 것도 문제다. 보장기간 역시 90일에서 120일로 국제노동기구(ILO)가 ‘상병급여협약’에서 제시한 최소 52주 이상 보장 수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수당을 하루 정액 4만원 수준으로 낮게 책정해 제대로 된 소득보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하는 기준은 매우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50~66.7%를 지급하며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스웨덴은 80%, 슬로베니아 90%, 룩셈부르크, 칠레는 100%까지 보장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국가가 동일한 체계로 상병수당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외국의 상병수당제도에 관한 비교 연구’에 따르면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182개 회원국 중 ▲사회보험방식이 96개국 ▲조세방식 4개국 ▲혼용방식이 5개국 ▲고용주 부담이 56개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감안, 상병수당제도를 사회보험방식과 연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정부는 최저임금의 60%를 지원한다고 하는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하루에 4만원을 받고 쉴 수는 없다”며 “현재 시범사업 수준으로는 소득이 충분히 보전되지 않고 취약노동자들의 경우 14일의 대기기간 동안 유급병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