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누가 뭐래도 여전히 나는 흉부외과가 좋다
[특별기고] 누가 뭐래도 여전히 나는 흉부외과가 좋다
  • 이성수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2.10.1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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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

의대생과 인턴들이 전공과목을 결정할 때 여러 가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 필자는 무엇보다 생명을 살리는 멋진 외과의사가 되고 싶었다. 이에 여러 외과 중에서도 생명과 직결되는 폐와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를 선택하게 됐고 지난 28년간 이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

2021년 통계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사망원인 1, 2위는 암 및 순환기질환이며 특히 흉부외과의 주요진료분야인 폐암발병률은 남성에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심장 및 순환기질환자도 크게 증가했다. 2020년 심장수술은 2011년 대비 33.8%, 폐암의 대표적 수술인 폐엽절제술은 74.7% 증가했다. 하지만 의료진의 부족과 의료공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흉부외과 전문의 배출은 급감하고 있는 데 반해 진료수요는 크게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요즘 언론을 통해 흉부외과는 전공의지원율이 낮고 기피과라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전국에 의과대학이 33개가 넘고 1년에 3000명이 넘는 의사가 배출되는데도 연간 흉부외과에 지원하는 의사는 전국에서 20명 남짓이다. 게다가 이 중 20% 정도는 중도에 포기하는 실정이다. 25년 새 전공의 배출이 약 40명에서 20명으로 50% 급감한 것이다.

전체 흉부외과 수련병원을 기준으로 1‧2‧3‧4년 차에 고루 전공의가 있는 정상적인 수련시스템이 작동하는 병원은 전체의 7.4%인 5개 병원에 불과해 현재 흉부외과 전공의수련시스템은 소수병원을 제외하면 이미 붕괴된 상태이다.

실제로 주변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교수들이 전공의 부족으로 인한 번아웃현상을 경험하면서 향후 개선될 희망이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개원가로 유입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가까운 미래에 지역의료 붕괴가 시작돼 이내 국가 의료붕괴라는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 자명하다.

미국에서는 의과대학 성적이 매우 뛰어난 학생만 외과에 지원할 수 있고 외과 전공의 중에서도 우수해야만 흉부외과에서 추가로 수련받을 수 있어 흉부외과 전문의의 연봉은 의사 중에서도 거의 선두를 달린다. 그만큼 프라이드와 위상도 대단하다. 내과계보다 힘든 외과계를 더 인정하고 그중에서도 더 힘든 과일수록 연봉으로 보상되는 시스템이다.

일본도 지방자치가 잘 돼 있고 일반종합병원에서도 대학병원급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꼭 대학병원이 아니더라도 흉부외과 전문분야를 살려 취직하기 좋은 시스템인 것이다. 

이처럼 외국은 사회적 인정과 높은 연봉으로 보상받거나 힘든 수련을 마친 후 충분한 진로선택의 기회가 있다. 비록 흉부외과가 상대적으로 격무이고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다소 큰 분야라 해도 국내처럼 기피현상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선망하는 인기전공에 속한다.

요즘은 전공의특별법에 따라 주 80시간 근무규정을 꼬박 지키면서 근무하지만 필자가 수련의인 시절만 해도 이러한 법적 보호장치가 없어 주 150시간 근무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거의 1주일 밤낮으로 병원근무를 하고 겨우 반나절 정도 집에 다녀오는 정도였다. 이처럼 열악한 근무환경에서도 당시 1‧2‧3‧4년 차 통틀어 늘 십여 명의 전공의가 함께 근무했다.

하지만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진 지금의 근무환경에서는 오히려 단 세 명의 전공의만이 근무하고 있다. 매년 신입 전공의 선발기간이 돌아오면 전국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교수들은 ‘전공의 0명’이라는 불상사를 겪지 않기 위해 전공의 유치각축전을 벌인다.

메디컬드라마의 단골주인공으로 나오는 흉부외과 의사에 매료돼 의과대학에 입학한 젊은 후배들이 의과대학을 거쳐 의료현장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는 흉부외과 진로 고려조차 하지 않는 현상.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초래되는 걸까?

흉부외과를 경험해본 인턴들은 입을 모아 흉부외과가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병원처럼 큰 병원에 남지 못할 경우 흉부외과 전공을 살려 취직할 자리가 많지 않고 개업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 나아가 개인의 충분한 여가생활을 중시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은 점점 더 기피하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자신의 진로선택 범주에서 아예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필자는 28년간 흉부외과를 전공하면서 폐암, 식도암 같은 큰 수술 외에도 기흉, 오목가슴, 새가슴, 다한증 등 환자의 삶의 질과 직결된 여러 질환을 함께 치료해왔다. 분명히 흉부외과 의사만이 치료할 수 있는 다양한 질환이 있으며 앞으로 이에 대한 진료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향후 발전가능성이 매우 큰 분야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련병원 교수로서 훌륭한 후배 양성이 막중한 임무임을 자각하고 있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흉부외과 전공의 고갈현상이 뼈아픈 실정이다.

수년 전부터 가까운 미래에 흉부외과수술을 할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져 외국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위기상황이 닥칠 것이라는 얘기를 수없이 해왔지만 여전히 우리 시스템상의 아무런 변화도 체감할 수 없다. 얼마 전 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모 대학병원 간호사의 사망과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터져야만 잠시 대책을 고민하다가 이내 잊히는 상황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흉부외과 의료보험수가가 비현실적으로 낮다는 것은 여러 데이터로 알 수 있는데도 한정된 재원 내에서만 해결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정부 관련부처가 주도해 전문가 그룹을 포함한 민관 연합 ‘흉부외과 특별대책위원회’라도 만들어 직접 실태조사를 하고 보험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전공의 수련 국가지원방안(국가책임제, 군복무대체제도, 국가장학금 등)이나 지역 전임의 군복부대체제도 또는 흉부외과 인턴수련의 필수화 등 실제적인 대책이 마련돼야만 MZ세대 젊은 의사들의 흉부외과 지원을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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