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고삼(苦蔘), 입에 쓰면 약이 된다(完)
[한동하의 식의보감] 고삼(苦蔘), 입에 쓰면 약이 된다(完)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4.01.0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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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간혹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면 벌칙으로 쓴맛이 강한 탕을 마시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고삼(苦蔘)을 끓인 것이다. 고삼은 맛이 써서 쉽게 삼키지를 못하고 심하면 구토를 유발할 정도다. 하지만 고삼은 약으로서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 오늘은 고삼의 효능에 대해 살펴보자.

고삼(Sophora flavescens)은 콩목 콩과 콩아과 고삼속 고삼종에 속한 여러해살이 풀이다. 도둑놈의 지팡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뿌리가 구부러진 모양이 지팡이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삼은 황기와도 비슷하다. 황기는 단너삼이라고 하고 고삼은 쓴너삼이라고 부른다. 황기도 콩과다.

고삼(苦蔘)은 맛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본초강목>에는 ‘고(苦)는 맛으로 이름 지은 것이고 삼(參)은 효과로 이름 지어졌다’라고 했다. 항간에 고삼(苦蔘)에 삼(蔘)자가 붙어서 인삼(人蔘)과 효능이 비슷한 것이 있는지 문의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고삼과 인삼의 효능은 전혀 딴판이다.

고삼의 맛은 쓰고 성질은 차고 독이 없다. <본초강목>에는 ‘고삼은 맛이 쓰고 성질이 가라앉으니 순음(純陰)이다’라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음기(陰氣)를 세게 보한다’고 했다. 이런 기록을 보면 고삼은 물을 촉촉하게 대주면서 열을 내리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고삼은 열증(熱症)에 좋다. <본초강목>에는 ‘잠복한 열로 인한 장벽(腸澼)을 제거하며 갈증을 멎게 하고 술을 깨게 하며 소변이 누렇고 붉은 증상을 치료한다’고 했다. 갈증도 열에 의한 것이고 주독(酒毒)도 열증이며 소변색이 붉은 것도 모두 열증이다. 고삼은 열을 내리는 청열약(淸熱藥)에 속한다.

고삼은 속을 편하게 한다. <본초강목>에는 ‘간(肝)과 담(膽)의 기를 길러 주고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위기(胃氣)를 화평하게 한다’고 했다. 보통 쓴맛은 위를 튼튼하게 한다고 해서 고미건위(苦味健胃)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봄철의 씀바귀나 고들빼기가 입맛을 돋우는 작용을 한다. 고삼은 소화액 분비를 촉진하면서 간기능을 활성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고삼은 궤양을 치료한다. <본초강목>에는 ‘악창(惡瘡)과 생식기 부위의 궤양을 제거한다’고 했다. 고삼은 호혹병(狐惑病)에 의한 생식기 궤양에 달여서 훈증하고 씻어 주는 용도로 처방해왔다. 호혹병은 베체트병의 일종이다. 베체트병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생식기 부위의 궤양과 구내염이다. 고삼은 구내염을 치료하는 효과도 있다. 고삼을 달인 물로 가글하면 구내염 상처가 빠르게 아문다. 이때 감초와 함께 사용하면 더 효과적이다.

고삼은 피부병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열독풍(熱毒風)으로 피부가 건조하고 창(瘡)이 생긴 증상, 적라(赤癩, 문둥병)로 눈썹이 빠지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했다. 또 ‘풍열(風熱)과 창진(瘡疹)을 치료하는데 가장 많이 쓰인다’고 했다. <급유방>에는 ‘옹저(癰疽)나 부종이나 창절(瘡癤, 부스럼)이나 개창(疥瘡, 옴)을 치료한다’고 했다. 모두 피부에 염증이 유발된 병증들이다.

고삼은 전탕을 해서 씻어 주는 외용제로 사용하면 좋다. 물 1리터에 고삼 100그램을 넣고 약한 불로 30분 정도 달여서 스프레이 용기에 넣어서 피부에 뿌려줘도 좋고 거즈에 묻혀서 습포를 해줘도 좋다. <외대비요>에는 ‘소아의 신열(身熱)을 치료하는데 고삼탕(苦蔘湯)으로 아이를 목욕시키면 효과가 좋다’고 했다. 소아의 신열(身熱)은 피부에 열감이 심한 경우를 말하는데 태열(胎熱)이 있을 때 목욕제로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아토피피부염이나 일반적인 습진에도 사용한다.

고삼은 환으로 복용해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폐열로 인한 창(瘡)이 온 몸에 생긴 증상에 고삼 가루를 속미음과 함께 개어 벽오동씨만 한 환약을 만든다. 이것을 50환씩 빈속에 미음으로 복용한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풍열(風熱)로 온몸에 조그만 은진(癮疹, 두드러기)이 생겨 가렵고 아파서 참을 수 없는데 주로 쓴다’라고 했다.

고삼은 탕약에 넣는 것보다 환약으로 많이 만들어 먹었다. <동의보감>에는 ‘탕제로는 쓰지 않는다’ 또는 ‘탕제에는 잘 쓰지 않고 대부분 환약에 사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물에 넣고 달여서 먹는다고 해서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삼은 치통에도 좋다. <본초강목>에는 ‘치통(齒痛)이나 풍통(風痛)에 좋다’라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충치로 치아가 아픈 것을 치료한다. 물에 달여 하루에 3되씩 양치하면 5~6일 만에 낫는다’고 했다. 그냥 고삼 달인 물로 자주 가글해줘도 좋다. 고삼은 치주염이나 잇몸 염증, 풍치로 인한 통증에 특효다.

고삼은 살충 및 구충작용을 한다. <본초강목>에는 ‘술에 담가 마시면 옴을 치료하고 벌레를 죽인다’고 했다. 또 ‘감충(疳蟲)을 죽인다’고 했다. 감충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영양실조증상인 감병(疳病)의 원인이 되는 충으로 기생충으로 볼 수 있다. 고삼은 피부 살균제와 함께 구충제로도 활용됐다.

고삼은 맛이 쓰면서도 몸을 그렇게 축나게 하지는 않는다. <본초강목>에는 ‘사람이 즐겨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진정되며 정(精)을 북돋운다’고 했다. 고삼은 장복하더라도 몸을 상하게 하지는 않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

고삼은 화(火)가 없거나 너무 노령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본초강목>에는 ‘만약 화기(火氣)가 쇠약하고 정(精)이 냉해서 원기가 부족한 경우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쓸 수 없다’고 했다. <본초정화>에는 ‘간신(肝腎)이 허(虛)하고 대열(大熱)이 없는 자는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냉증과 허증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동의보감>에는 ‘맛이 아주 써서 먹자마자 토할 정도이니 위(胃)가 약한 사람에게는 신중하게 써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고삼은 열체질인 소양인 약으로 냉체질이면서 위가 약한 소음인은 복용에 신중해야 한다. 다만 피부에 외용제로 적용할 경우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고삼은 연구결과 항산화, 항알레르기, 항암, 면역반응 억제, 신장세포 보호작용 등이 있다고 보고됐다. 성분으로는 마트린, 옥시마트린 등의 알칼로이드와 쿠쉐롤, 쿠라리놀, 쿠라리딘 등의 플라보노이드, 소포라플라베세놀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고삼탕을 벌칙으로 먹을 기회가 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고삼은 맛이 써서 벌을 받는 것 같지만 용기를 내서 삼킨다면 오히려 건강은 좋아질 것이다. ‘입에 쓰면 약이 된다’는 말은 마치 고삼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고삼탕을 먹고서 쓴맛이 오래가는 만큼 건강도 오래갈 것이다.

※ 칼럼 연재를 마무리하며 

이번 칼럼을 마지막으로 헬스경향의 칼럼 연재를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주제를 바꿔가며 거의 10년 이상 써왔기에 감개무량합니다. 긴 시간 동안 애독해주신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새해 더욱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막힘없는 언로(言路)를 열어주신 헬스경향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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