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저(低)수가만 문제? 방문진료의 진짜 걸림돌
[특별기고] 저(低)수가만 문제? 방문진료의 진짜 걸림돌
  • 이상범 대한재택의료학회 대외협력이사(서울신내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3.12.07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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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 대한재택의료학회 대외협력이사(서울신내의원 원장)

“의사들이 방문진료 나가는 데 수가 올려주는 것 말고 더 필요한 것이 있나요?”

최근 방문진료 관련 학술대회 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거동이 어려운 고령인구가 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재택의료와 방문진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가를 주제로 열띤 강연과 토론이 이어진 후였다.

“그러니까 수가를 좀 올려주고 가산 수가대상에 간호조무사를 포함시켜주면 의사들이 방문진료를 정말 나갈 것인지 질문하는 겁니다.”

순간 방문진료를 하는 의사 입장에서 일말의 억울함과 답답함이 치솟았다. ​이런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비단 그 기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방문진료를 하고 나서 받는 수가가 적다는 사실은 의사들이 방문진료에 선뜻 나서지 못하게 하는 주된 이유라는 데는 틀림이 없다. 행사에서도 “수가가 아직 부족하다” “동반 가산 수가가 올해부터 신설됐지만 대다수 의원에서 고용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는 가산 수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의사가 방문진료를 나가려 해도 불러주는 환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주로 오간 터였다.

하지만 저(低)수가가 방문진료에 의사들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저수가인 현 상황에서도 방문진료를 나가는 의사들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방문진료의의 고충은 단순히 수가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 방문진료를 나간다고 가정해보자. 환자의 집은 병원에서 차로 평균 30분 거리에 있다. 한 번 나가면 몇 군데를 돌고 와야 한다. 사고 걱정, 주차 걱정은 덤이다. 길은 막히기 일쑤고 환자의 집은 대부분 좁은 골목길을 거쳐야 한다. 주차장이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날씨가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너무 덥거나 추운 날, 폭우나 폭설이 길을 가로막는 날도 부지기수다. 빙판길이 된 날에는 차가 언덕길을 못 올라 절절맨다.

​방문진료를 한다는 것은 의료기관이라는 잘 정돈된 환경에서 진료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원내에서는 환자들이 “내가 어디가 아프니 검사를 해달라” “주사를 놓아달라” “약을 처방해달라” 등 분명한 메세지를 갖고 진찰실에 들어온다. 하지만 방문진료를 가면 기본적인 진찰 외에도 환자가 복용하는 수많은 약물, 욕창 및 피부상태, 비위관과 도뇨관 같은 튜브들을 확인해야 한다.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이나 요양보호사가 환자를 제대로 케어하는지, 주거환경은 괜찮은지까지 모두 살펴봐야 한다.

​그나마 이는 성실한 보호자가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혼자 살고 있거나 보호자의 협조가 안 되는 경우에는 시설 입소나 보호자 분리 같은 극단적이고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이를 의사가 혼자서 할 수 없으니 구청이나 보건소 담당자들에게 부탁하는데 최선을 다해 지원해주는 경우도 많지만 힘든 대상자나 보호자를 경험하면 사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문진료는 이처럼 진료와 돌봄, 나아가 지역사회 자원 연계까지가 패키지다. 일련의 모든 과정에 의사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진료를 마치고 들어온다고 끝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 점검 서식들을 작성하고 직원들과 사례 공유 회의를 하게 된다.

​“수가를 올려주면 의사들이 방문진료를 정말 나갈 것이냐” 묻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도 환자들이 집에서 방치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그저 절박한 마음에 나가는 의사들이 있고 그런 의사들이 조금씩 더 늘어나고 있다고. 그런데 대한민국에 방문진료가 필요한 분들은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소명의식을 가진 의사들은 부족하더라도 애써 분투하고 있는데 정책 담당자들은 그저 수가 인상만 만지작거리는 분위기다. 마치 예전 드라마 ‘가을동화’의 원빈이 송혜교에게 “얼마면 돼?”라고 물었던 것처럼.

​방문진료를 보편화해야 한다고 믿는 한 의사로서 방문진료 활성화 정책을 담당하는 분들께 호소하고 싶다. 의사가 진료실 밖에서도 보람과 희망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것이 진정한 활성화 대책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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