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의사과학자 양성’
거꾸로 가는 ‘의사과학자 양성’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2.10.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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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헬스’ 구호만 요란
예산 등 구체적 지원은 뒷짐
불투명 미래·열악한 처우 탓
졸업생 1%만 기초의학 선택
중장기적 지원 대책 급선무
코로나19로 의사과학자들의 중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우리나라 의사과학자들은 연구의지가 있어도 안정적인 연구가 불가능한 환경이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코로나19로 의사과학자들의 중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우리나라 의사과학자들은 연구의지가 있어도 안정적인 연구가 불가능한 환경이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난 10년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중 절반 이상이 ‘의사과학자’였다. 의사과학자란 의사면허(치의학, 한의학 포함)를 소지하고 의학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를 뜻하며 ‘연구→창업·기술사업화→의료현장적용’이 가능한 중요인력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공지능, 3D프린팅 등 각종 기술이 의료에 접목되면서 해외국가에서는 인력양성부터 연구비지원까지 중장기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의사과학자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우리 정부는 ‘의사과학자 1000명 양성’ ‘K-바이오헬스’같은 구호만 외칠 뿐 구체적 지원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다.

■바이오헬스산업시대, 의사과학자가 주도

코로나19로 의사과학자들의 중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코로나19백신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백신으로 전례 없는 속도로 개발됐다. 전문가들은 의사과학자들의 장기연구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mRNA백신이 1년 만에 나올 수 없었다고 평가한다.

mRNA백신은 바이오의약품으로 합성의약품과 달리 동물실험을 통한 결과예측이 어렵다. 미국 국립중개연구개발센터(NCATS)에 따르면 유망약물의 30% 이상이 동물실험단계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도 인간에게는 독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임상에서 실패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면역항암제 ▲줄기세포치료제 ▲인공장기 ▲유전자검사 등 바이오기술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이다. 예컨대 유도만능줄기세포(iPS)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 역시 의사과학자다.

의료기기영역에서도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크다. 의학에 첨단기술을 접목하고 공학자와 의사 간 가교역할을 하며 원천기술개발과 재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현재 레이저, LED 등 광공학의료기기분야를 이끄는 세계적 리더는 의사과학자가 대부분이다.

서울의대 생화학과 김종일 교수(서울의대 의사과학자양성 특별위원장)는 “국내에서는 임상과 연구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강요해 양자를 모두 갖춘 의사과학자는 매우 희귀하다”며 “임상지식을 가진 의사과학자의 연구결과는 의료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韓, 연구보다 진료가 수익에 도움

국내 의사과학자들은 연구의지가 있어도 안정적인 연구가 불가능한 환경이다. 우리나라는 연구비의 20% 정도만 지원하다 보니 병원입장에서는 환자진료가 수익에 훨씬 도움이 된다. 하지만 미국은 국가과제연구를 수행하면 연구비의 40~50%가 해당기관에 지원되면서 환자진료보다 연구로 얻는 수익이 더 큰 구조다.

국내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의 연봉은 2억~3억원 수준이다. 반면 의사과학자교수의 연봉은 이들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내 의대·의학전문대학권 졸업생은 연간 3300명 정도지만 이 중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졸업생은 30명(1%) 정도에 불과하다.

의사과학자의 처우도 문제지만 정부부처마다 다른 용어통일도 시급하다. 실제로 과학기술통상자원부는 ‘의생명과학자’, 보건복지부는 ‘의사과학자’, 교육부는 ‘의과학자’ 등으로 혼용하고 있다. 또 각 부처별로 지원사업이 많다 보니 중장기적 지원이 부족하다. 실제로 2009년 의학전문대학원과 한국연구재단이 의사과학자과정을 신설했지만 2010년 한국연구재단이 지원금을 중단하며 유명무실해졌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 서일환 과장은 “올해 기준 2조500억원의 바이오R&D예산을 책정했지만 의사과학자 연구지원사업규모는 168억원에 불과하다”며 “그간 여러 가지 관련사업이 없어지고 또 다시 생기는 패턴이 반복돼 이제 전주기적 예산편성을 고려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1965년부터 NIH연구기금을 통해 의사과학자를 양성했고 현재 의학대학원에서 MSTP프로그램을 지원·운영하고 있다. MSTP프로그램에 선정되면 장학금과 졸업 후 연구비가 지원되기 때문에 경쟁률이 매우 높다. 또 일본은 미국을 모델로 삼아 2008년부터 의사과학자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졸업한 의사들을 지역의 중계연구센터에 연계, 지속적인 임상 및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 양은배 교수는 “잘 나가는 선배학자가 없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학생들이 자주 보다 보니 처음에는 관심이 있어도 결국 포기하게 된다”며 “병원입장에서도 수익을 따질 수밖에 없는데 현 상황에서 병원이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용납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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