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달고 시원한 배, 추운 겨울에도 즐겨볼 만하다
[한동하의 식의보감] 달고 시원한 배, 추운 겨울에도 즐겨볼 만하다
  •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02.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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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배는 겨울에도 주로 먹는 과일로 꼽힌다. 달고 맛있어서 손도 자주 간다. 하지만 몸을 서늘하게 해서 추운 겨울에는 아무래도 꺼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침이나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다면 일부러라도 먹어야 한다.

배는 장미목 장미과에 속한 배나무의 열매로 한자로는 이(梨) 또는 이자(梨子)라고 한다. <본초강목>에는 ‘이(梨)는 소통한다[利]는 뜻이다. 그 성질이 아래로 향해 내려가 소통시킨다’라고 했다. 이(利)자에는 소통의 의미도 있지만 이롭다는 의미도 있다. 뭐든지 통하면 이로운 것이다.

배는 시원하고 상쾌한 과일이다. <본초강목>에는 ‘배는 종류가 유달리 많은데, 모두 성질이 차고 소통시키니 많이 먹으면 사람을 손상시킨다. 그러므로 민간에서는 쾌과(快果)라 한다’고 했다. 몸에 열이 많고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는 시원하게 하기 때문에 상쾌한 과일, 즉 쾌과(快果)라고 했다.

배는 달고 맛이 시며 성질은 차고 독이 없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차고 서늘하다. 맛은 달고 약간 시며 독이 없다’고 했다. 대부분의 한의서에서는 배가 성질이 차기 때문에 효과를 내지만 그만큼 너무 과식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배는 기침, 가래와 갈증을 해소한다. <본초강목>에는 ‘열과 기침이 나는 증상을 치료하고, 갈증을 멎게 한다’고 했다. 또 ‘음료로 만들어 마시면 풍담(風痰)을 토하게 한다’고 했다. 기침, 가래에 좋다는 것은 배의 대표적인 효능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침이 나는 증상에 배의 씨를 제거하고 찧어낸 즙 1사발에 천초 40알을 넣고 한 번 끓여 찌꺼기를 제거한 다음 검은 엿 1냥을 넣고 엿이 다 녹으면 이것을 조금씩 입에 물고 있다가 삼키면 진정된다’고 했다. 이때 엿 대신 꿀을 이용해도 좋다. 지금도 가정요법으로 충분하게 활용해볼 만한 처방들이다.

한의서에 보면 노인의 만성기침에 좋은 오과다(五果茶)가 있다. 오과다는 호도, 은행, 대추, 생밤, 생강으로 구성된 것으로 달일 때 보통 꿀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때 생배를 넣어주면 더 좋다. 열증이 동반되는 경우라면 특히 더 좋다.

참고로 배는 열이 나는 경우, 열감이 있는 경우, 급성염증이 심한 경우 등에 도움이 되지만 찬 자극으로 인해 기침·가래가 심해지는 경우는 오히려 악화요인이 될 수 있다. <본초정화>에서도 ‘폐한(肺寒)으로 인한 기침이나 한담(寒痰)에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배가 무작정 기침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배는 가슴이 답답할 때 좋다. <본초강목>에는 ‘적풍(賊風)을 제거하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숨이 차고 열이 나면서 발광(發狂)하는 것을 멎게 한다’고 했다. <식료본초>에는 ‘생배즙은 가슴이 답답하고 열결(熱結)이 있는 사람에게 좋다’고 했다. <급유방>에는 ‘맛이 단 배 3개를 잘게 썰고 물에 달인 후 국물 1되에 멥쌀 1홉을 넣어 죽을 쑤어 먹이면 번열(煩熱)을 풀어준다’고 했다. 배는 열감이 있으면서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하고 수분함량도 높아 조열(燥熱)로 인한 갈증을 제거하는 효과도 좋다.

배는 감기로 인한 발열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상한으로 인한 발열을 치료한다’고 했다. 따라서 감기로 인한 인후통이나 편도선염으로 인해 열이 나는 경우 생배를 먹으면 좋다. 생배는 해열작용도 있으면서 인후통을 줄여주는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다. 고열과 함께 목이 많이 붓고 아플 때는 차가운 생배를 갈아서 짜낸 즙을 조금씩 마셔도 좋겠다.

겨울철 감기로 인한 기침, 가래, 발열 증상에는 배가 약이 될 수 있다. 성질이 찬 만큼 속이 냉한 사람은 과다섭취하지 말아야 하며 배 씨앗은 독이 있어 아예 먹지 않는 것이 좋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배는 중풍으로 인해 말을 못 하는 증상에도 먹었다. <급유방>에는 ‘중풍(中風)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좋다’고 했다. 이러한 효과는 배가 기관지의 가래를 제거하면서 흉곽을 시원하게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배는 술을 깨게 한다. <본초강목>에는 ‘주독(酒毒)을 풀어준다’고 했다. 배는 성질이 서늘해서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술병으로 번갈(煩渴)이 나는 사람에게만은 매우 좋다’고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효과는 배의 성질이 서늘해서 열성의 주독을 풀어주는 효과로도 설명되지만 그보다는 배에는 이뇨작용이 있기 때문에 음주 후 배를 먹으면 술이 빨리 깬다고 볼 수 있다. 소변을 통해 알코올을 분해하는 독성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의 배출을 촉진하는 것이다.

배는 외용제로 화상에도 사용했다. <본초강목>에는 ‘얇게 썰어 화상을 입은 데 붙여 주면 통증이 멎고 환부가 문드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보통 가정에서 가볍게 화상을 입으면 알로에, 생감자, 오이 등을 잘라 붙이는데 앞으로는 생배를 얇게 잘라 붙여볼 만하다.

열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배의 성질을 그대로 살려 생으로 먹어야 한다. 따라서 생배는 심열(心熱)과 번조증(煩燥症)을 치료한다. 하지만 찬 자극에 의한 기침 등을 치료하거나 진액을 보충해 갈증을 없애기 위해서는 익혀서 먹는 것이 좋다. 이때는 꿀과 함께 중탕해서 먹어도 좋다. 배를 익혀 먹으면 속이 냉한 경우에도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배는 속이 냉한 사람은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본초정화>에는 ‘많이 먹으면 사람의 속을 차게 하여 야위고 약하게 한다. 금창(金瘡)이 있는 자, 유모(乳母), 혈허(血虛)한 자는 더욱 먹지 말아야 한다. 성질이 차서 많이 먹으면 냉리(冷痢)가 된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배는 성질이 차서 외상으로 상처가 있는 경우, 수술 후, 젖을 먹이는 산모, 과다출혈의 경우는 금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 씨앗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배는 장미과에 속한 과실수의 열매로 배 씨앗에는 독성물질로 꼽히는 시안화합물의 일종인 아미그달린이 함유돼 있다. 배 한두 개에 포함된 씨앗 속의 아미그달린 함량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굳이 먹을 필요까지 없다.

배속은 어떨까? 보통 배속은 식감이 단단하고 까끌까끌한 느낌이 있어서 잘 안 먹는데 이는 석세포(돌세포) 때문이다. 그런데 배의 석세포는 세포벽이 단단해서 최근에는 화장품이나 치약의 각질제거제나 연마제로 활용되고 있다. 만일 배 과육을 다 먹고 씨앗이 제거된 배속을 재미 삼아 씹어 먹는다면 치아건강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배를 약으로 친다면 진해거담제, 해열제, 숙취제거제 등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옛 문헌에 배는 약에 넣지 않았다고 했는데 누군가의 말처럼 이는 배의 효능을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배는 맛이 달아서 과식하기도 하는데 요즘 배 크기로 보면 하루 반 개면 충분하다. 자칫 배를 욕심내다가 배탈이 날까 두려울 뿐이다. 배는 감미로운 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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