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철퇴 닮은 ‘백질려’, 병마 무찌르는 선봉장
[한동하의 식의보감] 철퇴 닮은 ‘백질려’, 병마 무찌르는 선봉장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3.12.0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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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우리나라 남해안이나 제주도 바닷가 모래사장에는 ‘남가새’라는 식물이 자란다. 남가새의 씨앗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사극에서 병사들이 쇠사슬 끝에 묶어 휘두르는 철퇴(철추)를 닮았다. 신기한 점은 이 철퇴모양의 씨앗이 질병을 물리치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남가새(Tribulus terrestris)는 남가새목 남가새과 남가새속 남가새종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로 그 씨앗을 약용한다. 한자로 질려(蒺藜)라고 하고 그 씨앗을 질려자(蒺藜子, tribuli fructus)라고 한다. 특히 백질려(白蒺藜)를 약용한다. 본 칼럼에서는 남가새 씨앗을 ‘백질려’로 칭하겠다.

백질려는 가시가 달린 철퇴처럼 생겼다. <본초강목>에는 ‘옛날에 길에 많이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은 이 씨앗의 날카로운 가시를 밟지 않으려고 나막신을 신었다’고 했다. 또 ‘군대에서는 쇠로 질려모양을 만들어서 적이 가는 길가에 뿌려두기도 했는데 그 이름을 철질려(鐵蒺藜)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도 영화를 보면 상대편의 자동차 바퀴를 펑크내기 위해서 남가새 씨앗 모양의 주조물을 압정처럼 만들어 길에 뿌리는 장면도 볼 수 있다. 혹시 이것도 백질려를 보고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백질려에는 가운데 부분은 작은 공처럼 생겼고 주변에 10개의 작은 가시가 달려 있다. 약초 중에 가시가 달린 것들을 보면 보통 기운이 가벼워서 두면부나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것들이 많다. 또 간풍(肝風)을 제거해 진정작용이 있으며 막힌 기운을 뚫어 주는 효능이 있다. 백질려도 마찬가지다.

볶아서 살짝 으깨져 있어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작은 가시가 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사진=한동하한의원 제공).

백질려의 맛은 쓰고 성질은 달고 독이 없다. <동의보감>에는 ‘지금은 가시가 있는 것을 많이 쓰는데 볶아서 가시를 없앤 후에 짓찧어 쓴다’고 했다. 이처럼 약으로 사용할 때는 가시를 제거하고 사용한다. 옛날에는 흉년에 구황식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본초강목>에는 ‘장복(長服)하면 기육(肌肉)을 늘리고 눈이 밝아지며 몸이 거뜬해진다’고 했다.

백질려는 막힌 기운을 뚫어준다. <본초강목>에는 ‘악혈(惡血)을 치료하고 기가 막힌 것이나 적취(積聚)를 깨뜨린다’고 했다. 즉 백질려는 지나친 스트레스로 가슴이 답답하고 뭉친 기운이 있을 때 도움을 준다. 한의학에서는 백질려가 간기울결(肝氣鬱結)을 풀어준다고 했는데 간기가 울결되면 분노조절장애나 화병 등으로 인해 흉통을 동반한다.

백질려는 눈을 밝게 한다. <본초강목>에는 ‘눈을 밝게 한다’고 했다. <외대비요>에는 ‘30년 동안 눈이 보이지 않는 증상에 보간산(補肝散)을 쓴다. 7월 7일에 채취한 백질려를 그늘에 말렸다가 찧어 가루 낸다. 이것을 식후에 물로 1방촌시씩 하루 두 번 복용한다’고 했다. 백질려는 눈을 밝게 하면서도 눈의 가려움증도 없애기 때문에 다양한 안구질환에 사용된다.

백질려는 피부 가려움증을 치료한다. <본초강목>에는 ‘풍으로 몸이 가려운 증상, 두통을 치료한다’고 했다. <의감중마>에는 ‘창종(瘡腫)과 피부 가려움증을 치료한다’고 했다. 임상에서는 피부 가려움증이나 습진에 다용된다.

백질려는 백전풍(白癜風)에도 사용했다. <본초강목>에는 ‘백전풍에 백질려 6냥을 생으로 찧어 가루 내고 미음으로 2돈씩 하루 두 번 복용한다. 복용한 지 1개월이 되면 병의 근원이 끊어진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풍(風)으로 가려운 것이나 백전풍에 주로 쓴다. 달인 물을 먹고 그 물로 목욕을 한다’고 했다. 백전풍은 요즘의 백반증을 말한다. 백반증는 멜라닌색소의 파괴로 인한 난치성피부질환인데 이러한 내용을 참고해서 연구해볼 만하다.

백질려는 종기를 치료한다. <본초강목>에는 ‘어린아이의 두창(頭瘡), 옹종과 음궤(陰潰)에는 가루로 만들어 문질러 준다’고 했다. <양무신편>에는 ‘나력(瘰癧, 목의 멍울)과 정창(疔瘡), 발배(發背) 등의 제반 종기에 제비꽃 뿌리의 거친 껍질을 제거한 뒤 백질려와 함께 가루를 만들어 기름에 개어 바르면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백질려는 소염작용이 강하다.

백질려는 눈과 피부건강, 염증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백질려는 눈과 피부건강, 염증완화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사진=한동하한의원 제공).

백질려는 새살을 돋게 한다. <본초강목>에는 ‘얼굴에 흉터가 남았을 때 백질려와 산치자 각 1홉을 가루 내고 식초에 개어 밤에 발라 주고 아침에 씻어 낸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백질려는 소염작용과 함께 피부나 조직의 상처회복을 촉진, 조직재생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질려는 남성 정력에 좋다. <본초강목>에는 ‘정(精)을 보익하고 신(腎)이 차가운 것과 소변이 많은 것을 치료한다. 정이 새는 증상, 혈뇨, 종통(腫痛)을 멎게 한다’고 했다. 백질려는 남성의 비뇨생식기 증상에 도움을 주며 자양강장 효과를 나타낸다. 연구결과 백질려의 사포닌이 성선자극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한다고 밝혀졌다.

서양에서는 백질려가 남성에 활력을 준다고 믿어 운동 중 건강식품으로 복용한다. 남가새의 학명인 ‘Tribulus terrestris’을 검색하면 이와 관련된 많은 건강식품이 나온다. 하지만 남가새의 남성호르몬의 증가효과는 증명되지 않았다.

백질려는 치통에도 좋다. <동의보감>에는 ‘풍아통(風牙痛) 및 감식(疳蝕, 충치)을 치료한다. 백질려를 가루 낸 것 2돈씩에 소금 한 술을 넣고 물에 달여 뜨거운 채로 양치하면 통증을 멈추고 치아를 튼튼하게 한다’고 했다. <본초강목>에는 ‘치아가 흔들리고 출혈이 멎지 않거나 통증이 있을 때 백질려 가루로 날마다 문질러 준다’고 했다.

백질려를 끓여서 그 물로 가글을 해도 좋다. 백질려를 가루로 만들어 치약과 함께 섞어 양치해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백질려는 충치균(스트렙토코쿠스 무탄)의 산 생성을 억제해 치아우식증(충치)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논문도 있다.

주의사항으로는 백질려는 음허(陰虛)한 경우 복용하지 않는다. <본초정화>에 ‘성질이 정(精)을 굳게 할 수 있는데 명문의 화(火)가 치성한 경우에는 복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음허화동(陰虛火動)한 상태로 신수(腎水)가 부족해서 허화(虛火)가 위로 뜨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항상 들떠있고 상열감이 나타나며 음탕한 생각이 잦아진다. 임산부도 복용하지 않는다.

백질려에는 캠페롤, 트리불로사이드, 페록시디아제, 사포닌 등이 함유돼 있다. 또 하르만, 하르민 같은 알칼로이드 성분도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혈압강하, 소염, 심혈관질환 예방, 성장호르몬 분비촉진, 성기능 강화, 이뇨작용, 항노화, 자양강장작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혈압이나 아토피피부염에 대한 효능을 연구한 논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는 철퇴를 보면 백질려가 떠오를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철퇴가 약이고 병이 있으면 백질려가 약이다. 특히 눈과 피부건강, 염증에는 백질려를 떠올려볼 만하다. 백질려는 철퇴처럼 우리 몸의 다양한 병을 물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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