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버릴 것 없는 ‘호박’…잘 활용하면 건강이 넝쿨째로!
[한동하의 식의보감] 버릴 것 없는 ‘호박’…잘 활용하면 건강이 넝쿨째로!
  •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2.10.3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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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들녘의 늙은호박을 보면 무엇보다 호박죽이 생각난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늙은호박을 따다 마루 한 켠에 보관해놓고 겨울철 내내 호박죽을 끓여 먹었던 기억이 있다. 호박죽은 맛있을 뿐 아니라 건강을 챙기는 데도 그만이었다.

호박은 박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열대 및 남아메리카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 걸쳐서 재배되고 있다. 호박(胡朴)이란 이름은 한자어로 조선시대 후기 청나라[胡]에서 들어온 박(朴)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의서에는 남과(南瓜)로 기록돼 있는데 바로 늙은호박을 말한다. 서양계 늙은호박은 중국에서 들어왔고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호박은 동양계 애호박이다.

문헌에서 채소 호박을 찾으려면 남과(南瓜)를 검색해야 한다. 반면에 호과(胡瓜)는 오이, 서과(西瓜)는 수박, 호자(瓠子)는 박을 의미한다. 간혹 일부 인터넷 내용을 보면 <동의보감>의 ‘琥珀(호박)’의 내용을 가져다 채소 호박의 효능으로 설명하는 오류를 범하지만 호박(琥珀)은 송진이 굳어서 생긴 물질을 말한다. <동의보감>이 저술될 시기에는 호박이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기록이 없다. 국내에서 호박은 조선후기 이후에 출간된 서적부터 기록돼 있다.

호박은 맛이 달고 성질은 따뜻하면서 독이 없다. <본초강목>에는 ‘보중익기(補中益氣)한다’고 했다. 보중익기란 단어는 말 그대로 속을 보하고 기를 북돋는다는 의미다. 호박은 맛이 달고 황색을 띠기 때문에 보하는 맛과 색을 갖고 있다. 오행적으로 감미(甘味)와 황색(黃色)은 중앙의 토(土)에 해당해서 특히 소화기를 보한다. 따라서 보중익기(補中益氣)한다고 한 것이다.

과거에는 제반 증상에 호박고(胡朴膏)를 만들어 먹었다. <의방합편>에는 조양(調養)하는 방법으로 호박고를 만들어 먹는데 ‘찹쌀로 밥을 짓고 누룩과 밥을 섞는다. 꿀, 참기름, 후추, 천초, 고추, 건강, 겨자, 메밀, 고련근, 목단피 각 5홉(약 900ml)을 곱게 가루 낸다. 가장 큰 호박을 골라 꼭지를 따 구멍을 내고 씨를 제거한 후 위의 재료들을 그 안에 모두 집어넣고 꼭지를 다시 닫는다. 진황토를 물에 개어 호박 전체를 두툼하게 바르고 왕겨불에 묻어 하루 밤낮이 지난 다음 꺼내 공복에 꿀물에 타서 먹는다. 흉복통, 산증(疝症), 복창(腹脹), 담혈(痰血), 복랭(腹冷) 등의 증상에 신효하다’고 했다.

<의휘>에 나와 있는 방법은 상기와 동일하면서 ‘남과고(南苽膏)는 습(濕), 화(火), 냉(冷) 및 여러 가지 담괴(痰塊)로 인한 혈증, 막히는 증상, 흉복통, 산증이나 서증(暑症)으로 인한 여러 가지 복통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나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호박고는 냉증, 복통, 흉통, 객혈이나 객담, 습(濕)으로 인한 부종, 화(火)나 더위로 인한 증상까지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이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박고는 특히 기침과 숨참에도 좋다. <의휘>에는 ‘호박을 크고 붉은 것을 준비하여 꼭지를 따고 속에 있는 씨와 잡물을 제거한 다음 닭 1마리(머리, 발, 내장 및 털을 제거), 생강 2되(약 3.6리터), 엿 1잔(戔). 이 세 가지를 모두 호박에 넣고 다시 꼭지를 닫아 황토를 전체적으로 두껍게 발라 겻불 속에 묻어두고 골고루 익으면 꺼내어 한 그릇을 빈속에 복용하면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또 ‘숨이 차고 그득할 때는 호박꼭지를 잘라내고 꿀을 넣은 다음 도로 꼭지를 붙이고 겻불에 묻었다가 익으면 꺼내어 이른 아침에 먹는다’고 했다. 호박 자체는 기침과 숨참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추가된 재료들을 보면 찬 자극에 의한 기침에 특히 좋고 몸을 보하는 효과가 컸을 것 같다.

호박고는 난임 여성에게도 쓰였다. <의휘>에는 ‘늙고 누렇고 긴 호박을 꼭지를 자르고 속을 다 파낸 뒤 검은 수탉의 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장과 함께 호박 속에 넣는다. 다시 호박꼭지를 덮고 끈으로 묶어 물 3동이에 넣고 3사발이 되도록 달인 후, 호박과 닭고기를 2~3차례 먹는다. 남편은 수수뿌리로 만든 환을 술로 먹고 부인이 호박고를 먹으면 3개월 이내에 반드시 잉태한다’고 했다. <단방비요 경험신편>에는 이 처방을 음위(陰痿) 편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음위(陰痿)란 남성 발기불능을 의미하는 용어다. 이 호박고는 남녀 모두에도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호박의 건강효능은 무궁무진하다. 호박죽, 호박찌개 등 기호에 맞게 다양한 요리로 먹을 수 있는 만큼 가을이 가기 전 알차게 활용해보자(사진=클립아트코리아).

호박은 술을 빚어 냉증을 치료했다. <의휘>에는 ‘냉증에는 호박 큰 것 1개를 윗부분을 자르고 그 안에서 술을 빚는데 자른 부분으로 도로 윗부분을 닫는데, 호박 속의 씨는 제거한다. 10여일 뒤에 술이 익으면 마신다. 술을 만드는 재료는 찹쌀 1되 5홉, 메밀 5홉, 누룩 적당량을 (호박 속에) 넣는다’고 했다. 호박술은 혈액순환을 촉진하면서 냉증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호박은 소염진통 작용이 있다. <양의미>에는 ‘호박의 속을 따뜻하게 해서 붙이면 종기의 독을 삭인다. 무릇 모든 종기의 독에 다 쓴다’고 했다. <본초강목습유>에는 ‘정창(疔瘡)에 늙은 호박꼭지 몇 개를 불기운에 말리고 가루 낸 다음 삼씨기름에 개어 발라주면 바로 효과가 난다’고 했다.

호박은 담 결림에도 좋다. <의방합편>에는 ‘늙은 호박을 불에 올려 구워서 뜨거울 때 아픈 곳을 눌러 주면 바로 낫는다’고 했다. <의휘>에는 ‘담이 뭉쳐 어떤 곳을 막론하고 당기고 아플 때는 늙은 호박을 불에 구워 따뜻할 때 아픈 곳을 계속 누르면 즉시 낫는다’고 했다. 호박은 근육이 뭉쳐서 통증이 유발되는 곳에 온습포를 해주면 좋다.

호박속은 남과양(南瓜穰)이라고 했는데 화상을 치료하는 데도 이용됐다. <본초강목습유>에는 ‘탕화상(湯火傷)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늙은호박의 속과 씨를 함께 병 속에 넣는데, 오래 넣어 둘수록 좋다. 탕화상을 입었을 때 이것을 발라주면 곧장 욱신거리는 통증이 진정되는 신묘한 효과가 있다’라고 했다. 이 또한 소염진통 작용에서 비롯된 효능으로 볼 수 있다.

조상들은 호박을 가정상비약으로 활용했다. 피부가 가려워 긁어서 헐면 호박줄기를 달여서 씻었다. 피부에 옹저(癰疽)와 창(瘡)이 생기면 호박꽃 찧어 떡을 만들어 붙이면 효과가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탈장에는 호박순을 달여서 먹였고 호박꼭지는 유산을 방지하는 데 활용했다. 호박은 버릴 것 없이 넝쿨째 사용됐다.

호박에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항산화작용, 피로해소,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체내에서는 비타민A로 전환되면서 안구건강에도 좋다. 호박의 펙틴성분은 위장을 편하게 하면서 이뇨작용이 있어 부종을 제거한다. 칼륨도 풍부해 고혈압환자에게 특히 좋다. 호박씨에는 불포화지방산과 아연, 레시틴이 많아 혈관건강에도 좋고 탈모를 예방한다.

<본초강목>에는 ‘많이 먹으면 각기나 황달을 발생시킨다. 양고기와 함께 먹지 말아야 하는데 사람의 기를 막히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황달이라고 표현한 것은 호박의 노란색 베타카로틴에 의한 피부의 색소침착(카로틴 혈증)으로 걱정할 것이 없다.

양고기와 호박의 궁합은 열체질에서 열감을 조장해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다. 양고기는 육류 중에서도 기운이 가장 뜨겁다. 기를 막힌다는 말은 열로 인한 답답함을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냉체질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궁합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닭고기와의 궁합도 냉체질에 적합하겠다. 성질이 냉한 돼지고기나 오리고기와는 호박이 냉성을 잡아줄 수 있어 무난한 궁합이 된다. 호박이 어떤 육류와 맞고 안 맞고가 아니라 자신의 체질에 맞게 결정하면 될 것이다.

올해는 조상들의 건강비법인 호박고를 한번 만들어 먹어보자. 호박죽, 호박찜, 호박차, 호박국, 호박찌개라도 좋다. 호박요리가 넝쿨째 굴러오면 건강을 챙길 수 있다. 호박씨는 몰래 까먹더라도 호박은 대놓고 먹자. 호박을 먹는다고 자랑하는 만큼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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