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혁신 가로막는 ‘직능이기주의’
의료혁신 가로막는 ‘직능이기주의’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2.08.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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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
의료기관 대상 환자경험평가
원격의료 등 시범사업 세 가지
의료계 반대로 본 사업 불발
해외에서는 효용성이 입증돼 다양한 의료정책이 진행 중인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계의 반대로 꼭 필요한 시범사업들이 본 사업으로 전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소비자에게 ‘혁신’이란 매력적인 단어다. 하지만 혁신은 언제나 신구(新舊)대립을 불러일으켰다. 시대는 변화하는데 기존 이익집단이 자신의 이권을 놓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의료계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등장으로 기존 의료체계로는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되자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파격적 대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계의 거센 반대로 꼭 필요한 데도 본 사업으로 전환조차 못하는 대표적 시범사업 3가지가 있다.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 ▲의료기관 대상 ‘환자경험평가’ ▲원격의료 시범사업 등이 그것으로 이제 의사들도 국민을 위해 직능이기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 시 환자생존율↑

응급환자는 병원이송 전 조치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응급구조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모호한 법 규정 때문에 응급구조사가 본연의 임무수행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일면서 정부는 2019년 간호자격증소지자와 1급 응급구조사에 한해 응급구조 업무범위 확대 시범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확대된 업무범위는 ▲유도심전도의측정 ▲응급분만 시 탯줄결찰 및 절단 ▲다발성/중증손상환자에 대한 아세트아미노펜 정맥투여 ▲아나필락시스 시 에피네프린 자동주사 근육 내 투여(영상의료지도) ▲심폐소생술 시 에피네프린 정맥투여(영상의료지도) 등이다.

이 시범사업을 통해 1만2405명의 응급환자가 확대 처치를 받았고 모든 항목에서 부작용이 없었다. 또 자발순환회복률은 일반구급대 8.8% 대비 특별구급대 13.7%로 4.9% 상승했고 아나필락시스환자 정상혈압회복률은 무려 58.3%를 기록했다.

하지만 의료단체들의 반발로 이 시범사업은 본 사업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의료단체의 논점은 명료했다. 아세트아미노펜 정맥투여, 에피네프린 주사 등은 위험하기 때문에 실증연구 등 추가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이는 이미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응급구조사가 당담하고 있다.

소방청 김효주 119 구급과장은 “병원 전단계에서 환자를 정확하게 처치하지 않으면 병원도착 후에도 치료가 어렵다”며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는 국민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환자경험평가, 연구결과 의료 질 향상에 도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2017년 3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환자경험평가’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환자경험에는 입원부터 퇴원까지 병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의료서비스가 포함된다.

하지만 최근 심평원이 환자경험평가를 전체 병·의원·외래로 확대한다고 발표하면서 의료계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평가받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를 강력히 질타했다. 협회는 환자경험평가문항은 객관성과 신뢰도가 떨어지고 정부가 의료 질 향상과 제도 개선이란 명분으로 의료기관을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는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환자경험평가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해외 여러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환자의 객관적 평가는 불필요한 검사를 줄여 환자치료순응도를 높인다는 여러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정보수집체계개선반 정영애 반장은 “지난해 발표한 평가결과를 보면 환자들이 느낀 입원평가에서 환자권리보장은 여전히 낮다”며 “하지만 시범사업에 오랫동안 참여한 의료기관에 대한 만족도는 계속 상승하고 있는 만큼 이는 국민건강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원격의료, 이제 받아들여야 할 시대적 트렌드

코로나19 팬데믹은 정부규제의 변화를 이끌었다.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원격의료’다. 정부는 코로나19 전파력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했으며 윤석열 정부는 원격의료를 국정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하지만 의료계의 첨예한 반대로 제도 도입이 늦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원격의료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 미검증으로 인한 오진가능성’을 근거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지난해 4월 성명서를 통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원격의료가 대면진료와 같은 수준의 의료인 의무와 환자건강권을 확보한다고 판단할 수 없다”며 “코로나19 때문에 한시적으로 원격의료가 허용된 만큼 충분한 검토 없이 합법화하는 것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원격의료 제도화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원격의료 활성화를 위해 메디케어의 청구자격을 완화하고 보험적용서비스 종류를 107개에서 272개로 확대했으며 오랫동안 원격의료를 금지했던 독일 역시 2015년 의료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을 대상으로 원격의료서비스를 도입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유일하게 원격의료 금지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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