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목숨 빼앗는 ‘비후성심근증’, 한국형 급사 예측방안 찾았다
젊은층 목숨 빼앗는 ‘비후성심근증’, 한국형 급사 예측방안 찾았다
  • 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4.01.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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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김형관 교수팀, 국내 실용 가능한 급사 예측방안 제시
급사 고위험군 감별 시 위험인자개수 및 심근변형 지표 고려해야
비후성심근증은 적기에 진단받지 못하면 급사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다. 대부분 유전적요인이 커 심장질환 가족력이나 젊은 나이에 급사한 가족이 있다면 미리 검사받아보는 것이 좋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비후성심근증은 적기에 진단받지 못하면 급사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하지만 전체 인구 5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비후성심근증은 선천적으로 좌심실 벽 근육이 지나치게 두꺼워져 심장기능을 방해한다. 혈액 통로가 좁아져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혈액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여의치 않아 가슴통증, 호흡곤란, 어지러움, 발작성 야간성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증상이 없을 수도 있어 다른 검사를 하다 우연히 진단되기도 한다.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부분 유전적요인이 커 심장질환 가족력이 있거나 젊은 나이에 급사한 가족이 있는 경우 미리 검사받아보는 것이 좋다. 특히 비후성심근증은 20~30대 젊은 운동선수의 돌연사 원인으로 꼽혀 전문가들은 운동 중이나 직후 흉통, 어지럼증, 두근거림 등이 발생하고 지나치게 숨이 차오르면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비후성심근증은 조기에 정확히 진단되면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을 조절할 수 있다. 잘 조절되면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약물치료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두꺼워진 심장근육을 잘라내는 심근절제술을 고려해야 한다.

급사위험이 높을 것으로 예측되는 고위험군 환자에게는 제세동기를 삽입, 정상적인 심장박동을 유지해 급사를 예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심장학회의 최신 진료지침에서는 7가지 급사 위험인자* 중 1개 이상을 가진 환자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한다.

*급사 위험요인: 급사 가족력, 좌심실 비대(LVWT≥30㎜), 원인 없는 실신, 좌심실 근단 부위 동맥류, 좌심실 박출률(LVEF)<50%, 비지속성 심실빈맥, 후기 가돌리눔 증강(LGE)≥15%

하지만 최근 이를 우리나라 비후성심근증환자에게 그대로 적용했을 때 오히려 불필요한 제세동기 삽입술을 시행하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즉 국내에 맞는 새로운 예측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형관 교수, 삼성서울병원 이상철 교수, 세브란스병원 이현정 교수

마침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김형관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이상철 교수, 세브란스병원 이현정 교수팀이 공동연구를 통해 국내에서 실용 가능한 새로운 급사 예측방법을 제시했다. 미국 최신 진료지침의 급사 예측성능을 분석, 우리나라 비후성심근증환자 중 고위험군 감별 시에는 험인자개수와 심근변형 지표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연구팀은 국내 최대규모 비후성심근증 코호트를 대상으로 국내 비후성심근증환자 1416명에게 미국심장학회의 최신 진료지침을 적용했다. 그 결과 44%(620명)가 1개 이상의 위험인자를 갖고 있었다. 즉 10명 중 4명 이상은 제세동기 삽입을 고려할 수 있는 급사 고위험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급사에 이른 환자는 100명 중 4명에 그쳤다. 5.5.년간 추적관찰한 결과 3.3%(4.3명)에서 급사 등이 발생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미국 진료지침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면 불필요한 제세동기삽입술을 받는 환자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 제세동기는 합병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연구팀은 더욱 정확한 고위험군 예측방법을 찾기 위해 국내 환자만을 대상으로 위험인자 개수에 따른 급사위험 예측력을 세부 분석했다. 그 결과 위험인자가 2개 이상일 때부터 급사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프1] 전체 연구집단(A,B) 및 위험인자 1개 그룹(C,D)에서 좌심실 변형률(LVGLS) 13% 미만, 좌심방 변형률(LARS) 21% 미만인 경우 급사위험이 유의하게 높았다.

심근 수축 기능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심근변형(strain)’으로도 급사위험을 예측할 수 있었다. 심초음파로 측정되는 심근변형은 심장 수축 시 세로로 줄어든 정도를 의미하는 지표로 전체 연구집단에서 다른 변수를 조정했을 때 심근변형이 저하*된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급사위험이 최대 4배 높았다. 이들 중 ‘위험인자 1개’ 그룹만 분석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심근변형이 저하된 환자가 급사위험이 유의하게 높았다(그래프1).

*심근변형 저하 기준: 좌심실 변형률(LVGLS) 13% 미만, 좌심방 변형률(LARS) 21% 미만

이를 통해 연구팀은 비후성심근증환자들 중 급사 고위험군을 보다 정확히 감별하려면 위험인자개수와 함께 심근변형 저하 여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주목해야 할 점은 각각의 급사 위험인자는 급사위험에 단독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반면 좌심실 박출률 50% 미만은 예외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위험인자만 단독으로 가진 경우 급사위험이 약 9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병원 김형관 교수 및 삼성서울병원 이상철 교수(공동 교신저자)는 “미국 진료지침을 그대로 적용하면 불필요한 제세동기 삽입술이 많아질 우려가 있다”며 “급사위험을 신중히 판단하고 적절한 제세동기 삽입술을 실시하기 위해선 심근변형 저하를 주의 깊게 평가해야 하며 특히 단독으로 급사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좌심실 박출률 저하도 추적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이현정 교수(제1저자)는 “국내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를 통해 한국인 비후성심근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며 “이를 근간으로 향후 국내 비후성심근증 진료지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심장학회 아시아 공식 학술지 ‘미국심장학회지:아시아(JACC:Asia)’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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