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VS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놓고 또 충돌…국민만 ‘혼란’
의사 VS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놓고 또 충돌…국민만 ‘혼란’
  • 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2.12.27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법원,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활용 합법’ 판결
의협 “의료법 업무범위 넘어선 엄연한 무면허 행위”
한의협 “일반의 누구나 사용 가능, 국민기만 말아야”
대한의사협회 대한방사선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26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활용이 합법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며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의료법령 개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국민건강을 위협한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올해. 설상가상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이 다시금 점화됐다. 최근 대법원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활용이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을 놓고 대립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한의사 A씨는 부인과 증상을 호소하던 여성환자에게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2년여 기간 약 열흘마다 초음파기기를 사용, 총 68회에 걸쳐 자궁을 촬영하는 방법으로 장기간 진료행위를 해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 환자는 이후 산부인과에서 자궁내막암을 진단받았다.

이에 1심과 항소심에서는 A씨에 대해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지난 22일 대법원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행위기준이 필요하다”면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 중앙지방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에 대해 26일 대한의사협회는 대한방사선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와 함께 공동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강력 규탄에 나섰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의료행위는 사람의 생명과 밀접하고 중대한 관계가 있어 의료법에서는 각 면허된 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런 취지로 현행 의료법 제2조에는 ‘한의사는 한방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적시, 한의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이들 3개 단체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통한 진단은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로 의사의 지도하게 방사선사와 임상병리사가 수행하며 규정된 정도관리를 통해 엄격하게 통제돼야 한다. 이번 사례처럼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쳐 환자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된 것처럼 초음파 진단기기를 잘못 사용하면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인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의료법령 개정을 국회와 보건복지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의사 측도 논평을 통해 즉각 반발에 나섰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같은 날 논평을 발표, “초음파 진단기기는 양의계 전문의뿐 아니라 일반의 누구나 진료에 사용할 수 있는데도 마치 영상의학과 전문의만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또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음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음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를 적용 또는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히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음이 확실해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의사가 진료에 초음파 진단기기를 활용하는 것은 합법적인 행위임을 분명히 밝혔다.

아울러 대한한의사협회는 “국민의 소중한 건강과 생명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 초음파 진단기기를 포함한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에 적극 찬성하고 이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한의계에서 오랫동안 강력히 요구해온 사안으로 이번 초음파 진단기기를 포함해 극초단파 치료기, 초단파치료기, 온 냉경락요법, 적외선 치료기 등 14개에 대한 한의사 사용이 허용됐다.

하지만 한의사들이 의료현장에서 초음파 진단기기를 합법적으로 사용하려면 건강보험에서 적용, 비적용(비급여) 결정을 받아야 하며 그전까지는 진단 보조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포함, 현대 진단기기를 한의사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한의사들이 이번 판결을 빌미삼아 의료면허의 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속한다면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한편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국민들의 혼란 역시 가중됐다. 의사와 한의사 모두 국민 건강과 생명 수호를 내세우며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선 본인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밥그릇 싸움’으로밖에 비치지 않는 것.

정부 역시 한 발짝 물러서서 갈등을 관찰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법령 개정 등이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일반 국민에 대한 인식조사를 통해 현 의료현장에서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파악하는 등 국민건강과 생명을 위해 정작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좀 더 가까이에서 해당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급변하는 의료환경에 발맞춰 변화한 국민 인식도 보다 빠르게 캐치할 수 있다. 의사와 한의사 역시 혜택을 받는 입장은 ‘국민’이라는 점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