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주치의 권리는 어디에…‘타비시술 급여확대’ 무슨 의미 있나
환자·주치의 권리는 어디에…‘타비시술 급여확대’ 무슨 의미 있나
  • 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01.16 0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 신년기자간담회 통해 정부에 목소리
심장통합진료팀 타비시술 결정 속 환자·주치의 권리 상실
인력부족 심각, 보상은 無…필수의료 지원대책 실효성 없어
대한심혈관중재학회는 14일 신년기자간담회를 통해 심장통합진료팀에 의한 타비시술 결정과 최근 발표된 필수의료지원 대책에 대한 학회 측의 입장을 밝히고 정부에 개선을 강력히 촉구했다.  

“비현실적이고 형식적인 정책 속 환자와 의사의 권리가 빼앗기고 있다.”

심장내과 전문의가 해를 거듭할수록 줄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심혈관중재학회가 정부를 향해 적극 목소리를 냈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는 12일부터 14일까지 ‘제19회 동계국제학술대회(KSIC 2023)’를 개최했다. 특히 학회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신년간담회를 통해 언론과의 소통자리를 갖고 현실과 전혀 반대로 가고 있는 보건의료정책 속 환자와 의사의 권리가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알렸다.

배장환 보험이사가 14일 열린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배장환 보험이사는 타비시술 시행여부 결정에 있어 환자와 주치의의 권리가 배제된 현 상황을 언급하며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타비시술 시행여부 결정…환자·주치의 의견은 배제  

먼저 학회는 경피적 대동맥판막삽입술(TAVI, 이하 타비시술)의 건강보험 급여 확대 속 가려진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타비시술은 대동맥판막이 석회화되면서 좁아져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중증의 대동맥판막협착증환자에게 가슴을 절개하는 개흉수술 대신 최소절개로 인공판막을 집어넣어 대동맥판막을 교체하는 시술이다.

대동맥판막협착증환자는 대개 고령에 기저질환을 동반하고 있어 수술 위험 부담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타비시술은 2022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시행된 후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그간 다수의 임상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 현재 개흉수술을 못하는 환자에게만 실시하는 차선책이 아닌 대동맥판막협착증의 새로운 표준치료법으로 자리잡았다.

나아가 지난해는 타비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확대돼 80세 이상 고령과 고위험군(수술에 의한 사망이 8% 이상으로 예상) 환자는 본인부담률이 80%에서 5%로 낮아졌다. 중위험군(수술연관 사망예측률 4~8%)은 50%, 저위험군(수술 사망예측률 4% 미만)은 80%를 자가부담한다.

문제는 타비시술 시행여부의 경우 심장통합진료팀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환자가 아무리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놓여 있어도 타비시술을 받을 수 없다는 것.

현재 보건복지부는 타비시술대상에 대해 심장내과 2인, 흉부외과 2인, 마취통증의학과 1인, 영상의학과 1인 이상의 전문의로 구성된 심장통합진료팀이 대면으로 타비시술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만일 심장통합진료팀 의사 중 한 명이라도 타비시술을 반대하면 환자는 비급여로도 타비시술을 받을 수 없다. 즉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현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타비시술에 대한 정보를 공유받고 스스로 치료방침을 결정할 권리가 전혀 주어지지 않으며 해당 환자를 오래 관찰해온 주치의조차 치료방침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에 반해 외국은 심장통합진료팀이 타비시술 가능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해당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법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도록 돼 있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 배장환 보험이사(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환자의 상태가 매우 중하고 전문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만장일치의 결정을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데도 한 명의 반대만 있어도 타비시술을 할 수 없다는 건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며 “또 심장통합진료팀은 언뜻 다학제진료처럼 보이나 그 과정에서 환자나 보호자는 물론, 해당 환자를 가장 잘 아는 담당주치의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다는 건 기본적인 운영원칙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모든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환자에서 심장통합진료팀 논의가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학회의 설명에 따르면 흉부외과에 입원하는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환자는 심장통합진료팀에서 논의도 되지 않고 타비시술에 대한 설명도 없이 개흉수술을 받는 경우가 매우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대한심혈관중재학회 최동훈 이사장(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은 “모든 중증 대동맥판막협착증환자에 대해 심장통합진료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환자들이 최소한 타비시술이라는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있음을 공지받고 해당 내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하며 순환기내과, 흉부외과 등이 협의해 최선의 치료방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최동훈 이사장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은 의사들은 물론 이들에 의한 신속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국민들에게도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기준의 비용·효과성에만 중심을 둔 정책이 아닌 과감한 정책 변화와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한 발짝 물러선 필수의료 지원대책

뒤이어 학회는 최근 발표된 정부의 필수의료지원 대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서울아산병원 뇌출혈간호사 사망사건으로 필수의료과목의 인력 부족이 심각한 보건의료사안으로 떠오르자 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필수의료 지원대책의 골자는 중증·응급환자, 분만·소아환자가 골든타임 내 거주지 인근에서 24시간, 365일 필수의료를 제공받도록 지원하겠다는 것.

이 가운데 하나로 복지부는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 구축안을 내놓았다. 중증·응급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지 않고 최종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자 권역응급의료센터 40개소를 최종치료 역량을 갖추도록 중증응급의료센터로 개편, 적시 치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즉 응급의학과뿐 아니라 실제 중증응급환자의 치료를 담당할 진료과의 최종 치료 제공가능 여부에 따라 응급의료체계를 구성하겠다는 것으로 심혈관중재시술 또한 응급의 범주에 포함됐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응급의료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닌 지역 전문의들이 사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발적으로 응급전원협진망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 복지부는 이를 통한 성과에 대해서는 정책 수가로 사후 보상하겠다는 방침이다.

배장환 보험이사는 “한정된 자원으로는 동일한 응급의료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히자 이러한 대안을 내놓은 것인데 국민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를 의료진의 자발적인 네트워크에만 맡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게다가 심혈관중재시술분야의 인력 부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응급환자 발생 시 골든타임 내 시술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심혈관중재술 전문의가 응급대기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수당조차 못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학회 측은 “이미 일할수록 보상이 적어지는 현실에 놓여 있었는데 이제는 시스템 운영도 다 알아서 하라는 것은 의료인의 직업적 사명 외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기본적인 수가 보전과 응급대기 보상이 없는 의료현장에서 성과에 따른 사후보상을 필두로 하는 정책수가는 전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분명히 입장을 밝혔다.

나아가 학회는 정부가 제안한 ‘전문의 순환교대 당직’에 대해서도 “순환교대 당직이라는 제도하에 환자를 강제 배정하는 것은 의료기관의 수익에 직접 영향을 줄 뿐 아니라 환자에게는 치료받을 병원과 의사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 의사에게는 주치의로서 의학적 소견을 환자에게 설명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라며 “이러한 여러 권리가 고려돼야 하는데 응급전원협진망 안에서 환자를 배정한다는 것은 다소 순진한 견해”라고 비판했다.

최동훈 이사장은 “순환교대 당직이라는 비현실적인 대안을 제안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응급대기를 하면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모든 심혈관중재의에 대해 응급대기수당을 포함한 현실적인 지원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비현실적이고 정부의 제도적 지원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필수의료 지원대책은 현장의 더 큰 혼란만 부를 것이 자명하며 이는 결국 국민생명을 지키는 데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회 측은 기자간담회를 마무리하며 “필수의료과목에 대한 실질적인 어려움을 파악하고 과감한 정책 변화나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또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며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주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