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강직성척추염…치료제 논의 차일피일 미룰 일 아냐”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강직성척추염…치료제 논의 차일피일 미룰 일 아냐”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11.0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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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승재 경희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대한류마티스학회 보험이사)
홍승재 교수는 “인터루킨-17A(IL-17A)억제제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치료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다”며 “환자의 고통을 알면 이렇게 급여적용이 늦게 될 수 없다”고 일침했다.
홍승재 교수는 “인터루킨-17A(IL-17A)억제제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치료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다”며 “환자의 고통을 알면 이렇게 급여적용이 늦게 될 수 없다”고 일침했다.

“여기 하얀 부분 보이시죠. 정상인이라면 엑스레이상 관절은 검은색으로 보여야 하는데 강직성척추염환자들은 만성염증 탓에 관절이 굳어 뼈와의 경계가 불분명해집니다.”

군데군데 비어 있어야 할 공간이 새하얀 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의학교과서에 실린 정상인과 강직성척추염환자 사진에는 크게 차이가 있었다. 강직성척추염환자의 척추는 마치 막대기처럼 딱딱하게 보였다. 언뜻 대나무처럼 보이기도 했다. 숨이 막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인체 비례도’가 떠올랐다. 여백의 미(美)는 인체에도 적용된다. 원 안에 인체의 아름다움을 정교한 음영과 여백의 공존으로 표현했을 터인데 흰색으로 가득 찬 저 사진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순간 허리의 뻐근함이 느껴졌다. 이 때문일까. 실제 강직성척추염환자의 척추를 ‘대나무척추(Bamboo Spine)’라고 부른다.

강직성척추염은 척추‧관절을 비롯해 주변 힘줄‧인대 등에 염증이 발생하는 만성염증성질환이다. 염증 탓에 통증이 찾아오고 점차 척추‧관절이 손상된다. 증상이 심해지면 척추 뼈 사이 인대들이 점점 뻣뻣해져 척추가 대나무‧막대기처럼 딱딱하게 하나로 붙는다.

주로 젊은 연령대에서 발생하는데 단순 근골격계질환으로 오인해 진단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진단시기를 놓치면 척추변형 등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눈·폐·심장·장 등에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켜 조기진단·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 강직성척추염치료제로는 ‘종양괴사인자 알파(TNF-α)억제제’가 유일했지만 최근에는 인터루킨-17A(IL-17A)억제제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2차치료제로 자리잡아 사용이 어렵습니다. 답답하죠. 환자 분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말문이 막힙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추적추적 비가 내려 허리가 아려온 날이었다. 홍승재 경희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대한류마티스학회 보험이사)와 강직성척추염환자들의 치료환경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 강직성척추염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에 따르면 강직성척추염환자의 증가세는 뚜렷하다. 과거에는 질환인지도가 낮아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회 차원의 홍보활동 등 질환 인식개선이 많이 이뤄지며 조기발견하는 환자가 늘었다. 특히 남성에서 조기진단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남성의 경우 입대 전 허리통증으로 디스크 또는 강직성척추염검사를 받기도 한다.

- 강직성척추염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데.

정확한 원인은 밝혀진 바 없다. 남성이 여성보다 척추관절 부위에 기계적인 충격이나 운동 등에 의한 손상 등 직접적인 자극이 많아서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적 측면보다는 HLA-B27 유전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강직성척추염 진단기준에 유전자검사가 들어있는 이유다.

- 허리통증이 주증상인데 디스크와 혼동할 수 있을 것 같다.

관절통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염증성통증(류마티스관절염 등)과 비염증성통증(퇴행성관절염) 등이다. 허리통증도 마찬가지로 염증성요통이면 ‘강직성척추염’으로 보고 비염증성요통이면 ‘디스크’라고 표현한다.

강직성척추염은 통증을 동반하지만 차이점은 ‘강직’이다. 통증으로 잠을 잘 수 없고 새벽에 자꾸 깰 정도로 허리가 뻣뻣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통증과 1시간 이상의 뻣뻣함을 느끼고 움직이면 증상이 완화된다. 반면 디스크 같은 비염증성요통은 움직이면 아프고 가만히 쉬면 좋아진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 강직성척추염의 치료목표는.

강직성척추염의 치료는 염증을 조절해 통증을 없애고 관절이 굳어지는 것을 막아 정상적인 신체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자가면역질환인 강직성척추염은 면역기능이 왕성한 20~30대에 주로 발병한다. 따라서 조기진단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강직성척추염치료제로는 ‘종양괴사인자 알파(이하 TNF-α)억제제’가 유일했다. 2005년에 TNF-α억제제가 급여화 된 이후 10여년간 잘 사용했지만 약효가 떨어지고 부작용이 생기면서 쓸 수 없는 환자들이 생겼다. 하지만 2017년 인터루킨-17A(이하 IL-17A)억제제가 국내에 2차치료제로 도입되면서 강직성척추염 치료의 한 줄기 희망이 됐다.

- 약효가 떨어진다는 기준은 무엇인지.

쉽게 얘기하면 치료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질환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다. 강직성척추염의 주된 원인은 TNF와 인터루킨이다. 주원인이 인터루킨인 경우 TNF-α억제제를 사용해도 별 효과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환자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1차치료제로 TNF-α억제제만 사용할 수 있다. 또 환자가 TNF-α억제제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후에야 IL-17A억제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이다.

- 2022년 국제척추관절염평가학회(ASAS)와 유럽류마티스학회(EULAR)에서 가이드라인을 업데이트하면서 IL-17A억제제가 1차치료제로 권고됐다.

신약을 우선 2차치료제로만 사용하는 이유는 해당 약제의 장기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IL-17A는 효용성, 안전성 모두를 입증한 치료제다.

IL-17A억제제가 사용된 지 6년이 지났다. IL-17A억제제는 TNF-α억제제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것이 이미 많은 데이터를 통해 입증됐다. 이를 바탕으로 EULAR 가이드라인이 업데이트됐다. 하지만 여전히 IL-17A억제제는 1차치료제로 급여가 불가능해 TNF-α억제제로 치료를 시작, 효과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만 사용할 수 있다.

효능 측면에서 봤을 때도 TNF-α억제제가 사이토카인을 직접 억제하기 때문에 효과가 빠르지만 뼈가 굳는 골생성, 방사선학적 진행에서의 효과에서 IL-17A억제제가 오히려 더 좋은 효과를 보였다. 2차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다른 질환치료제 중에서 6년간 1차치료제가 되지 못한 약은 거의 없다. 답답한 노릇이다.

- TNF-α억제제 사용이 적절치 않은 환자들이 많을 것 같은데.

올해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많은 논의를 나눴다. EULAR 가이드라인 업데이트를 비롯해 IL-17A억제제가 TNF-α억제제와 동등하게 1차치료제로서의 효과가 있고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급여 논의는 여기서 멈춰진 채로 11월이 됐다.

당장 IL-17A억제제를 1차치료제로 사용해야 하는 환자들이 많다. TNF-α억제제는 심장에 문제가 있거나 감염위험이 높은 환자들에게 사용이 어렵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잠복결핵’이다.

잠복결핵이라는 개념 자체가 TNF-α억제제 때문에 생긴 것이다. TNF-α억제제를 사용했을 때 결핵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TNF-α 억제제를 사용할 때는 잠복결핵검사를 받고 양성이면 증상이 없더라도 결핵약을 함께 복용해야 한다. 결국 결핵 위험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IL-17A억제제가 훨씬 더 안전한 치료옵션인데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 IL-17A억제제의 급여가 미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논의를 진행할 때 외국 기준, 가이드라인, 논문 등 여러 근거를 토대로 IL-17A억제제는 1차치료제로 사용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로 약 9개월 동안 진전이 없는 이유는 정부에서 재정 부담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직성척추염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상당하다. 강직성척추염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결국 수술해야 한다. 척추의 강직이 심각해져 장애판정을 받고 복지카드를 발급받는 경우도 있다. 또 심한 경우 인공관절수술을 진행해야 하는데 강직성척추염 특성상 재수술이 필요하다. 결국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조기에 적절한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비용효과적이라는 것이다.

- 정부의 지원이 절실할 것 같다.

어떠한 질환이든 조기진단과 치료만이 합병증과 후유증 등을 예방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MRI와 유전자검사 모두 급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강직성척추염 조기진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기치료의 측면에서는 아니다. 충분히 효과가 좋고 안전한 치료제가 있지만 다른 약제를 사용해 실패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은 낭비다. 따라서 올해 안에는 강직성척추염 1차치료제로서 IL-17A억제제의 급여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의료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하루빨리 단 하나라도 1차치료제로 급여가 가능해져 중증난치성환자들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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